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한 때 먹방‧쿡방 위주였던 방송의 소재가 점차 여가‧여행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KBS의 ‘배틀트립’이나, JTBC의 ‘뭉쳐야 뜬다’, ‘캠핑클럽’ 같은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에 3.1시간, 5.0시간이었던 평일과 휴일의 여가시간이, 2018년에는 3.3시간, 5.3시간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여가에 사용하는 평균 비용도 증가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시장이 커지고, 돈이 돌고, 관심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런 관심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야놀자, 마이리얼트립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여행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콘텐츠가 우후죽순 늘어날수록, 그 속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드러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콘텐츠를 드러낼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을 제16회 용산 스타트업 네트워킹에서 찾아봤다.
지난 17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제16회 용산 스타트업 네트워킹 자리엔 여행 콘텐츠 최전선에 있는 대표 주자 3인이 등장해 ‘여행 콘텐츠 트렌드 변화’를 조목조목 짚어 줬다. 200만 팔로워를 보유한 페이스북 페이지 ‘여행에미치다’를 운영하는 조준기 대표, 로컬 콘텐츠를 큐레이션하고 컨설팅하는 김혁주 비로컬 대표, 액티비티 플랫폼 서비스 ‘프립’을 운영하는 임수열 프렌트립 대표가 그 주인공들이다. 여행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험과 인사이트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백견이불여일행, 체험형 콘텐츠가 뜬다.
사람들의 여가활동에서 TV 시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2014년에 51.4%였던 이 수치는 지난해 45.7%가 떨어졌다. 줄어든 TV 시청의 비율은 여행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형 취미활동으로 대체되었다. 임수열 대표는 액티비티 서비스 ‘프립’을 운영하며 이런 변화를 몸소 체감했다.
“소극적이던 여행 트렌드가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 서핑으로 양양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지만 2년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을 찾아보기 어려웠거든요.” (임수열 프렌트립 대표)
같은 맥락으로 온라인 콘텐츠 역시 사실적인 경험이 녹아들수록 반응이 높다. 이는 ‘여행에미치다’ 페이지가 초기에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하나의 사건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당시 대학생이던 안시내 여행작가가 141일 동안 세계여행을 했던 이야기가 해당 페이지에 올라오자 7만 정도였던 팔로워가 14만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TV로만 접하던 세계여행을 일반인이 ‘체험’했다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여행 전문가만 다니는 줄 알았던 세계여행을 대학생이 다녀왔다는 얘기가 솔깃했던 거죠. ‘나도 가보고 싶다’는 반응이 줄을 이으면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조준기 대표)
│그 장소만의 것, 로컬에 눈을 돌려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 스타트업 ‘에어비앤비’는 고객에게 호텔보다 깨끗한 숙소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호텔기업보다 높은 시가총액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에어비앤비가 집중하는 것은 그 지역만이 가진 문화, 즉 ‘로컬’이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여행에서도 로컬은 중요한 단어로 떠오르고 있다. 로컬이 대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혁주 대표는 이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중세시대 장원(莊園‧영주의 토지와 농노로 구성된 자급자족적인 경제 체제)에서는 모두가 한곳에 머무르며 살았기에 지역마다의 특색이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지역과 지역 사이의 교류가 늘어났고 그에 따라 지역 특색은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지금 사람들이 다시금 옛날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최근 로컬 스타트업들이 질과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시다. 홍대와 합정 부근에서 시작한 로컬 스타트업은 현재 성수, 상도 등 서울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을 벗어나 강릉, 군산 등 전국 각지에서도 로컬 스타트업이 그 지역만의 특색을 살려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김혁주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컬의 봉기’인 셈이다.
│조금 더 다르게 표현하라
‘로컬’을 ‘체험’했다면 그 콘텐츠를 어떻게 널리 퍼뜨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조준기 대표는 두 가지 조언을 건넸다.
첫 번째는 이전보다도 ‘조금 더 ‘파격적이거나 혹은 감성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콘텐츠 자체에 그런 요소가 부족하다면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편집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콘텐츠를 부각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두 번째는 ‘세로형 콘텐츠에 집중하기’다. 기존의 콘텐츠는 대부분 가로형으로 제작되었지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형식의 SNS가 유행함에 따라 나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세로형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세로형 콘텐츠에서는 사람이 더 크게 등장할 수 있어요. 인물이 더 부각되면서 그들의 표정이나 포즈를 더 자세하게 드러나고 이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거죠.” (조준기 대표)
│정체성, 좋은 콘텐츠의 모든 것
지금까지 알아본 체험과 로컬, 표현방법 모두 중요하지만 세 명의 연사가 입을 모아 말한 가장 좋은 콘텐츠의 조건은 정체성이다. 정말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만의 콘텐츠’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저희가 IT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임수열 대표)
다양한 SNS를 통해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는 조준기 대표는 평소에 어떤 채널에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강연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는데 여기에서도 정체성의 중요함이 재차 강조되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에 대한 문제보다는 콘텐츠 제작자가 전달하려는 바, 즉 아이덴티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조준기 대표)
로컬, 체험과 같은 트렌드에 나만의 정체성을 잘 표현해낼 수 있다면 하루에 수 천 개가 넘게 제작되는 여행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든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작성자의 진심과 열정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