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 서린 곳에서 ‘한 방’을 꿈꾸다… 베이징 중관춘
‘한’이 서린 곳에서 ‘한 방’을 꿈꾸다… 베이징 중관춘
2019.04.30 14:34 by 이창희

'스타트업 세븐일레븐'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7개 국가, 11개 도시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분석해보는 시리즈 콘텐츠입니다.

중국은 지난 90년대 이뤄진 개혁개방을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짝퉁’의 메카라는 오명을 벗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계에 이르렀죠.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대내외적 문제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미국의 견제 속에 각종 경제 지표가 떨어지며 위기를 맞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돌파구로 삼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창업입니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혁신 창업에 주목했고, 정부 주도로 창업가 육성 및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국가의 명운을 여기에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그 전초기지이자 심장부가 바로 알리바바와 샤오미의 고향, 베이징 중관춘(中关村)입니다.

 

베이징 중관춘 전경. 중국의 미래가 걸린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징 중관춘 전경. 중국의 미래가 걸린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환관들의 무덤, 그 한(恨)이 서린 곳
베이징의 북서쪽 외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중관춘. 행정구역상으로는 베이징 시내지만 중심부에서는 거리가 다소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고양 정도의 거리로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터다. 면적은 서울의 강남구와 송파구를 합친 정도인 75㎢로, 꽤 넓은 권역이지만 중국의 땅덩이를 감안하면 그리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관춘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답고 조용해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눈독을 들이던 ‘부동산’이었다. 특히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 ‘태감(太监)’이라 불리던 환관(내시)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막대한 경제력을 가진 이들은 은퇴 후 정착을 목적으로 중관춘의 땅을 앞 다퉈 사들였고 집성촌을 이뤘다.

환관들은 자식이 없는 탓에 은퇴 후의 여생을 다른 젊은 환관들이 보살피고 사후 묘지까지 관리했다. 일종의 상부상조 시스템이다. 그렇게 중관춘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한 많은 인생들의 무덤이 됐다.

 

중관춘은 과거 환관들의 터전이자 묘지였다(사진: baidu.com)
중관춘은 과거 환관들의 터전이자 묘지였다(사진: baidu.com)

그러던 중관춘에 변화가 불어 닥친 것은 1988년. 당시 개혁개방 정책을 밀어붙이던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의 과학기술진흥책 ‘횃불계획’이 본격 실시되면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승승장구에 자극 받은 중국 정부는 중관춘을 하이테크 과학 산업단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중관춘을 하이디엔(Haidian)과 펑타이(Fengtai), 창핑(Changpng), 전자시티(Eletronic City), 이좡사이언스&테크놀로지(Yizhuang Science & Technology) 등 5개 구역으로 나눠 대대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도로를 확장하고 고층 빌딩을 줄지어 올렸으며, 새로운 간판을 내걸었다.

자국이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고 기술 수준과 시장 전망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정부에서 정보와 자금,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전면 지원하는 국가 규모의 계획사업이었다.

이 결과로 91년 종합 첨단기술 생산단지인 샹띠정보산업단지(上地信息産業團地)가 조성됐고, 99년까지 6700여개의 기업이 중관춘에 입주했다. 총매출액만 864억 위안(당시 환율 약 12조원)에 달했다.

 

1988년 중관춘 공사 현장(사진: baidu.com)
1988년 중관춘 공사 현장(사진: baidu.com)

| 상아탑에서 움튼 중국의 하이테크 산업
국가 주도로 첨단 기술 인프라가 갖춰지고 나니, 그 속을 채워 줄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이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 바로 이곳에 위치한 대학과 대학원 출신 고급인력들이었다.

중관춘 원래부터 중국의 브레인들이 모인 곳이었다. 인근에 ‘중국의 MIT’로 불리는 중국 최고의 공대 칭화대와 베이징대, 인민대 등 유수의 명문대를 포함, 68개 대학·대학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되는 졸업생들만 연간 수십만 명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학원 산하 연구소 40개와 중앙정부의 각 부 및 위원회 산하 연구기관 71개, 베이징시 산하 연구기관 27개, 대학부설 연구기관 269개도 포진해 있다.

이러한 중국 최고의 ‘머리’들이 국가가 깔아놓은 노선 위를 열심히 내달린다. 실제로 이 지역 대학가를 방문해보면 엄청난 창업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도서관과 강의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잔디밭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토론을 나누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통학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 대학생들은 100%에 가까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기숙사 안에서도 연구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중국 기숙사의 흔한 풍경(사진: baidu.com)
중국 기숙사의 흔한 풍경(사진: baidu.com)

지역 내부자원이 터를 잡자, 중국의 내로라하는 과학기술 인력들이 중관춘으로 빠르게 유입됐다. 이들은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중관춘 정신의 가치 체계와 행위 패턴을 익히면서 성장했다. 이성적인 사고와 담대한 창의력, 창업도 세계무대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력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정신이 골고루 융합됐고, 여기에 중국 특유의 애국주의가 버무려졌다. 그리고 이는 중관춘 지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 활력소가 됐다.

