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방불케 한 두려움, 고성 산불 현장 직접 내려가 보니…
전쟁 방불케 한 두려움, 고성 산불 현장 직접 내려가 보니…
2019.04.11 18:18 by 이창희

“하늘에는 도깨비불이 수없이 날아다니고, 바닥은 불바다고. 그날 밤에 난리도 아니었지 뭐. 간신히 몸만 피해서 친척집에 가 있는데 어디 불안해서 잠이 오나. 뜬눈으로 밤을 새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새 다 타버렸어…”

강원도 고성 용촌리에 사는 전수송(78)씨의 말이다. 정씨 주변을 둘러싼 주민들도 “매년 크고 작은 산불을 겪었지만 이 정도의 불은 난생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4일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발생한 화재. 산을 타고 내려와 주민들 삶의 터전인 집과 농가까지 덮쳤으니 ‘산불’이란 말로는 부족해 뵌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피해가 커진 것일까. 강원도 화재 현장을 직접 들여다봤다.  

 

지난 4일 벌어진 강원지역 산불 현장(사진: straight times)
지난 4일 벌어진 강원지역 산불 현장(사진: straight times)

완연한 봄이 찾아온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고성의 한 주유소 인근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렇게 촉발된 작은 불씨는 삽시간에 주변 나무와 숲으로 옮겨 붙었고, 때마침 불고 있던 강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고성과 인접한 속초를 지나 강릉·동해·인제까지 불길에 휩싸이게 된 이유다.

정부는 화재 발생 하루 만인 5일,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고 불길에 피해를 입은 위 5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조속한 진화에 나섰다. 대통령까지 나서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해 총력 대응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국 소방서에서 출발한 소방차와 구급차가 일제히 강원도로 향했고, 꼬박 이틀간의 사투 끝에 모든 불씨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불길에 전소된 강원 속초의 한 공장
불길에 전소된 강원 속초의 한 공장

그 사이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임야 530헥타르(ha)와 창고 77채, 관광세트장 158동, 축산시설 925개, 농업시설 34개, 건물 100동, 공공시설 68곳, 농업기계 241대, 차량 15대 등이 소실됐다. 강원도 고성에서만 100채 넘는 주택이 전소된 탓에, 700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인근 21곳의 임시대피소에 흩어져 몸을 맡기게 됐다. 

 

| 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를 키운 건 ‘바람’

우리나라는 매년 늦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과 앙상해진 나무들은 촉촉한 봄비가 내리기 전까지 바짝 말라간다. 건조주의보와 화재주의보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령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지는 탓에 소방당국의 긴장감도 높아진다. 특히 올해는 겨울과 봄의 강수량이 유독 적었던 터라 나무들의 건조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여러 악조건이 피해를 키웠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화재를 ‘역대급’으로 키운 원흉은 바로 ‘강풍’이다. 최초 불씨는 전신주 불량 문제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불이 빠른 속도로 강원도 전역에 퍼진 것은 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 때문이었다. 

 

강원 속초의 한 폐차장. 모든 차량이 불에 탔고, 폭발의 흔적도 보인다
강원 속초의 한 폐차장. 모든 차량이 불에 탔고, 폭발의 흔적도 보인다

인근 소방서에서 현장으로 출동해 진화에 돌입한 시각은 발화 이후 불과 3분. 하지만 초속 30m를 훌쩍 넘는 강풍은 소방관들보다 훨씬 빨랐고, 엄청난 수압을 자랑하는 소방차 호스의 물줄기를 가로막을 정도로 강력했다. 소방헬기에서 뿌려대는 소화액도 바람에 쓸려 불길 위에서 흩어졌다. 

