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혁신의 진원지, 미국 실리콘밸리
요동치는 혁신의 진원지, 미국 실리콘밸리
2019.04.23 08:00 by 이창희

'스타트업 세븐일레븐'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7개 국가, 11개 도시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분석해보는 시리즈 콘텐츠입니다.

창업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었죠. 스타트업의 기원과 현재까지의 흐름, 나아가 블록화된 세계 각 지역의 창업 트렌드를 짚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스타트업의 1번지이자 발상지,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입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아이디어, 며칠 밤 정도는 우습게 샐 수 있는 체력과 의지,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도전에 나서는 이들이 줄지어 모여드는 곳이죠. 실리콘밸리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을 조망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ABC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는 동네 ‘실리콘밸리’.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는 동네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는 어쩌다 스타트업의 대명사가 됐을까

실리콘밸리는 태평양에 맞닿은 미국 서부 해안 지역에 위치해있다. 샌프란시스코만()을 끼고 있는 산 호세부터 레드우드 시티까지 대각선으로 길게 걸쳐진 지역에 경기도 삼분의 일 정도의 면적을 지닌 땅이다.

18세기 이 지역의 이름은 산타클라라밸리였다. 1년 내내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고 적당한 강수량으로 땅은 비옥했다. 각종 과일들이 열매를 맺기 좋은 환경인데,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 오렌지와 포도의 고향도 바로 이곳이다.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지금도 여러 곳이 남아있다.

그러던 중 1891, 스탠포드 대학교가 이곳에 설립된다.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문대 중 하나지만, 당시 스탠포드 졸업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동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일쑤였다. 주변 인프라가 너무 낙후돼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50여년 후. 해당 지역 인재 유출의 심각성을 인지한 스탠포드 대학에서 주변 부지에 건물을 짓고 그 임대료를 받아 연구 단지를 개발했다. 1947년 이곳에 들어온 물리학자 윌리엄 쇼클리가 그의 연구팀과 함께 실리콘을 이용한 트랜지스터 발명에 성공했다. 이들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떨쳤고, 이들을 비롯한 엔지니어 8명이 각자 독립해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창업 서부개척 시대가 열렸다. 자연스레 반도체와 전자 기기를 만드는 기업들과 신생 창업가들이 앞 다퉈 모여들었다. 이를 지켜본 일렉트로닉 뉴스의 기자 돈 호플러는 처름으로 이곳을 실리콘밸리로 명명했다.

 

2019년 실리콘밸리 입주기업 현황.(출처: siliconmaps.com)
2019년 실리콘밸리 입주기업 현황.(출처: siliconmaps.com)

│끝 모를 성장 이후에 겪은 비상(非常)과 비상(飛上)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다각화·고도화 단계로 진입했다. 이에 발맞춰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PCB)’를 필두로 벤처 투자회사들이 대거 등장해 자본을 수혈하기 시작했다. KPCB의 초기 투자기금 규모는 800만 달러(한화 약 90억원)에 달했다. 이후 꾸준한 벤처 투자가 이어지면서 기술 기업들의 IPO(주식 공모)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경영·마케팅 전문가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졌다. MBA출신 인력들이 실리콘밸리에 유입되기 시작한 배경이다. 이를 기점으로 실리콘밸리는 기술력과 마케팅이 결합된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실리콘밸리가 IT산업의 중추로 자리매김하면서 미국 정치권의 관심도 높아졌다. 1990년대 들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해 20명이 넘는 연방 의원들이 다녀간 것을 계기로 정책적 지원도 이뤄지기 시작했다. 각종 규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세금 인하와 대출 등의 혜택이 자리 잡았다.

때마침 인터넷의 보급과 활성화가 맞물리면서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인터넷 및 네트워크 관련 기업 성장이 두드러졌던 것. 2000년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금액은 미국 전체 규모인 30%가 넘는 339억 달러(한화 약 385000억원)를 기록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이중 247억 달러가 IT 관련 기업에 투자됐다.

그러나 탄탄대로만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20019·11 테러 여파로 인해 미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IT 분야 투자가 감소하면서 이른바 닷컴 버블이 붕괴됐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는 2000339억 달러에서 2001129억 달러로 뚝 떨어졌고, 200272억 달러, 200366억 달러로 곤두박질쳤다. 동시에 2000121.3%에 불과했던 실리콘밸리 실업률은 불과 2년 만인 2002107.9%까지 치솟았다. 2000년부터 2003년 사이 10만명 넘는 인력이 직업을 잃었으며, 수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인력 감축과 임금 동결에 나서는 등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했다.

물론 닷컴 버블의 붕괴가 가져온 순기능도 있었다. 기술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에 바탕을 둬 왔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그간의 사업 운영이 잘못됐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부터는 모바일 콘텐츠와 온라인 게임 분야의 창업으로 영역이 넓어졌고, 바이오와 에너지를 결합한 기업들도 등장했다. 실리콘밸리에 다시금 훈풍이 불면서 캘리포니아 주() 정부도 정책적 지원에 나섰고, 떠났던 투자 자본들도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9년 실리콘밸리 유망기업 10선.(출처: siliconmaps.com)
2019년 실리콘밸리 유망기업 10선.(출처: siliconmaps.com)

그 결과로 현재 실리콘밸리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기업들이 간판을 내걸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인텔, AMD, 오라클, 페이스북, 넷플릭스 같은 공룡들의 본사가 자리해 있으며 아마존, 퀄컴, 델 등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도 진출해 있는 상태다.