 

| 창업으로 승부수 던진 중국, ‘유니콘 둥지’된 중관춘
결정적으로 중관춘이 ‘포스트 실리콘밸리’의 지위를 넘보게끔 만든 시점은 바로 2015년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그해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대중창업 만중혁신(大众创业 万众创新)’을 기치로 내세웠다. 이는 누구나 창업하고 누구든 혁신을 이뤄내자는 의미로, 창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각오와 결심을 대내외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적 문구였다.

이를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회사법 개정을 통해 등록자본금 및 기타 등기 관련 사항을 완화해 창업 진입 문턱부터 크게 낮췄다. 창업에 소요되는 최소 기간은 1개월에서 3일로 단축시켰다. 창업 시 준비해야 할 서류도 26종에서 10종으로, 서류 작성을 위해 필요했던 데이터 역시 기존의 166개에서 74개로 간소화했다.

창업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창업을 방해하는 요소는 적극적으로 규제했다. 독점이나 시장 지배력 남용 같은 것들에 대한 규제안이 대표적이다. 창업자들의 지속가능성도 고려했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해 혁신을 고양시켰고, 은행 등을 통해 창업 관련 재정 지원을 크게 확대했다. 동시에 연구개발비 추가공제와 인큐베이터 우대 혜택, 초기 기업 투자자 세제 해택 등도 이뤄졌다.

 

리커창 중국 총리(사진: baidu.com)
리커창 중국 총리(사진: baidu.com)

무엇보다도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고급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대학들에 대한 지원과 개발이었다. 오는 2020년까지 ‘연간 80만 대학생 창업시대’를 목표로 설정한 중국 정부는 탄력적인 학제를 도입해 재학생의 휴학 창업을 장려하고, 대학 내 창업 관련 전문교과과정을 개설하도록 촉진했다. 또한 성공한 창업자를 겸임교수로 초빙해 학생 창업 멘토링 및 창업 관련 경연대회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 결과로 현재 중관춘에는 5개의 슈퍼유니콘(가치 100억 달러 이상)을 포함해 70개가 넘는 유니콘 기업이 자리 잡게 됐다. 3300곳이 넘는 입주공간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하루 평균 1.7개의 창업 프로젝트가 이뤄진다. 중관춘에서 사무실 계약을 하는 스타트업은 매주 20곳이 넘는다.

 

2018년 기준 중국 슈퍼유니콘 TOP5. 이들 중 4곳이 중관춘 출신이다(자료: KOTRA)
2018년 기준 중국 슈퍼유니콘 TOP5. 이들 중 4곳이 중관춘 출신이다(자료: KOTRA)

 

| 중관춘과 실리콘밸리,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중관춘은 종종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비교된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력들의 혁신 창업 요람이라는 점에서다. 역사와 배경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두 지역은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공존한다.

중관춘과 실리콘밸리는 대학 출신 고급 인력들의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많은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부딪히고 깨져가며 결과를 만들어낸다. 물론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 과정의 산물들은 산업 전반의 성장을 가져왔고, 나아가 국가적 발전에도 기여했다.

지역 인프라 조성과 인구 유입이 가파르게 이뤄지면서 매매가·임대료와 물가가 크게 상승한 것도 공통점이다. 중관춘과 실리콘밸리의 거주지와 사무공간은 갈수록 좁아지면서도 가격은 뛰는 반비례 현상이 거듭되고 있다.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정부의 입김이다. 기본적인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은 미국도 중앙정부와 주정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중국은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특히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정책적 의사 결정이 훨씬 빠르다.

 

중국 창업열기를 이끄는 건 공산당 1당 체제의 신속성(사진: baidu.com)
중국 창업열기를 이끄는 건 공산당 1당 체제의 신속성(사진: baidu.com)

중관춘의 청년 창업가들에게 정부가 직접 무상으로 창업 자금을 지원하거나 인근에 소재한 다양한 창업자금지원센터를 통해 민간 투자자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기본이다. 기술력을 가진 이들을 선정해 아파트를 지원하고 육아를 위한 유치원까지 제공한다.

그렇다고 싹수가 보이는 이들만 가려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풍부하다. 의지만 있다면 중관춘 어디에서든 창업 기본교육부터 융자, 상업모델, 합병, 상장 등 창업에 관련한 무료 교육을 받아볼 수 있다. 여기에 등록자본금 최소 요건을 폐지하고 출자 방식도 자율화함으로써 단돈 1위안만 있어도 창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학마다 무상 유학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에 선발된 이들을 적극적으로 외국에 보내고, 공부를 마치면 중국으로 돌아와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아울러 막대한 예산을 들여 외국의 인재들을 수혈하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개발자 유출 우려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다만 이렇게 발전 중인 중관춘이 향후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은 아직까진 회의적이다.

중관춘의 기술력과 풍부한 인력은 분명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종합적인 연구개발과 벤처투자 시스템 면에서는 실리콘밸리에 견주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기술 그 자체의 가치보다 기술의 시장가치를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중관춘의 창업가들은 연구 자체에 몰두해 시장의 수요를 경시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의견도 많다. 리카이푸 마이크로소프트 중국연구원장은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문화와 매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면서 “문화·인재·혁신방식·투자시스템 등 많은 부문에서 실리콘밸리와 중관춘은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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