소방관들이 어렵사리 불길을 잡았다 싶어도 살아남은 잔 불씨는 바람을 타고 또 어딘가로 옮겨 붙었다. 그 사이 피해 지역은 점점 넓어져만 갔다. 불붙은 나무 조각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불을 붙이고, 옮겨 붙은 나무나 건물이 잿더미가 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불은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미친 듯이 번져갔다. 해당 지역에 대피령이 떨어지면서 주민들은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불이 난 시간대가 이른 저녁이라 인명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누군가의 발이 되어주었을 오토바이도 철골만 앙상하게 남았다
누군가의 발이 되어주었을 오토바이도 철골만 앙상하게 남았다

| 폭격보다 무서웠던 산불…“6·25 때가 생각날 정도”

산불 진화가 모두 마무리된 8일에 직접 찾아간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는 여전히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특히 바닷가와 가까운 지역의 바람은 몸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 인근 주민들은 “태풍이 올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풍”이라고 했다. 검게 그을린 나뭇가지와 무너진 집의 잔해들이 바람에 쓸려 이리저리 나부끼고 있었다. 

불씨는 모두 잡혔지만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작은 담뱃불 하나도 몇 번씩 발로 밟으며 꺼진 것을 거듭 확인하는 모습에서 화마(火麻)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느낄 수 있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직접 들어서니 분위기는 더욱 안 좋았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피해를 이야기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이었지만, 얼굴에는 저마다 근심이 가득했다. 불에 타버린 집과 창고, 각종 농기구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주민들도 보였다.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가옥 피해 현장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가옥 피해 현장

고성 인흥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어릴 적 6·25를 겪었을 때가 생각날 정도였다”며 “폭격이 날아들고 총소리가 천지에 진동하던 그 때도 이렇게 큰 불은 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불에 타버린 마을의 풍경은 마치 전쟁 영화에 나오는 폐허를 연상케 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벽돌과 흙담도 열기를 견디다 못해 무너져 내려앉았고, 철로 만들어진 창고 외벽은 이리저리 구부러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예전엔 누군가의 보금자리였을 집은 이제는 폐허가 됐다
예전엔 누군가의 보금자리였을 집은 이제는 폐허가 됐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점은 이번 산불이 농번기를 앞두고 불어 닥쳤다는 점이다. 모내기에 쓸 요량으로 마련해둔 볍씨가 모두 타버렸고, 농기구들의 자루가 한 줌 재로 변하며 쇠만 덩그러니 남았다. 경운기와 이앙기 같은 고가의 장비들 역시 고무와 플라스틱 부분이 녹아 없어져 형체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강원도 고성 인흥리에 사는 김조재(79)씨는 “당장 다음 주부터 파종해야 하는데 볍씨도 없고, 쓸 만한 낫 한 자루도 없다”면서 “물을 대야 할 논에는 재투성이고… 바라보고 있자니 한숨만 계속 나온다”고 끌탕했다. 

 

불에 타버린 농기계와 장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한 주민
불에 타버린 농기계와 장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한 주민

| 피해 복구에 수십 년…그래도 다시 일어설 희망의 그날까지

이번 산불은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일어난 탓에 피해 규모도 클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복구를 위한 시간과 비용도 막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피해를 복구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며 “산불 발생 전과 같은 생태계로 환원시키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재민들은 학교나 체육관 같은 임시 거처에서 지내고 있지만 말 그대로 임시일 뿐이다. 정부가 강원 지역의 연수원을 동원하고 조립주택을 공급하기로 했지만, 주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오랜 기간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강원 고성 아야진 초등학교에 마련된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이재민 임시 텐트
강원 고성 아야진 초등학교에 마련된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이재민 임시 텐트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최대한 서둘러 이재민들의 복귀를 위한 복구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시급한 주거시설 문제부터 에너지·통신 등의 기반시설 복구, 농가 지원 등 꼼꼼하고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와 대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고발생 이후, 여러 구호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강원도로 속속 모여들었고, 지금 현재도 많은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이재민들이 머물 텐트가 설치됐고,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실도 마련됐다. 식사를 위한 밥차와 세탁구호 차량도 모습을 드러냈다. 전국 곳곳에서 이재민들을 위한 성금도 속속 답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부터 재계·연예계 등 각계를 가리지 않고 모아진 따뜻한 마음은 이미 200억 원(11일 기준)을 넘어섰다.

 

이재민 구호지역에 설치 중인 이동식 샤워실
이재민 구호지역에 설치 중인 이동식 샤워실

 

/사진: 더퍼스트미디어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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