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극 전문가 인터뷰 ①] “연극이야말로 가장 친절하고 진실한 방법이죠”
[청소년극 전문가 인터뷰 ①] “연극이야말로 가장 친절하고 진실한 방법이죠”
[청소년극 전문가 인터뷰 ①] “연극이야말로 가장 친절하고 진실한 방법이죠”
2015.01.09 15:30 by 윤민지
 2014년 11월부터 3년에 걸쳐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 '여성폭력 피해자의 사회·경제적 자립 및 폭력예방을 위한 인식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여성 폭력 인식 개선을 위한 찾아가는 연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더퍼스트는 여성 폭력 인식개선을 위한 찾아가는 연극 제작 사전 단계 중 기초조사를 진행, 관련 자료를 공개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의 창단멤버이자 관객과 함께 삶의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장남희 예술교육가 인터뷰입니다.

워킹맘 홍안나 씨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데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래처 앞에서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하던 중 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 홍안나 씨. 당장 병원에 달려갈 수도, 그렇다고 프리젠테이션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관객들이 손을 들고 크게 외쳤다. “스탑!”

“저는 홍안나 씨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일, 육아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잔뜩 일만 벌여놓는 것 같아요.”, “홍안나 씨도 남편과 똑같이 일을 하는데, 왜 홍안나 씨 혼자서만 책임을 떠맡아야 하죠?” 관객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그러자 관객과 배우 사이에서 중재를 맡은 조커(Joker)가 말했다. “그럼 관객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다시 만들어볼까요?”

 

<슈퍼우먼 컴플렉스> 공연 현장


 

지난 해 12월 22일.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이하 프락시스)의 <슈퍼우먼 컴플렉스> 공연 현장. ‘워킹맘’을 주제로 한 이날 공연은 다른 연극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관객은 “스탑!”이라고 외치며 연극을 중단시켰다. 홍안나 씨처럼 주인공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무대에 올라가 연기도 했다. “남의 행동에 조언을 하는 것은 쉬워요. 하지만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상황을 변화시키는 건 쉽지 않아요.” 조커의 말에 한 관객은 무대에 올라 남편에게 말했다. “이건 불평등해요!”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프락시스는 2005년부터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포럼연극을 제작하고 있다. 포럼연극은 브라질 연출가 아우구스또 보알이 창안한 연극방식의 하나로서, 관객이 적극적으로 극 속에 개입해 주인공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포럼연극은 극적 완성도보다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더 나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더 의미를 둔다.

 

 

장남희 예술교육가


프락시스의 작품에는 장애인, 가족관계, 학교폭력, 노숙인 등 사회 이슈를 다룬 연극이 많습니다.

포럼연극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토 보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삶은 정치적이다.’ 사회 ․ 정치적인 문제가 머리 아프고 따분해 보이지만, 내 삶과 꼭 연관이 돼있어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를 낳으면 산부인과에 가게 되고, 그렇게 산부인과 현황에 대해서 알게 되죠. 자연히 TV에 나오는 육아 ․ 무상보육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요. 보알은 이러한 사회 ․ 정치적인 문제가 내 삶과도 직결된다고 봤어요. 포럼연극을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유쾌하면서도 깊이 통찰하게 되죠. 관객이 무대에 올라와 직접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짜릿함이 남게 돼요. 장애인, 노숙인 등 대상을 특정하지는 않아요. 누구든 다 만나서 그들과 우리 삶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죠.

 

프락시스의 포럼연극은 누구나 관객이 되거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연극의 본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을 꺼내고 얘기하면 배우들이 관객들을 참여시켜서 표현했던 거죠. 포럼연극을 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행동하게 되는 것. 그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012년에는 학교폭력예방을 주제로 한 공연 <눈사람? 눈사람!>을 제작해, 중고등학교를 순회하며 공연을 펼쳤다. 중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민이는 학급 친구들의 놀림과 욕설에 힘들어한다. 학급 친구 중 진일이는 폭력을 쓰고, 하나와 희재는 이에 동조하며, 동조자 그룹에 끼고 싶은 병진이가 등장한다. 이 모든 상황을 바라만 보는 방관자 영진이도 있다. 소민이는 자신의 고통을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의지할 곳이 사라진 소민이는 결국 자살을 시도한다.

 

2012년에 선보인 포럼연극 <눈사람? 눈사람!>은 학교폭력이란 민감한 주제를 다룬 만큼 사전작업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2011년에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를 계기로,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죠. 학교 폭력을 주제로 포럼연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준비가 민감하게 이루어져야 해요. 사전준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공연과 직결되니까요. 언론에서 보도한 학교폭력 사례를 조사하고 학생들도 인터뷰했죠. 배우와 연출이 어렸을 때 겪었던 폭력 경험을 비교하고, 관련 자료를 쓰신 선생님을 모셔서 세미나도 듣고, 책도 많이 읽고 토론했어요. 학교폭력을 보는 다양한 시선이 있는데, 저희가 학생들에게 다가가려면 학교폭력에 대한 관점을 통일시켜야 해요. 가해자 이야기를 할 것인지, 아니면 피해자 이야기를 할 것인지 부터 학교폭력은 사소한 장난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인지, 영화 <한공주>처럼 어른들의 잘못된 통념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할 것인지 등 끊임없이 토론해서 목표를 잡은 다음에 공연을 만들었어요. 공연하기 전에 관계자들 앞에서 시연하는 과정도 거쳤어요. <눈사람? 눈사람!>은 꽤 많은 인원들이 함께 부딪히면서 만든 작업이었어요.

