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핀테크의 메카, 런던 ‘테크시티’
해가 지지 않는 핀테크의 메카, 런던 ‘테크시티’
2019.05.17 16:11 by 이창희

'스타트업 세븐일레븐'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hot)7개 국가, 11개 도시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분석해보는 시리즈 콘텐츠입니다.

현재 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은 핀테크(fintech) 비즈니스로 옮겨지고 있다. ‘핀테크는 문자 그대로 금융(finance)’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서비스를 말하는데, 자산운영, 크라우드 펀딩, 투자, 주식위탁 판매까지 그 범위가 점차 방대해지고 있다. 페이팔, 알리페이 같은 회사들이 가장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의 와디즈나 토스 같은 회사들도 이에 해당한다.

오늘 소개할 영국 런던은 핀테크의 메카를 자처하는 곳이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상과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신 동력으로 삼은 것이 바로 핀테크 스타트업이고, 그 무대는 런던 동쪽에 조성된 테크시티.

 

런던 테크시티 전경.(사진: theGuardians)
런던 테크시티 전경.(사진: theGuardians)

| 실리콘밸리 아닌 ‘실리콘 라운드어바웃’을 아시나요?

영국 런던의 동부 지역은 오랜 기간 낙후된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활기라곤 찾아보기 힘든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100여년 가까이 이렇다 할 쓰임새 없이 방치돼 슬럼화가 진행됐고, 도시개발의 구상에서 늘 배제돼 왔다. 제조업이 쇠퇴하고 금융업이 떠오르는 산업 지각변동의 시기에도 이곳만큼은 외딴 섬이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8. 혹독한 금융위기 이후 땅값이 저렴한 곳을 찾아 헤매던 미디어 관련 하이테크 기업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었다. 20개가 넘는 기업들이 모여들자 영국 정부가 발 빠르게 나섰다.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는 2011년 이 지역을 하이테크 클러스터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테크시티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낡고 무기력한 슬럼가였다.(사진: Pinterest)
테크시티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낡고 무기력한 슬럼가였다.(사진: Pinterest)

이에 따라 런던 동쪽의 쇼디치(Shoreditch)를 중심으로 올드 스트리트(Old Street), 올림픽 파크까지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 대대적인 개발이 이뤄졌다. 공간을 창출해 기업과 창업가들의 정착을 유도하고, 해당 지역 언론방송센터를 엑셀러레이팅 공간으로 조성했다. ‘실리콘 라운드어바웃(Silicon Roundabout)’이란 별칭을 가진 테크시티는 그렇게 탄생했다.

테크시티가 구축되자 함께 대규모 자본이 빠르게 흘러들기 시작했고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들과 창업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201085개에 불과했던 첨단 기술 관련 기업은 이듬해 200개로 2배 이상 늘어났고, 2012년에는 5000개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2013년이 되자 테크시티에 터를 잡고 창업한 팀이 15000개를 넘어섰다. 그중에서도 핀테크 비즈니스의 약진에 주목할 만하다. 테크시티 조성 후 3배 넘게 늘어난 거래규모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성장세에 놀란 세계적인 기업들도 달려왔다. 구글의 구글캠퍼스, 아마존의 디지털미디어 개발센터, 페이스북의 프로그램 개발센터, 인텔 기술개발센터 등 수많은 공룡 기업들이 런던에 사무실을 냈다. 유럽의 유니콘(자산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47개 가운데 14개 기업이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다.

 

영국의 핀테크 육성은 글로벌 금융센터의 위상 유지 및 강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국의 핀테크 육성은 글로벌 금융센터의 위상 유지 및 강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스타트업을 춤추게 하다

테크시티가 일군 성과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견인한 결과물이다. 이를 확인한 영국 정부는 더욱 박차를 가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최대 25000파운드의 자금을 연 6%의 고정 이자율로 지원하고, 멘토링과 서포트 서비스를 제공했다. 1000만 파운드(145억원)의 이익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10%로 제한했고, 일반 법인세율보다 대폭 낮은 세율을 적용해 창업 의욕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런던 공동 투자 펀드를 통해 런던의 유망 스타트업을 선발해 기초 투자금을 지원했다.

지적 재산권 보호부터 세금 관련 어드바이스까지 스타트업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업무 공간을 늘리고 멘토십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5만 파운드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설립자에게 사업자 비자를 따로 발급하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고급 인력의 공급이 끊이는 것을 막기 위해 자국 대학들에 대한 투자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를 발판삼아 런던은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중국 베이징에 이어 유니콘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도시로 올라섰다. 영국의 스타트업 수는 2014581173개에서 2015608110, 2016657790개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이중 런던에서만 20만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비즈니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런던 주요 스타트업.(자료: 코트라)
런던 주요 스타트업.(자료: 코트라)

런던을 중심으로 고도의 테크 기술력이 응집되고, 바클레이즈 은행 같은 대형 은행 중심의 육성과 보육 생태계가 만들어지자, 이 지역의 주 종목인 핀테크 스타트업 분야는 더욱 단단해졌다. 아시아·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 금융 인프라를 블록체인으로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이들부터 전 세계 가상화폐를 일원화할 수 있는 기축 통화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지닌 이들까지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중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기민한 움직임이 다시금 작용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없애 스타트업에 날개를 달아줬고,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시켜주는 규제 샌드박스제도도 실시했다. 송금의 장벽을 완벽히 없앤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국의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 같은 회사도 그런 환경에서 탄생한 스타트업이다.(, 이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에선 외환거래법 위반이다.)

 

| 살인적인 물가에도 매력적인 ‘테크 스타트업 프리미어리그’

하지만 런던의 테크시티에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잘나가는 창업 클러스터가 가진 공통적인 고민, 즉 가파른 임대료와 물가 상승이 창업가들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런던의 대표적인 공유오피스 위워크에서 개인 사무공간 월 임대료는 최저 820파운드(126만원)부터 시작해 최고 16220파운드(2500만원)에 이른다.

또한 브렉시트(Brexit)로 인해 유럽 내 교류와 시장 접근성에 장벽이 생긴 것도 여전한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 이민자 고용에 제한이 생길 경우 런던의 스타트업들이 인력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내 금융회사가 유럽연합(EU) 안에서 자유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권리인 패스포팅 특권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일부 기업들은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핀테크 스타트업의 허브로 자리매김한 런던의 위상이 단기간에 무너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다수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5억명 이상의 소비자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고 2만개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이 존재하는 영국의 거대한 인프라는 이미 시장 포화상태에 봉착한 미국과는 달리 여전히 성장 중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는 최고의 선수들과 자본이 모인 곳. 런던 테크시티도 그러하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는 최고의 선수들과 자본이 모인 곳. 런던 테크시티도 그러하다.

개방적이고 효율적인 창업 관련 정책, 풍부한 자본, 높은 유럽시장 접근성 등의 장점은 런던을 현재 유럽에서 제일 중요한 스타트업 생태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고 실력이 뛰어난 축구 선수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에 몰리는 이유와도 같다. 가치를 가진 선수들이 리그에 정착하면 자본이 뒤따라 들어오고 선순환 시스템이 안착된다. 런던 테크 시티에는 유럽 전역의 테크 능력자들이 매일 같이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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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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