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의 식감이 싫다는 당신을 위해, 어향가지(鱼香茄子)
가지의 식감이 싫다는 당신을 위해, 어향가지(鱼香茄子)
2018.12.27 16:03 by 이창희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중국 남경에서 한량과 다를 바 없는 교환학생으로 국위를 하향시키고 있던 그때. 방종으로 점철된 일상에서 무언가를 찾아먹는 것은 못내 성가시고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기름기로 범벅된, 미끄덩거리는 음식들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남아프리카에서 온 검은 친구가 호들갑을 떨면서 밥을 먹으러 가자고 이끌기에 따라간 오두막집 같은 식당에서 눈이 번쩍 뜨일 경험을 했다. 진득하고 매콤달짝지근한 소스가 혀끝에 닿기 무섭게 치아를 자극해오는 강도 0.9N/㎟ 가량의 바삭함. 이때까지도 몰랐다. 이게 감자인지 고구마인지 아니면 중국의 그 어떤 뿌리채소인지.

식당에서 사전을 뒤졌다. 세상에 가지란다. 제멋대로 생긴 외양의 검보라색 채소. 살아오면서 몇 번 먹어보지 않았던, 그나마도 식욕을 돋우기보다 저하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몹쓸 녀석. 먹지 않으려 용쓰다 등짝을 맞았던 기억의 주인공이 그러한 놀라움을 선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지는 빛깔 이런 거 상관없다. 무조건 탱탱한 녀석을 골라야 한다. 옆에 있는 친구 볼따구니를 툭 때렸을 때 ‘이 자식이 돌았나’라는 정도의 반응이 돌아올 정도면 충분하다. 껍질을 대충 벗기고 한 입 크기로 썬다. 저마다 입의 크기는 다르니 마음대로 하되, 밀떡볶이 사이즈면 대충 맞다. 간혹 통으로 된 가지에 칼집만 내서 만들기도 하지만 완성해놓고 보면 다소 흉측할 수 있으니 굳이 시도하지 말자.

중국요리에 쓰이는 웍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역시나 그런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깊이가 있는 팬을 쓰자. 기름을 충분하게 두르고 가지를 튀기듯 볶아준다. 볶듯 튀겨도 된다. 수분이 날아가고 구수한 향이 감돌기 시작하면 잘게 썰어둔 양파와 대파를 넣어준다. 아무리 애써봐야 당신의 기술로는 파기름이 나지 않으니 포기하고 적당히 볶도록 하자. 그 다음엔 자잘하게 간 돼지고기를 넣자. 정육점에 가면 한 주먹에 천 원짜리 두 장 정도 받을 거다.

돼지고기와 함께 다진 마늘을 한 스푼 정도 던져 넣는다. 생강이 있다면 좋겠으나 한 달에 요리 한 번 하는 것도 귀찮은 당신이 생강을 구입해봤자 가까운 미래에 냉장고에서 시신 혹은 미라가 돼 나올 운명이니 구태여 준비하진 않아도 된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소스다. 소싯적에 밤잠 설치며 뒤적이던 게임북처럼 두 가지 갈래의 길이 있다. 본인이 중국에 있는 착각을 느끼고 싶다면 두반장 소스에 물을 약간 섞은 뒤 고추기름과 식초, 간장, 설탕을 섞어 만들면 된다. 반면 중국 특유의 내음이 부담스러워 좀 더 산뜻함을 원한다면 두반장 대신 시판용 굴소스를 쓰도록 하자.

팬에서 달달 볶아지고 있는 재료들 위에 소스를 부어넣는다. 이때 불은 최대 강도로 올려준다. 어느 정도 끓이다 보면 채소들을 탈출한 수분으로 인해 생각보다 물기가 많다고 느껴질 터다. 당황하지 말고 잽싸게 전분물을 만들어 한 두 국자쯤 부어주자. 갑자기 없던 찰기가 생겨나 당신의 마음까지 걸쭉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넋을 놓고 기다리다 보면 끓고 있는 팬으로부터 기화된 공기가 당신의 코끝을 심하게 간지럽힐 거다. 2분만 참다가 불을 끄자. 통깨가 있다면 뿌려주고, 없다면 그냥 뿌리는 시늉이라도 하자. 쉐도우 복싱도 좋은 훈련 방식이니까.

 

Atmosphere & Mariage
-불현 듯 중국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날, 어스름이 지는 초저녁
-무색유취의 순도 높은 연태고량주

Recipe
-가지
-돼지고기
-양파, 대파, 고추, 생강, 다진마늘
-두반장 or 굴소스, 고추기름, 간장, 설탕
-전분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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