 

연극이 끝나면 관객들은 소민의 친구였던 ‘하나’ 역을 맡아 잘못된 부분을 바꿔나간다. 소민이가 괴롭힘 당하던 장면을 다시 만들거나 빼버리기도 한다. 순회공연을 했던 어느 학교에서는, 실제로 친구들을 괴롭혔던 학생이 무대에 올라와 소민이를 도와주는 장면을 만들었다고 해 화제가 됐다.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해당 학생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눈사람? 눈사람!>을 공연하실 때 학생들의 반응이 어땠는지요?

공연할 때 어떤 학생이 올라왔어요. 그 학생은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자였어요. 그런데 무대에서 가해자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네 돈으로 직접 사 먹어. 나한테 시키지 말고”란 말을 했어요. 덜덜덜 떨면서요. 그 순간 강당이 조용해졌어요. 전교생이 거의 다 모였으니 객석에 가해학생도 있었죠. 공연이 끝났을 때, 가해학생의 그룹이 “씨, 뭐야, 지가 뭐.” 이러면서 밖으로 나갔죠. 공연을 하고 나서 피해학생에게 후폭풍이 있으면 어떡할까 부담이 됐어요. 담임선생님한테 피해학생의 반에서 후속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요청하고, 피해학생이 진심을 더 드러낼 수 있도록 해서 잘 마무리 됐죠. 또는 학교에서 먼저 후속 프로그램을 요청한 경우도 있었어요. 일회 공연만으로는 학생들이 변하지 않아서 후속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거죠.

 

학교폭력예방연극 <눈사람? 눈사람!>(2012)


 

<눈사람? 눈사람!>은 실제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학생이 무대에서는 피해자편에 섰다고 해서 화제가 됐지요.

신기한 것은, 학교폭력 피해자가 불쌍하다고 하는 아이들의 절반은 실제 학교폭력 가해자들이예요. 무대에서 피해자가 폭력을 당하면 피해자를 도와주려고 해요.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아이들은 황당해하죠. ‘네가 실제로는 폭력을 쓰잖아’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입을 다물고 그 장면을 지켜봐요. 저희는 가해자가 무대에 나오겠다고 하면 나오라고 해요. 그러면 가해학생은 가해자 역 배우와 잘 싸워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억압하는지 알기 때문에 학교폭력 피해자로 나와서는 가해자 역 배우를 눌러버려요. 겉만 보면, 상황 자체는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서 좋아요. 학교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보통은 관객이 무대에서 변화를 일으키면, 관객들은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껴요. 그런데 그런 반응이 없을 때 배우들은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하죠. 실제로 가해학생이 자리로 돌아갔을 때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어요. 학생들이 박수는 치지만 얼굴이 어두워요. 어떤 공연에서는 공연 끝날 때쯤 몇몇 학생들이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더라고요. “이건 너무 어렵습니다. 실제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때로는 통쾌하게 공연이 끝나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하게 끝나기도 하고, 많은 과제를 남겨놓고 끝나기도 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극 중에서 가해학생이 피해학생 역할을 경험하도록 하는 거예요. 가해학생이 피해학생 역을 하고 나면 대체로 “정말 열 받네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무서웠어요. 저 형이.”라고 말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이 되어 이 슬픔을 겪어보게 하는데 까지 예요.

 

<세상 밖으로>는 성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유독 사람들은 성폭력에 대해 ‘피해자가 뭔가 잘못했겠지’란 편견을 갖습니다. 이러한 통념을 극복하기 위해 제작진이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연극을 만들 때는 보통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아요. 저희는 대화를 많이 해요. 이점이 일반 연극과 프락시스 교육 연극의 차이점인 것 같아요. 연극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정말 중요해요. ‘나는 피해자가 잘못했으니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생각 하지만, 교육연극에서는 아닌 걸로 해야 해’란 마음이 있다면 무대에서 여실히 드러나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해당 이슈에 대해서 생각하고 토론해야 해요. 저희는 작업할 때, 자신의 가치관을 많이 드러내고 그것을 통일해요.

 

교육연극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마치 코미디언들이 사회를 풍자하듯이 유쾌하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데는 연극만한 것이 있을까요. 연극을 통해 고민하는 과정도 우리 삶에 아주 유익해요. 끊임없이 고민을 하면서 연극을 만들었을 때 관객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기도 하고요. 연극이야말로 가장 친절하면서 진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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