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끝나지 않은 재앙, ‘국가부도의 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재앙, ‘국가부도의 날’
2018.12.20 15:04 by 이창희

미국의 모든 투자자들은 한국을 탈출하라!”

199711,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 어느 사원의 컴퓨터 모니터에 긴급 메시지가 뜹니다. 이 메시지는 한국에 투자한 이들에게 삽시간에 전달되었죠. 1990년대 초반까지 급격한 경제성장을 달리던 대한민국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건 바로 이 때부터입니다.

현재 30대 이상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1997년 외환위기. 외국에 진 빚을 갚을 돈이 없어 나라 전체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사회는 대혼란에 휩싸입니다. 우왕좌왕하던 고위 관료들, 무엇이 닥쳐오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집과 직장을 잃은 서민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위기는 기회라고 외치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엘리트들. 지진이나 화재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재난이 아님을 설파하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 네이버 영화)

┃백약이 무효, 총체적 난국

1997년 가을, 금융전문가인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은 한국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곧바로 윗선에 보고를 올립니다. 이에 크게 놀란 정부는 부랴부랴 비공개 대책팀을 꾸려 대응에 나섭니다. 하지만 그 대응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정부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두고 한시현 팀장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재정국 차관인 박대영(조우진 )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위기 상황을 은폐하려 하고, 한시현은 즉각 공개해 다 같이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물론 그녀의 의견은 가볍게 묵살됩니다.

 

힘을 얻지 못하는 경고의 목소리, 숨기기에만 급급한 정부. (사진: 네이버 영화)
힘을 얻지 못하는 경고의 목소리, 숨기기에만 급급한 정부. (사진: 네이버 영화)

모두가 허둥대는 사이 대기업들은 부도를 피하지 못해 줄줄이 쓰러지고, 중소기업들은 손에 쥔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망해갑니다. 백화점에 그릇을 납품하는 작은 회사의 사장인 갑수(허준호 )5억 원짜리 계약을 하고 어음을 받지만 백화점의 부도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갑수에게 돈을 받지 못한 거래처 사장은 자살하기에 이르죠. 경찰에 잡혀 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그 시절 돈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부는 IMF(국제통화금융)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게 되고, 한국은 엄청난 강도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구제 금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IMF 위기를 개인의 기회로 이용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금융맨인 윤정학(유아인 )은 경제위기를 눈치채고 회사를 그만둔 뒤 투자자를 모읍니다. 나라가 망한다는 확신을 전제로 돈을 역 베팅, 결국에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데 성공합니다.

 

┃치솟은 실업률과 자살률, 비상구는 없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이미 수출액 감소 속에 GDP(국내총생산) 대비 5%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외환 위기가 차례로 닥치고 있었죠. 그럼에도 한국은 1995년 세계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맞은 사실에만 눈이 어두워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정부와 기업들은 대책을 마련할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 사이 경제의 근간인 주요 대기업들은 줄줄이 부도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당시 30대 그룹 평균 부채비율은 355%였고 부도의 대명사가 된 한보그룹의 경우엔 부채비율이 2,086%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나라의 곳간에 보유하고 있던 외환은 300억 달러 수준, 갚아야 할 외채는 1700억 달러를 넘어섰으니, 망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죠.

영화의 내용처럼 IMF 구제 금융이 결정되고 살을 깎는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진짜 재난이 시작됐습니다. 실업률은 199814.5%까지 치솟았고 이듬해 1월에는 무려 8.7%를 기록했습니다. 한 달 사이에 3300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27만 명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전국 사업장의 체불 임금은 7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1997년 인구 10만 명 당 13명 수준이던 연간 자살자 수는 199818.4명으로 급증했습니다. 1998년 한해에만 12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전년 대비 빈곤으로 인한 자살은 98%, 사업 실패로 인한 자살은 85% 증가했습니다. 당시 한강에 투신하는 이들과 집에서 목을 매거나 번개탄을 피우는 이들로 인해 119구조대의 출동 횟수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죠.

 

위기 감지는커녕… 실제로 1997년에 이와 같은 내용의 신문보도가 횡행했습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위기 감지는커녕… 실제로 1997년에 이와 같은 내용의 신문보도가 횡행했습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여전한 후유증, 우리는 과연 IMF졸업했을까

한국은 IMF로부터 지원 받은 55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2001년에 이르러 모두 상환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기간에 채무를 정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후유증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남은 이들의 몫이 됐습니다. 30대 그룹 중 17개가 퇴출됐고 7개의 시중은행이 문을 닫았습니다.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투입됐던 180조 원의 공적자금 중 70조 원이 회수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국가 전체 예산이 400조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입니다.

엄청난 실업을 겪으며 쪼그라든 고용시장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대부분의 기업에 명퇴 문화가 생겼습니다. 50대 이전에 차장·부장급으로 승진하지 못할 경우 명예퇴직을 강요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죠.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난 세대가 현재 역대 최악의 취업난을 겪는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긴 IMF 외환위기 (사진: 네이버 영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긴 IMF 외환위기 (사진: 네이버 영화)

식료품을 포함한 생필품의 가격이 급등했고, 가격인상·과대포장·가격담합 등의 문제점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예전처럼 경제 발전을 구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퍼져나갔고, 혼인율과 출산율은 지금까지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황금만능주의와 한탕주의는 우리 사회를 어렵게 만드는 기조로 남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국회 연설에서 국민은 피눈물 나는 세월을 견디고 버텨 위기를 극복해냈고 국가 경제는 더 크게 성장했지만, 외환위기가 바꿔놓은 사회·경제 구조는 국민의 삶을 무너뜨렸다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날까지 제대로 된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의문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것들 외에도 높은 가계부채비율과 부동산 가격 급증, 양극화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1년 전의 경제 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던지는 대사는 과거의 역사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항상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두 번 지기는 싫으니까.”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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