9·11 테러의 지울 수 없는 시간 ‘뉴욕 그라운드 제로’
9·11 테러의 지울 수 없는 시간 ‘뉴욕 그라운드 제로’
2018.12.05 14:09 by 싸나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시간의 기억으로부터 단 하루도 당신을 지울 수 없다)”_Virgil

글귀를 보고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쏟았고, 누군가는 깊이 고개를 떨궜다. 9.11 메모리얼 벽에 새겨진 시구. 로마시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글은 억겁의 시간을 넘어 먹먹함을 남긴다. 희생자 3천여 명. 소방관 순직자 340여 명. 그 영향으로 지금까지 암에 걸린 환자는 5천 명 이상.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잔혹한 슬픔이다.

 

2001년 발생한 911테러의 희생자가 새겨진 기념비 (사진: Glynnis Jones/Shutterstock.com)
2001년 발생한 911테러의 희생자가 새겨진 기념비.(사진: Glynnis Jones/Shutterstock.com)

┃그날의 기억, 그라운드 제로

2001911일 오전, TV 속에서는 마치 영화 같은, 현실이라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방송되고 있었다. 미국 뉴욕 맨해튼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항공기가 충돌한 광경이 지구촌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 전 세계를 두려움에 몰아넣은 자살테러 사건의 생중계라니아나운서는 “Oh my god……만 외치며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문제의 그날 아침 민간인을 태운 4개의 항공기는 오전 846분을 시작으로 쌍둥이빌딩, 국방부 건물을 차례로 들이받았다.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로서 위용을 자랑하던 쌍둥이빌딩은 힘없이 붕괴됐고, 다른 한 대의 여객기는 펜실베니아주 남쪽 산에 추락했다.

찬란하게 빛나던 도시는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전 세계인은 경악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건물 잔해 더미 속에서는 패스 알람(PASS Alarm)’이 끊임없이 울렸다.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은 소방관에게 울리는 소리였다. 구조하러 간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고, 화염을 견디지 못해 100층 높이에서 창밖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 생사가 오가는 순간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루 만에, 잔인하게도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9.11테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무려 340명에 달했다
9.11테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무려 340명에 달했다

┃시간을 보존한 공간 911 메모리얼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충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건을 촘촘하게 기억하기 위해 그 자리에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9.11 메모리얼은 뉴욕에서 가장 깊은 공간이다. 그곳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폭파되어 흔적만 남은 계단과 화염에 불탄 소방차 등이 안타깝게 그 날의 시간을 되돌려준다. 파편 한 조각 한 조각, 기억 하나 하나가 소중히 보관돼 있다.

 

911메모리얼의 전경.(사진: Spine/Shutterstock.com)
911메모리얼의 전경.(사진: Spine/Shutterstock.com)

메모리얼 홀에는 마지막 기둥(The Last Column)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위한 메시지가 가득하다. 그 메시지엔 그저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여기는 깊은 공감의 마음이 진하게 담겨있다.

 

메모리얼 홀의 ‘The Last Column’.(사진: PitK/Shutterstock.com)
메모리얼 홀의 ‘The Last Column’.(사진: PitK/Shutterstock.com)

이제 쌍둥이 빌딩은 다시금 하나의 타워가 됐고, 추모 공간도 함께 만들어졌다. 9.11 메모리얼에서 나와 사각형의 분수를 마주하면 슬픔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물줄기, 이는 멈추지 않는 눈물과 같다. 이곳엔 특이한 전통이 생겼다. 희생자 생일에 찾아가 분수 둘레에 새겨진 희생자의 이름 앞에 꽃 한 송이를 꽂아 놓는다. 미국 정부가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발걸음

9.11 메모리얼에서 남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배터리 공원에 닿는다. 바람과 햇살, 나무 모든 것이 잔인하도록 평화롭다. 공원 건너편 리버티 섬엔 미국의 상징이 우뚝하다. 프랑스가 1886년에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이 그것이다.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땅에서 횃불까지 93.5m에 이르는 이 여신상을 바라보며 자유와 기회, 그리고 인권에 대해 생각해본다.

 

배터리 공원(Battery Park)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배터리 공원(Battery Park)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슬픔은 절대 줄어들 수 없는 것

현재까지도 미국 정부는 실종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희생자의 절반 정도는 뼈의 파편이 분산돼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희생자의 뼛조각을 맞춰 대조하는 작업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고를 기리기 위해 이곳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즐겁고 빛나는 관광지보다 슬픔으로 깊이 패인 그곳을 찾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누군가가 영원히 사라지고, 누군가는 슬픔을 안고 남겨진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줄어들 수 없는 절대적 슬픔이다. 그 슬픔의 시간을 가늠한다는 것도 물론 불가능하다. 9.11 테러는 그 고통의 범위가 너무 커서 지우고 싶은 기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기억하려 하고, 이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의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참사가 금세 잊혀 지고 또 발생한다. 이젠 잊을 때도 됐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 더 이상 기억하지 않고 현재를 채워가기에 급급한 국가. 미국이 지금까지 희생자의 DNA를 조사하면서 그 아픔을 공감하려는 자세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인권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 Glynnis Jones/Shutterstock.com)
(사진: Glynnis Jones/Shutterstock.com)

덧붙여, 사고 당시 건물에 있던 사람들 중엔 무사히 탈출한 이들도 많았다. 평소 철저하게 이뤄졌던 훈련이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직결됐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리더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도왔고, 누군가는 모두가 질서정연하고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이끌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질서 있게 내려가는 사람과 그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방관이 있기에, 슬픔과 고통을 안고 있는 우리가 오늘날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싸나

시시詩詩한 글을 쓰고 싶은 새벽형 인간입니다.


섹션별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