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원전 폭발 시뮬레이션, 영화 '판도라'
역대 최악의 원전 폭발 시뮬레이션, 영화 '판도라'
2019.03.21 14:29 by 이지섭

원자력 발전(이하 원전)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 소중한 에너지원을 만들어 주었던 기술입니다. 하지만 잡음도 끊이지 않았죠.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전은 핵 분열시 발생하는 열과 운동 에너지를 활용해 전기를 생성하는 방식입니다.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방사능핵폐기물을 남기죠. 이런 유독성 물질은 수십만 년 동안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원전이 현 인류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를 이끌 후손들의 안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재앙의 위험성은 실제로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멀게는 체르노빌부터 가까이는 후쿠시마까지 말이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됐던 체르노빌 참사로 인해 70만 명이 치료를 받았고, 사고의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 블록버스터를 자처하며 선보인 영화 <판도라>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판도라’.(사진: 네이버영화)
영화 ‘판도라’.(사진: 네이버영화)

 

┃대책이 없으니, 슈퍼맨이 등장할 수밖에

영화의 배경은 월촌리라는 작은 마을. 원래 평범한 어촌이었지만 마을 내 한별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자, 주민 대부분이 원전 관련 하청업체 직원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재혁(김남길 )은 또래 청년들처럼 원전에 고용된 인부인데, 이미 아버지와 형이 방사선 피폭 사고로 사망한 사연을 가지고 있죠.

주인공과 가족, 친구들이 영화상의 인물 관계나 캐릭터 설정을 쌓고 있는 사이, 다른 한 편에서는 재난영화의 공식 중 하나인 미리 경고하기시퀀스가 진행됩니다. 영화 <타워>에서 시설관리 팀장이었던 김상경(대호 ), 영화 <해운대>에서는 지질학자 박중훈(김휘 )이 맡았던 역할을, 이번 영화에선 원자력 발전소장 평섭을 연기한 배우 정진영이 맡았습니다. 한별 원자력 발전소 소장 평섭은 노후된 원전의 실태와 위험성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하지만, 높은 분들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오히려 좌천되어 엉뚱한 부서로 밀려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원자력 발전에 대해 문외한인 신임 소장이 들어앉게 됩니다.

 

어디? 인재개발원으로 가라고요?
어디? 인재개발원으로 가라고요?

이후부턴 본격적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립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이 대한민국의 동남부를 덮치고, 그 여파로 앞서 경고한 노후된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수에 균열이 생깁니다. 냉각수가 샌다는 것은 물을 분해하면서 발생하는 수소의 압력을 떨어뜨리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벤트 밸브를 열어 고압의 수소를 용기 밖으로 방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밸브를 연다는 것은 세슘 등의 방사성 폐기물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방사능 방출을 둘러싼 대통령(김명민 分)과 총리(이경영 分)의 의견대립.
방사능 방출을 둘러싼 대통령(김명민 分)과 총리(이경영 分)의 의견대립.

주민대피령과 방사능 즉시 방출을 둘러싼 대통령과 총리의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총리 주도 하에 사태를 은폐시키려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이렇게 원전 주변 지역 시민들의 대피는 속절없이 늦어지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결국 원자로는 수소 폭발로 날아가 버리죠.

사고의 시발점이 됐던 지진, 냉각수의 균열, 그리고 수소 폭발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답답함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를 마주한 정부 지도층은 우왕좌왕하고, 군대경찰소방대는 제 기능을 상실합니다. 그 와중에 원자력 발전소의 경영진은 탐욕스럽기까지 하죠.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에 대한민국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죠. 사고 지역과 인접한 부산 권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전국의 항만, 철도, 공항은 탈출하려는 시민들에 의해 아비규환이 됩니다. 화룡점정 언론이 보태기에 나서면서 온 나라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립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사진: 네이버 영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하나의 갈등 요소가 남게 됩니다. 바로 최악의 사태를 유발할 ‘2차 폭발 위험이죠. 사용 후 보관 중인 핵연료 수조 하부에 균열이 생기면서, 냉각수 수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냉각수가 새는 것을 막아야 하죠. 2차 폭발은 첫 폭발과 차원이 다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자로 격납 용기 같은 방어막이 전무하기 때문에 폭발한다면 모든 게 잿더미가 되는 상황이었죠.