2020년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실리콘밸리에는 다시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간 최고의 가치였던 효율성을 벗어나 다양한 혁신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AI·블록체인·클라우드 등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기존 시스템의 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부터 엑시트(exit·매각 및 자금회수)’ 혹은 폐업까지의 기업의 생애주기도 비약적으로 짧아졌다. 그 자리는 새로운 스타트업이 발 빠르게 채운다. 비즈니스 전문 저널 포춘(Fortune)지에 따르면 미국의 500대 기업 생존율은 1965년과 비교해 32%까지 떨어졌다.

 

│꿈과 모험이 가득한 곳? 실리콘밸리의 명과 암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실리콘밸리 지역은 1년 대부분 온화한 기후를 자랑한다. 창업가들이 더위나 추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비즈니스에 전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또한 스타트업과 IT 기업들이 잔뜩 모여 있는 만큼 필요한 서비스나 인력을 구하기 용이하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제품이나 서비스로 구현해 테스트해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멀리 갈 필요가 없으니 시장조사와 분석, 사업 시도와 피보팅(pivoting)이 굉장히 짧은 기간 안에 가능하다. ‘(Lean) 스타트업도 여기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는 일이 일상적이다. 열정 넘치는 창업가들이 좁은 공간에 몰려있으니 많은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아이디어를 얻는 일도 다반사다. 공식적인 미팅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뤄지고, 비공식적인 만남은 셀 수도 없다. 함께 경쟁하는 이들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분위기다. 많은 기업들이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거나 지역 사무실을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인텔(左)과 구글 본사.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인텔(左)과 구글 본사.

하지만 그렇게 기업들이 모여들다 보니 나날이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가 이제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실리콘밸리 지역사회재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일자리가 29% 증가한 것에 비해 주거 가능한 건물은 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지역 주택의 평균 매매가는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원), 월 임대료는 침대 2개가 있는 방을 기준으로 3100달러(한화 약 350만원)를 웃돈다.

각 상점의 임대료와 인건비도 덩달아 상승하다보니 생활 물가 역시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실리콘밸리 중심지역을 떠나 외곽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는 출퇴근 교통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의 소득한계 지표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4인 가구의 저소득층 한계선은 연소득 117500달러(한화 약 13000만원), 이보다 적게 버는 가구는 저소득층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에선 억대연봉이라 칭송받는 사람도 이 곳에선 가난한계층으로 분류된다는 얘기다. 심지어 스탠포드 대학과 구글·테슬라·페이스북 등이 밀집한 팔로알토 지역의 경우 연소득이 35만 달러(한화 약 4억원) 이상이어야 중산층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최근 실리콘밸리 주택가에서 재력과 지위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닭 키우기가 각광을 받고 있다는 웃지 못 할 소식도 들려온다. 땅값 비싼 동네에서 마당을 갖고 있다는, 과시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산 호세 길가를 따라 늘어선 캠핑카. 살인적인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배고픈 창업가들의 서글픈 단면.
산 호세 길가를 따라 늘어선 캠핑카. 살인적인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배고픈 창업가들의 서글픈 단면.

자유롭고 유연한 근무시간, 높은 소득과 엄청난 복지 수준, 수평적인 조직 문화, 이를 바탕으로 한 일과 삶의 균형. 가끔 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실리콘밸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현지에서 상당 기간 머물렀던 이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성과 위주의 평가와 처우, 회사와 집을 막론하고 수시로 이뤄지는 초과 근무와 야근, 갑작스런 해고 통보 등은 이미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가들의 경쟁이 36524시간 내내 이뤄지고 있다. 고객들의 선택과 큰 손들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도전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실리콘밸리의 낭만적인 모습은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부자는 망해도 3년, 적수가 보이지 않는 실리콘밸리

그럼에도 실리콘밸리의 향후 전망은 여전히 밝은 편이다.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진 장점과 강점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첫 번째로 움튼 창업 특화지역이라는 상징성은 물론이고, 인적 자원과 각종 인프라가 지금 이 순간에도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다른 지역의 약진도 두드러지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리콘밸리의 아성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세계에서 군사적 패권과 함께 경제적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지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미국은 혁신과 창업 전략을 정부 주도 아래 밀어붙이는 중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혁신 창업과 벤처투자 활성화에 적극적이었으며, 트럼프 행정부 역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백악관 직속의 미국혁신국을 신설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지방 정부도 마찬가지다. 산 호세에서는 아웃소싱 창업 프로그램인 바이오큐브를 운영 중이며,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스타트업 인 레지던스(STIR)’라는 이름으로 하이테크 기업 위주의 16주 창업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리콘밸리가 가진 최대의 강점은 트렌드 선도에 있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산업혁명 이후 시대의 신기술은 항상 이곳에서 처음 개발됐고, 기술 간의 융합과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의 등장 또한 그러했다. 자본의 기민한 움직임 역시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형태의 모델은 세계 곳곳의 창업 밸리에 이식되고 있다.

 

산 호세에 위치한 코워킹(co-working) 스페이스.
산 호세에 위치한 코워킹(co-working) 스페이스.

창업 관련된 각종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교육을 받고 경험을 갖춘 이들은 실패한 이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고 창업에 도전한다. 투자는 계속해서 이뤄지고, 자본과 기술은 그 안에서 돌고 돌며 생태계를 살찌운다. 이 두터운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실리콘밸리는 앞으로도 IT분야 스타트업 1번지로서의 지위를 쉽게 잃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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