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 개발로 얻은 경험, 일상 곳곳의 이로움으로 ‘타이렌’
경험과 연륜으로 혁신 이끈 김석환 타이렌 대표 인터뷰
인공위성 개발로 얻은 경험, 일상 곳곳의 이로움으로 ‘타이렌’
2020.08.04 15:37 by 이창희

해외에 나가 오랜 기간 학업과 연구에 매달렸던 이들 대부분의 선택지는 보통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국내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쓰거나, 아니면 보다 더 고차원의 연구에 몰입하는 경우다. 하지만 자신의 배움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경우도 있다. 연구나 후학 양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배움의 결과물은 ‘제품’의 형태, 그것도 세상을 이로운 쪽으로 변화시키는 제품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바로 그러한 믿음으로 뒤늦게 창업 전선에 뛰어는 어느 과학자가 여기 있다. 스타트업 타이렌의 김석환(63) 대표 얘기다.

 

김석환 타이렌 대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김석환 타이렌 대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해외에서 청춘을 바친 어느 우주과학자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국내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가출연연구소의 젊은 연구원이 었던 김석환 대표는 서른 한 살 나이에 풍운의 꿈을 안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영국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London)로 날아간 그는 1993년 우주광학기기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이는 당시 한국에는 몇 없었던 초정밀 대구경 우주광학기기 전문가가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귀국 대신 런던 현지에서의 창업을 선택했다. 박사학위 지도교수와 의기투합한 김 대표는 ‘옵티컬 제네릭스 UK’라는 이름의 작은 기업을 시작했다. 로보틱 광(光)가공 기계를 생산하는 업체로, 그는 이곳에서 R&D(연구·개발) 디렉터를 맡았다.

“당시엔 스타트업 같은 개념을 몰랐지만 창업의 형태는 지금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시작하게 된 계기도 영국 정부의 ‘스마트 어워드(SMART Award)’라는 일종의 신기술 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였고요. 당시 그 회사는 지금 지능형 로보틱 광 가공기를 전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국제적 첨단 기술기업이 됐죠.”(김석환 대표)

R&D 디렉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1999년, 김 대표는 갑작스런 제안을 받게 된다. 당시 미 항공우주국(NASA)은 여러 기업·대학들과 함께 새로운 인공위성을 만드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광학 전문가가 필요했는데, NASA의 파트너인 연세대학교를 통해 김 대표의 이름이 추천된 것이다.

그는 망설였다. 회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영국 시민권도 곧 발급될 예정이었다. 이미 11년 넘게 머무른 런던을 떠나 낯선 미국으로 떠나는 것도 크나큰 모험이었다.

“일단 가서 눈으로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나사·칼텍,존스홉킨스·JPL(제트추진연구소) 같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우주기술을 보유한 기관·대학들과 함께 일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에 눈이 확 뜨였죠.”

그렇게 김 대표는 칼텍 방문교수 및 JPL 연구원 자격으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감격스런 여운을 누릴 새도 없이 그곳에서 3년 동안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린 그는 ‘은하진화 위성 (GALEX)’ 인공위성 개발·제작에 기여했다. 그리고 2002년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로 돌아오게 된다. 꿈을 안고 한국을 떠난 지 정확히 15년 만이었다.

 

|40년 공력의 집약체, ‘나노봇’
그는 GALEX 프로젝트에서 인공위성 설계부터 부품제작, 조립 시험 등 전 과정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인공위성에 들어가는 정밀부품을 만드는 일이 그의 주된 역할이었다. 통상 인공위성을 우주 한복판까지 무사히 쏘아 올리는 과정은 매우 험난하고 변수도 많다. 거대 장치이면서, 초정밀 부품으로 결합되는 인공위성의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인공위성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인공위성을 작게 접힌 형태로 발사한 후 우주 궤도에 도달한 뒤 펴지도록 하는 기술도 그 중 하나다. 김 대표가 참여했던 연구 분야가 바로 그러한 접이식 전개형 우주기기였다.

