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동행, ‘학교법인일송학원’의 48년史_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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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료 시대 개척한 현대판 ‘혜민서’의 등장
나눔과 동행, ‘학교법인일송학원’의 48년史_①
2019.12.23 16:46 by 최태욱

“독립하고 싶으면, 너희들이 주춧돌 노릇을 해라. 땅에 묻힌 주춧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위에 세워지는 건물을 튼튼하게 받든다.”

윤덕선 학교법인일송학원 명예이사장(이하 이사장, 1921~1996)은 학창시절 일본인 교사로부터 들었던 이 말을 뼈에 아로새겼다. 이후 ‘주춧돌’의 정신은 평생의 철학이자 과업이 되었다. 한림대학교 의료원(강남‧한강‧춘천‧동탄‧강동성심병원), 한림대‧한림성심대, 한림화상재단 그리고 5곳의 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일송학원’이 지난 48년 간 우리나라 복지 모델의 토대를 구축해 올 수 있었던 이유다. 더퍼스트미디어는 총 5회에 걸쳐, 창업주의 굳은 철학과 조직원들의 인화단결이 완성한 학교법인일송학원의 사회공헌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그 첫 번째 족적은 ‘가난한 사람들의 종’을 자처하며, 국내 자선의료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의료’ 분야다.

 

1971년 12월 설립된 한강성심병원(현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은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민간 종합병원이다.
1971년 12월 설립된 한강성심병원(현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은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민간 종합병원이다.

| “의료의 본질은 봉사, 종(從)이 되어도 괜찮아”
윤덕선 이사장은 의료계에서 선구자 혹은 개척자로 불린다. 그의 행보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그 거점이자 토대가 된 곳이 바로 1971년 12월에 세워진 한강성심병원(지금의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이다. 

당시 한국의과학연구소 이사장과 필동성심병원의 원장을 맡고 있었던 윤 이사장의 숙원사업은 한강 이남, 즉 지금의 영등포 지역에 의료기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서울의 인구는 급속도로 팽창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리는 사람들은 변두리 지역인 영등포에 터를 잡았는데, 대부분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130만명을 훌쩍 넘었다. 당시 서울시 인구가 550만 명 정도였다는 걸 감안하면 그 밀도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보건 체계와 사회복지제도는 열악했고, 노동자와 서민들은 산업 재해와 각종 질병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그러다 병이 생겨도 찾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당시 서울의 종합병원은 대학로, 신촌, 명동 등 전통적인 원도심에 몰려있었다. 평소 “환자가 많은 곳에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던 윤 이사장에겐 결코 묵과할 수 없었던 현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이 몰려 있는 변두리가 의료 체계의 사각지대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믿음은 스스로를 개척자로 몰아붙이는 계기가 됐다. 

주변의 반대와 만류는 불 보듯 뻔했다. 최측근조차 “변두리 지역에 병원을 짓는 일은 무모하다”고 말렸다. 하지만 타협은 없었다. ‘혼자서라도 짓겠노라’며 저돌적으로 밀어붙였고, 건설비 외상까지 불사한 일념은 허허벌판 위에 총 250개의 병상을 갖춘 9층 규모의 최신식 병원을 완성시켰다. 한강 이남에 최초의 민간 종합병원이자, ‘의료가 곧 봉사’라는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거점이 마련된 것이다. 

 

1970년 11월 기공식 장면(왼쪽)과 이듬해 12월 완공된 한강성심병원 전경.
1970년 11월 기공식 장면(왼쪽)과 이듬해 12월 완공된 한강성심병원 전경.

