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길, 베를린 장벽을 따라 걷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길, 베를린 장벽을 따라 걷다
2019.03.05 15:42 by 싸나

변화의 시간을 기록하고, 모두의 염원을 표현했으며, 자유로운 미래를 그렸다.”

 

베를린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벽화 갤러리가 있다. 베를린 장벽 일부에 그려진,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슈프레 강 근처 약 1.3길이의 장벽은 베를린을 상징한다. 화려한 색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게 벌써 60여 년 전이다. 단절을 상징하던 이곳은 이제 평화와 예술의 도시로 변모했다.

 

독일 베를린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독일 베를린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에 의해 파괴된 도시 베를린. 베를린은 포츠담 협정으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관리하는 서독 지역과 소련이 관리하는 동독 지역으로 나뉜다. 서독은 경제적인 부흥을 이루고자 했고, 동독은 냉전 체제를 강화한다.

19618, 동서 베를린 사이에 세워진 40에 이르는 콘크리트 벽,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베를린 장벽이다. 동서 냉전과 분단의 상징물, 우리에게는 ‘38과 같은 존재. 그렇게 28년 간 우뚝 서 있던 이 장벽은 동구권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독일 통일이 추진되던 198911월에 무너졌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벽화 거리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벽화 거리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건 시대의 흐름 덕분이었겠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말실수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베를린 총서기 귄터 샤보브스키(Günter Schabowski)가 개정된 여행법의 여행자유화 정책을 발표하던 중, 이탈리아의 한 기자가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되느냐?”라고 물었고, 그는 별 생각 없이 즉시!”라고 답한다.

사실 당시 개정된 여행법은 여권 발급기간을 단축하는 정도의 변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를 잘 알지 못한 귄터 샤보브스키가 원하는 곳 아무데나 갈 수 있고, 아무도 막지 않을 것’, ‘당장 시행이라는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가히 세기의 말실수라고 불릴 만하다.

사람들은 흥분했다. 이 말을 들은 수많은 동서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몰려들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동독 정부에 모든 것을 지원해 준다고 했으며, 모드로브 동독 총리는 변화를 돌이킬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일기 시작한 변화의 물결. 결국 199010월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합하며 냉전시대는 막을 내린다.

 

무너진 장벽 사이로 슬쩍 모습을 드러낸 평화의 등불.
무너진 장벽 사이로 슬쩍 모습을 드러낸 평화의 등불.

┃단절의 상징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은 통일 이전의 수많은 흔적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때,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으로 갈 수 있는 통로로 검문소를 설치했다. 장벽에 따라 세워진 검문소는 각각 A(Alpaha), B(Bravo), C(Charlie), D(Delta)란 이름이 붙어있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체크포인트 찰리라고 불리던 C검문소다. 베를린 장벽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검문소로서, 007시리즈 같은 스파이 영화나 관련 서적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냉전 당시 체크포인트 찰리를 기록해 놓은 모습.(사진: kaprik/Shutterstock.com)
냉전 당시 체크포인트 찰리를 기록해 놓은 모습.(사진: kaprik/Shutterstock.com)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살의 동독 청년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 1962, 베를린 장벽을 보수하는 일을 하던 페터는 체크포인트 찰리를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동독 국경수비대가 쏜 총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장벽 전망대에 있던 수 백 명의 사람들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청년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통일이 된 후 그가 숨진 자리에 추모비를 세웠고, 그를 쏘았던 동독 국경수비대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의 추모비엔 이러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er wollte nur die Freiheit.

(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검문소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만은 남겨두었다. 이는 아마도 자유를 갈망했던 한 청년의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체크포인트 찰리의 현재 모습.
체크포인트 찰리의 현재 모습.

┃세계에서 가장 긴 갤러리,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장벽이 무너지고 혼란한 시기. 예술가들이 회색빛 장벽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28개국 115명의 작가들이 참여했고, 이 중 100여 개의 그림이 남아있다. 1,316m 거리의 장벽을 따라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갤러리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화가 드미티리 브루벨(Dmitry Vrubel)가 그린 <형제의 키스>. 당시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브레주네프(Leonid Brezhnev)와 동독 서기장이던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의 진한 키스 장면을 표현한 그림. 1979년 동독 수립 30주년 행사에서 성사됐다는 키스 장면은 이제 냉전시대의 상징이자 조롱거리가 되었다.

 

'형제의 키스'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작품이다.
'형제의 키스'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작품이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수많은 작가들이 참여한 만큼, 다양한 작품 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매우 사실적인 그림부터, 풍자화에 나올 만한 그로테스크한 작품은 물론 정치적인 상징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난해한 작품세계를 이해하려 애쓰는 관광객.(사진: Semmick Photo/Shutterstock.com)
난해한 작품세계를 이해하려 애쓰는 관광객.(사진: Semmick Photo/Shutterstock.com)

┃독일을 가른 첫 장벽, 베르나우어 거리

베를린 장벽의 첫 삽을 뜬 곳. 베르나우어 거리는 1961년 동독이 처음 장벽을 쌓기 시작한 곳이다. 관련 기념관이 위치해있으며, 거리 주변으로는 약 60m에 이르는 장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당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통곡의 장벽이기도 하다. 장벽을 넘는 것이 발각되면 바로 총살이었으니 말이다. 반쯤 부서진 벽과 철근 등이 과거의 상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상흔을 간직한 베르나우어 거리.
상흔을 간직한 베르나우어 거리.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지만, 지금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감시탑과 장벽을 따라 가볍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장벽 근처에는 화해의 예배장이라 불리는 둥근 모양의 기념 교회가 있는데, 냉전시대에 장벽을 세우기 위해 무너뜨렸던 곳을 복원한 것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베를린 장벽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아울러 분단 시대의 기록들을 모아 놓은 기록의 전당을 둘러보거나, 전망대에 올라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베를린 장벽을 감상할 수 있다.

 

베르나우어 거리의 이모저모.
베르나우어 거리의 이모저모.

독일과 우리나라. 전쟁과 분단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통일을 이뤄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염원이었다.

언젠가, DMZ도 누구에게나 열린,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보고가 되길!

 

장벽의 철근과 평화로운 분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장벽의 철근과 평화로운 분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싸나

시시詩詩한 글을 쓰고 싶은 새벽형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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