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결국 시작했다, 결과가 자명한 ‘삽질’을
코스메테우스, 2nd Diary
우린 결국 시작했다, 결과가 자명한 ‘삽질’을
2019.12.26 15:52 by 태원석

스타트업 팀원들이 직접 써내려가는 그들만의 발자취. ‘스타트업다이어리’는 내일을 통해 미래를 밝히는 조촐한 사서(史書)다.

의욕과 결심만 가지고 모였던 창업 첫 모임, 서로의 관심사와 나름의 전문성, 그리고 희미하게 본 시장성으로 결정된 아이템은 남성 코스메틱 정기배송 서비스였다.

우린 각자 숙제를 한 아름씩 떠안고 해산했다. 그 후로 일주일, 처음 모였던 그곳에 재집결해 각자의 숙제를 점검했다. 스타트업의 미덕은 ‘속전속결’, 지난 주 보다는 한 걸음 나아가야 했을 자리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번 정했던 시장에, 구체적으로 어떤 틈이 있으며, 그 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면 좋을지 이야기할 차례였다. 각자가 한 주 동안 맡았던 시장 조사 숙제가 더욱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었다.

 

“저 시장에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저 시장에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새로운 팀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직 우리는 서로의 역량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존에 어떤 일을 맡아 했는지는 대충 알았지만, 기본적인 성향부터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리서치는 주로 C가 했다. 대기업 인하우스 컨설턴트 출신인 C는 정말 쉽게 필요한 데이터를 모아왔고, 우리는 C가 가져온 시장 리포트 등을 활용해서 다음 단계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업 모델의 큰 그림은 그렸으니 다음은 아이디어의 구체화였다. 앞으로 남성 코스메틱 시장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를 분석해야 그 후에 어떻게 시장이 움직일지를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을 바탕으로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지속 가능한 사업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모아온 데이터를 들여다봤다. 당시 남성 화장품 시장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것이 자명했다. 기존의 고객들과는 다르게 향이 강하지 않은 중성적인 특징을 갖는 제품이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되고 있었다. 또한 기성 브랜드에 비해 높은 금액을 지불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심지어 여성 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증가 추세였다. 반면 스킨케어에는 관심이 있지만 제품이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서, 무엇을 사용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경향도 포착됐다.

 

“뭘 쓰긴 써야겠는데…”
“뭘 쓰긴 써야겠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남성 화장품 정기구독 서비스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월 단위로 해서 그 시즌에 맞는 제품으로 박스를 구성해 배송하는 것. 이를 통해 기존에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나아가 이 고객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수집해 이후에는 남성 화장품 제조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도 오갔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매월 4~6종의 스킨케어 제품을 정기배송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됐다. 가격은 3~5만원을 잡았다. 당시 1개월 남성 스킨케어 제품 평균 소비 금액의 50~80%였다. 이것이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린 최선의 판단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저 기획을 보면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지금이라면 절대 저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 데이터가 우리에게 말해준 것은 아래와 같았다. 한국 남성들은 하루에 여러가지 스킨케어 제품을 쓰고 있으며, 월 7~8만원 정도를 소비한다. 동시에 고용 문제, 가처분 소득 감소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시그널은 명확하다. 여가시간 부족 문제가 이미 심각했고, 그 와중에 경쟁력을 위해 스킨케어를 해야 한다는 압박은 점점 커진다.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스킨케어 시장은 규모가 커질 것이지만, 한 달에 쓰고자 하는 금액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며, 스킨케어를 보다 간편하게 만드는 것이 향후 시장의 과제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청진기 대보니깐 진단 딱 나와. 시츄에이션이 좋아”(사진: 네이버 영화 ‘범죄의 재구성’ 스틸컷)
“청진기 대보니깐 진단 딱 나와. 시츄에이션이 좋아”(사진: 네이버 영화 ‘범죄의 재구성’ 스틸컷)

어디서부터가 문제였을까… 일단, 우리 아이디어를 ‘되는 것’으로 믿고 데이터를 본 것부터가 실수였다. 전문 용어로 ‘확증 편향’이랄까. 데이터에 따라 시장을 해석하지 않고 우리가 시장을 해석하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데이터를 짜맞춘 것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렇게 초장부터 결과가 자명한 ‘삽질’을 시작하게 됐다.

보다 양질의 데이터가 우리에게 있었더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걸 제대로 해석할 줄 알았더라면, 시행착오에 쓰인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꼈겠지… 시장 데이터를 분석하는 지금의 코스메테우스가 3년 전 코스메테우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으리라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아쉬움이 가득한 시간이었음에도 우리가 계속 그 때를 회상하는 것은, 우리가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얻은 ‘경험의 가치’ 역시 의미있는 주춧돌이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게다.

 

※ 3rd Diary에서 계속…

 

필자소개
태원석

3년차 스타트업 코스메테우스의 대표입니다. 이제 좀 어떻게 일 하는건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넘어져도 덜 다치는 법은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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