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간 재료만 연구한 ‘재달’ 최형일 선생의 창업 막전막후
15년 간 재료만 연구한 ‘재달’ 최형일 선생의 창업 막전막후
2019.07.18 12:49 by 이창희

책을 만들려면 종이가, 책상을 만들려면 나무가 필요하다. 세상 만물에는 본디 그 바탕이 되는 재료가 있고, 우린 그것을 소재(素材)라 부른다. 평생 이런 소재들만 들여다 본 이가 있다. 신소재를 개발‧제작하는 스타트업 ‘엠오피(M‧O‧P)’의 최형일 대표(40)가 그 주인공. 최 대표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소재 공학을 공부했고,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10년 이상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특허등록을 세 차례, 기술개발을 다섯 차례나 이뤄냈으니 ‘소재 파악’ 제대로 되는 전문가 중 전문가다.

그런데 연구와 경영은 거리감이 꽤 느껴진다. 연구는 뾰족하고 깊은 영역이지만, 경영은 종합예술이라 할 만큼 방대한 분야. 특히 스타트업 같이 소수정예 집단은 구성원 모두가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강요받는다. 잘 나가는 연구원이었던 최형일 대표가 그런 위험까지 무릅쓰며 창업의 길을 택한 이유가 뭘까.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엠오피가 위치한 한화드림플러스(강남)를 직접 찾아가봤다.

 

기술 제휴를 위해 독일 반응기 제조업체 ‘Huber’를 방문한 최형일 대표(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기술 제휴를 위해 독일 반응기 제조업체 ‘Huber’를 방문한 최형일 대표(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 원가는 중국에, 기술력은 일본에…이리저리 치이는 한국 제조업 어쩌나 
최형일 대표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 후 안정된 대기업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을 택한 것도 그런 성향 때문이었다. 사회생활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수백억 원의 투자를 받을 정도로 기술력이 있는 회사였고, 맡겨진 업무도 맞춤옷처럼 편안했다. 그 속에서 7년 간 나노·마이크로 소재로 크기와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디스플레이 소재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직에서의 업무는 뭔가 모를 갈증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작은 목마름이었지만, 차차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목이 타오르는 걸 느꼈다.

“소재 산업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중국하고 일본 사이에서 치이는 형국이에요. 생산 원가는 중국과 게임이 안 되고, 기술력은 일본에 못 미치죠. 유행도 너무 빨라서 열심히 개발해도 사장되기 일쑤고요. ‘우리나라 소재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한번 고민이 시작되자 그런 생각이 끊이질 않게 됐죠.”

사실 최 대표의 이런 고민은 비단 소재 분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조업 자체가 기간산업으로서의 힘을 잃고 있는 상황. 올해 상반기에만 국내 제조업체 1000개가 문을 닫았을 정도다. 최 대표는 “좋은 기술을 가졌지만, 뜻을 펴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는 개발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에선 그들의 구상을 실현시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의 문외한인 연구원 신분으로 가시밭길이라는 창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도, 이런 소재 시장의 생기와 나아가 제조업체 전반의 활기를 불러일으키겠다는 야심찬 포부의 발로다. “단순히 돈 버는 일이 아닌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최 대표의 말에서 공학도로서의 순수함이 잘 드러난다.

 

같은 회사 소속 연구원이었지만, 최대표의 꼬드김으로 창업에 길에 동행한 오픈멤버들.
같은 회사 소속 연구원이었지만, 최대표의 꼬드김으로 창업에 길에 동행한 오픈멤버들. (왼쪽부터) 오진호 이사, 최형일 대표, 김도현 이사.

| 의기투합과 좌충우돌…연구원들의 창업史    
사실 의지만으로 되는 게 창업은 아니다. 하물며 최 대표는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걸 목도한 과거사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하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다면 그때가 바로 창업할 때”라고 말이다. 최 대표에겐 그 시기가 2017년 초반이었다.

물론 ‘마음’만 가지고 돛을 올린 것은 아니다. 연구원 출신답게 치밀한 계산과 작전이 있었다. 솔루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액상 3D 프린터’였다. 최 대표는 “액체로 된 재료를 이용해서 고체로 된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에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면서 “기존의 3D프린팅이나 레이저 커터 같은 기술로는 구현이 어려운 것도 액체라면 가능했고, 우린 그걸 할 수 있는 경험과 전문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7년 3월, 드디어 칼을 뽑아 들었다. 같은 회사를 다니던 개발자 2명을 설득했고, 자연스레 오픈멤버로 합류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팀원들도 최 대표의 확신과 도전 의식에 마음의 문을 열어젖혔다. 최 대표는 “연구실이라는 게 원래 고리타분한 분위기인데, 우리 팀원들은 그 안에서도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사명 엠오피는 자개를 뜻하는 ‘Mother Of Pearl’의 약어. 최 대표는 “조개껍데기로부터 나오는 자개는 현대기술로 제작이 불가능한 소재”라며 “자개처럼 조물주가 만든 지향점에 도달하고 싶은 소재회사를 지향하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동지도 사명도 생겼지만, 창업의 길이란 건 역시 막막했다. 그간의 인맥을 총동원한 끝에 경희대 창업보육센터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차근차근 창업 단계를 밟아나갔다. 사업의 목적인 소재 개발도 꾸준히 이뤄졌다. 처음 1년간은 연구실도 없이 가능한 모든 실험을 진행했다.