| “I'm still hungry” 내친 김에 ‘자선병원’까지!
한강성심병원의 설립 이념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대중적·서민적 병원’이었다. 이 병원의 탄생은 자연스레 학교법인일송학원의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전까지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행해지던 순회무료진료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한강성심병원은 병원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인 개원 4개월 만에 무료진료반을 구성,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순회무료진료에 나서기 시작했다. 빚으로 지어 올린 병원의 초기 운영 상황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인 행보다. 장익열 당시 한강성심병원 정형외과 과장은 “이사장님의 뜻에 공감했기에 전 직원이 모두 ‘일당백’으로 일한다는 자세로 임했었다”면서 “출근시간은 있었지만 퇴근시간은 없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이를 토대로, 한강성심병원의 봉사활동은 해를 거듭해갈수록 내실과 범위가 확대됐다. 1972년 8월에 개설‧운영된 새마을보건진료센터, 1973년 1월부터 시작된 무의촌 진료, 1974년 설립된 의료법인 성심중앙유지재단, 같은 해 9월부터 시작된 수해 지역 무료진료 등이 영세민을 위한 의료 복지활동의 면면들이다. 1972년부터 2018년까지 학교법인일송학원 산하 6개 병원에서 무료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총 13만6000명에 이를 정도. 이는 송도국제도시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수치다. 

 

1976년 3월 신정동 순회무료진료 중인 한강성심병원 의료진.
1976년 3월 신정동 순회무료진료 중인 한강성심병원 의료진.

다양한 의료봉사 활동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1975년 설립한 성심자선병원이었다. 윤덕선 이사장은 산간벽지나 오지, 무의촌 진료 봉사를 숱하게 다니면서도 늘 ‘부족함’을 느꼈다. 한강성심병원을 세우면서 그가 만들고 싶었던 병원, 즉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병원’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때마침 1974년 말에 간호사 기숙사, 재단 산하 연구소, 의학도서관 등으로 쓰려던 한강성심병원 별관이 신축됐는데, 아예 이 공간을 자선병원, 말 그대로 아픈 사람을 돕는 무료병원으로 탈바꿈 시켰다. 고려 시대의 제위보(濟危寶), 조선 태조 때 제생원(濟生院), 세조 때 혜민서(惠民署)같이 역사적으로 정부 주도의 자선병원은 많았지만, 순수 민간 의료법인이 자선병원을 운영한 사례는 우리나라 최초였다. 

특히 민간 종합병원인 한강성심병원과 성심자선병원이 함께 만들어 내는 시너지가 컸다. 한강성심병원 의료진들이 순회무료진료를 나간 현장에서 만나는 안타까운 중증 환자는 고스란히 성심자선병원으로 인도되어 무상으로 치료를 받았다. 당시 영세민과 극빈자, 장애인 등 병마로 고통 받는 취약계층에게 성심자선병원은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이 병원은 7년 반 동안 10만 명에 달하는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줬고, 의료보험이 실시되며 효용성이 약해진 198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75년 개원한 성심자선병원의 병실 풍경.
1975년 개원한 성심자선병원의 병실 풍경.

| 맹인부터, 나환자까지… 의술에 사각지대는 없다
의료를 주업으로 하는 학교법인일송학원이 의술을 통한 봉사를 펼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가장 아프고 가장 가려진 곳을 찾아내 보살피는 행보는 “불행한 사람을 위해선 종이 되기를 자처하겠다”고 설파했던 윤덕선 이사장의 말대로다. 

당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일한 시설이었던 맹인점자도서실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챙기고, 치료보단 격리가 우선이었던 한센병 환자를 위한 모임을 이끌어 왔던 것도 같은 맥락. 심지어 1976년 12월에는 1962년 받은 태풍 피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낙후되어 가던 태평양 마리아나제도의 ‘괌메모리얼병원’의 운영을 맡으며, 국내 민간 병원 중 최초의 해외 진출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학교법인일송학원 CSR의 철학과 기틀을 다진 윤덕선 명예이사장의 생전 모습.
학교법인일송학원 CSR의 철학과 기틀을 다진 윤덕선 명예이사장의 생전 모습.

윤덕선 이사장은 그의 호 일송(一松)처럼 일생동안 ‘변함없이 곧고 푸른 소나무’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타고난 외과 의사, 병원 경영의 귀재라는 타이틀도 그가 가진 희생과 인간애에 가려질 정도다. 그런 창업주의 철학은 학교법인일송학원 사회공헌 활동의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의 펼칠 앞으로의 반세기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 학교법인일송학원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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