문제는 이미 냉각수가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되어서, 발전소에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이라는 점입니다. 이에 영화의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분연히 나서죠. 이미 1차 폭발로 피폭되어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는 개연성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고귀한 희생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까지는 막아보겠다며 발전소 안으로 돌입한 주인공 일행이, 어두컴컴한 발전소 내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고귀한 희생을 택한 대원들(왼쪽)과 장렬한 최후를 맞는 주인공 (사진: 네이버 영화)
고귀한 희생을 택한 대원들(왼쪽)과 장렬한 최후를 맞는 주인공 (사진: 네이버 영화)

 

┃판도라의 상자, 직접 열어보니

영화 <판도라>는 보는 내내 묘한 기시감을 줍니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죠. 먼저 20113월에 발생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입니다. 당시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현(福島県)에 위치해 있던 원자력발전소의 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다음 날 수소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쓰나미가 시발점이 된 점, 냉각수의 균열로 수소폭발을 야기했다는 점, 바닷물을 끌어와 원자로 내부의 핵연료를 식히는 과정까지 이번 영화상에서 그대로 표현됐습니다. 영화가 4년여 동안 준비됐다는 걸 감안하면 시기도 딱 맞아 떨어지죠. 박정우 감독 역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우리나라 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되던 해에 실제로 우리나라 동북부(울산, 부산, 경주) 지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연이어 터졌다는 점도 공교롭습니다.

또 한 가지는 당시의 정국입니다. 영화가 개봉될 시점의 우리나라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지도층의 무기력함, 책임 떠넘기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의 일처리, 쉬쉬하고 은폐하려는 태도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죠.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의 무능력함을 토로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도움을 간청하는 대목에선 자연스레 이것도 나라냐던 외침이 오버랩됩니다. 자연재해로 시작해 인재로 이어지는 총체적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고백하는 대통령.(사진: 네이버 영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고백하는 대통령.(사진: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몇 가지 부분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금기시된 소재에 용감히 도전했다는 점입니다. 탈원전이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원전에 대해선 아직까지 의견이 갈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관리만 잘 되면 친환경 에너지에 가깝고, 대체제인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분간은 필요하다는 주장이죠. 원전을 배제할 시 불가피하게 발생될 전기세 인상 등도 걸림돌이 됩니다.

금기의 영역에 호기롭게 도전한 영화는 나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펀딩 사상 법정 최대 금액이 모집된 것을 돌아보면, 시대의 니즈를 잘 짚은 것으로도 볼 수 있죠. 비록 개봉 후 일각으로부터 현실성 논란과 과학적 오류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상당부분 설득력을 지녔다는 평가 또한 공존했습니다.

 

영화 '판도라' 임시대피소에 등장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응급구호세트(왼쪽)와 임시주택.
영화 '판도라' 임시대피소에 등장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응급구호세트(왼쪽)와 임시주택.

우리나라는 현재 총 24개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원전 강대국입니다. 발전소의 개수나 규모, 발전량, 기술력 등을 따지면 세계 6위 정도의 수준이라고 하죠(국제원자력기구). 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나 경각심은 그리 크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후쿠시마 사태로 인식의 환기가 이뤄지긴 했지만, 가장 대중적인 미디어인 영화를 통해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간접 체험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박정우 감독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국민들이 한국에 원전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운영되는지, 현실이 어떤지는 잘 모를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알리고 싶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 중, 삼분의 일은 30년이 넘은 노후 원전입니다. 지난 20176월 가동이 중단된 대한민국의 첫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도 설계수명보다 10년을 더 운영한 노후 원전이었죠. 영화상에서 발전소 소장 평섭이 수차례 위험하다고 경고했던 바로 그 노후 원전 말입니다.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이지섭

미스터빈 닮은 꼴. 멍청한 글을 멀쩡하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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