셋이 합쳐 20년이 넘는 경험을 가진 개발자들답게, 첫 시제품은 한 달 만에 나왔다. 환경에 따라 색이 변하는 3D프린팅 소재였다. 그해 4월, 지인의 소개를 통해 중견기업 납품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에 어그러졌다. 거래사의 내부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다, 이를 커버해줄 영업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염려했던 ‘좁은 전문성’의 한계였다. 가장 어려운 건 역시 ‘파는 것’이었다. 밤낮으로 연구해서 좋은 소재를 만들어놔도, 이를 유통으로 연결시키기 힘들었다. 유통 관계자들을 만나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말이 안 통했다. 제품의 면면을 이해시키고 조율하는데 너무 큰 에너지가 들었고, 이런 부분들이 부담으로 쌓여갔다.

“처음에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싶었어요.(웃음) 밑천이 금세 드러난 거죠. 좌절감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서서히 매출 압박에 대한 불안감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이게 진짜 사업이고 경영이구나’ 싶었어요.”(최형일 대표)

 

아시아 6개국 하드웨어 스타트업 행사인 ‘N15 파트너스데이’에 참가했던 엠오피의 모습.
아시아 6개국 하드웨어 스타트업 행사인 ‘N15 파트너스데이’에 참가했던 엠오피의 모습.

| 시행착오 끝에서 찾은 활로는 ‘정부지원사업’ 
만들어 놓고 팔수가 없는 딜레마에 빠진 엠오피. 최형일 대표는 어려운 때 일수록 ‘익숙한 곳’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바로 정부지원사업이었다. 연구원 시절 숱하게 정부 과제를 수행했던 경험은 큰 자산이 되었다. 중소기업청, 산업통상자원부 같은 곳들을 타깃으로 사업을 훑어나갔다. 기간산업 분야이니만큼, 정부의 수요와 엠오피의 기술이 맞닿는 지점은 많았다. 제대로 정착하기까지의 마중물은 충분했던 셈이다.

“정부지원사업으로만 버티는 팀들도 많고, 그게 덫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정부지원사업과 자체 비즈니스의 방향성이 맞는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철저히 우리의 비즈니스와 일치하는 것만 골라서 하려고 노력했죠. 시도한 것의 절반 정도는 따낼 수 있었고요.”(최형일 대표)

정부 사업으로 안정감을 되찾자 호재도 잇따랐다. 2018년 5월, 현대기아차가 테크‧서비스 스타트업에 육성‧투자하는 ‘제로원 트루이노베이션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 이를 통해 개발지원금에 공동사업 추진의 기회까지 생겼다. 엠오피의 비즈니스 기반이 보다 단단하게 마련된 것이다. 

 

현재 엠오피는 국내 최고 수준의 3d프린팅 소재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엠오피의 핵심기술로 제작한 세라믹 출력물들
현재 엠오피는 국내 최고 수준의 3d프린팅 소재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엠오피의 핵심기술로 제작한 세라믹 출력물들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된 엠오피. 최근에는 자신들의 비전인 소재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종 소재를 단기(3개월), 중기(6개월), 장기(9개월)로 나눠 개발에 착수했다. 이렇게 개발된 소재들은 우주항공 및 국방 분야, 산업용 세라믹 부품, 정형외과 및 치과 의료용 생체 디바이스, 전기전자 부품, 자동차 부품, 건축 및 예술품 등 다방면에 활용된다.

그 사이 함께하는 식구도 다섯 명으로 늘었다. 새로 합류한 2명은 아킬레스건과도 같았던 기획‧마케팅을 커버해주는 역할. 하지만 비즈니스 규모에 비해서는 여전히 소수정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 간의 신뢰와 확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조직 문화 탓에 사람 뽑는 게 만만치 않다고 한다.

“우리는 출퇴근 개념도 없어요. 편할 때 와서 일하고 할 일을 다 마치면 퇴근하는 시스템이죠. 믿음 없이는 함께하기 어려운 구조에요. 그래서 채용이 참 어렵죠. 채용공고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지인들에게 알음알음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최형일 대표)

 

정형외과 및 치과 등에서 활용되는 의료용 맞춤형 생체 디바이스 소재 역시 엠오피의 세라믹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이 가능하다.
정형외과 및 치과 등에서 활용되는 의료용 맞춤형 생체 디바이스 소재 역시 엠오피의 세라믹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이 가능하다.

엠오피의 올해 매출 목표는 10억. 하지만 3년 안에 100배의 매출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선 상태다. 최 대표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개발한 소재가 전부 성공하고 해외 진출까지 이뤄진다면 가능한 수치”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연구‧개발 능력. 어차피 중국의 물량공세는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살린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하는 것만이 생존과 번영의 전략이다.

소재 시장의 새바람을 일으켜, 국내 제조업의 생기를 되찾고 싶다는 엠오피의 초심(初審)은 잘 지켜질 수 있을까? 실험복 차림의 모험가들이 여정의 끝에서 보게 될 풍경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사진: 엠오피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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