“인공위성 한 대 가격이 당시 기준으로도 1200억원 정도였으니 엄청나게 비싼 거죠. 거기에 한번 발사하면 회수나 수리가 불가능하니 최대한 장기간 고장 없이 사용해야 하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특수한 소재의 끈을 이용해 인공위성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스트링 조절기법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연세대에서 인공위성 정밀 광기기 관련 강의와 함께 후속 연구를 계속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수십 명의 제자들이 그의 손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고 방위산업과 우주산업 등으로 진출했다.

 

인공위성에 대해 설명 중인 김석환 대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인공위성에 대해 설명 중인 김석환 대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한국에 정착한지 14년의 세월이 흐른 후, 김 대표는 후학 양성을 넘어 자신의 기술력을 통한 산업적 기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2015년부터 인공위성 스트링 조절장치 개발의 경험을 살려 IoT 센서, 디스플레이 및 입력장치, 인공 관절 및 판 체결 등 다양한 분야의 발명과 특허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신발회사의 지인 한 명이 연락을 해 왔어요. 자신들이 만드는 골프화 뒤축에 끈 조절 장치가 있는데 크고 투박해서 미관상 좋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하소연이었죠. 해당 장치를 분해해보니 굳이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싶더라고요. 내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 대표는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예비창업단계를 거쳐 2016년 창업에 도전했다. 지금의 회사 ‘타이렌’이 탄생한 시점이다. 그때부터 200여 차례 시제품을 만들고 개량하기를 반복했다. 시중에는 앞서 출시된 끈 조절 제품이 존재했지만, 대체로 투박하고 단순한 기능, 낮은 심미성 등으로 패션 제품 전반으로의 확장은 무리였다.

그런 제품들을 보며 그는 ‘왜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여기서 출발한 고민은 결국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다양한 기능을 바탕으로 의류·잡화는 물론이고 가방·텐트·악세사리 등에 적용 가능한 ‘나노봇’의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나노봇의 혁신 포인트는 1개의 끈을 조절 할 수 있는 기존의 끈 조절 제품과 달리 와이어·플라스틱·고무·섬유 등 모든 재질로 제작된 여러 개의 스트링을 동시에 조절 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경쟁사의 끈 조절 장치에는 조립해야 하는 부품이 대략 8개인 것을 확인하고 나노봇은 4개 이하로 줄였습니다. 그렇게 크기가 작고 두께가 얇은 단추 수준으로 작아지니 심미적으로 탁월하고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죠.”

 

시제품으로 제작된 타이렌의 ‘나노봇’.(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시제품으로 제작된 타이렌의 ‘나노봇’.(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다수의 스트링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은 나노봇의 활용 범위를 무궁무진하게 만든다. 의류에서 단순한 개폐 기능을 가진 단추를 나노봇으로 대체하면 옷을 훨씬 편안하게 입을 수 있다. 잠그고 푸는 2가지의 단순한 기능을 벗어나 늘이고 줄임으로써 다양한 단계의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지의 벨트나 가방 끈의 경우도 힘들여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나노봇 버튼 하나로 손쉽게 가능하다. 캠핑의 꽃인 텐트 역시 설치와 철수 과정이 훨씬 간단해진다.

 

|배움은 제품이 됐을 때 비로소 가치가 발현된다
김 대표가 개발한 나노봇이 소비재 업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타이렌은 지난 4월 ‘아처스 히어로’ 4기에 당당히 선발됐다. 아처스 히어로는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와이앤아처의 대표적인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다.

이번 4기는 스포츠용품·스포츠시설·스포츠서비스 등 스포츠 산업 분야의 서비스 및 제품을 가진 5년 미만의 스타트업 또는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모집이 이뤄졌다. 진단과 컨설팅부터 모의 IR피칭과 멘토링이 12월까지 이뤄지고, 연말에는 국내외 벤처캐피탈(VC)의 참석 아래 데모데이도 예정돼 있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타이렌은 최근 나노봇 1차 양산 모델을 완성했다. 올 하반기 복수의 의류·잡화 기업에 납품이 예정돼 있으며, 협력사에 의해 해외 유수의 패션쇼에도 진출한다. 김 대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각종 데모데이 참가를 병행하며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다.

 

나노봇의 다양한 활용 사례.(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나노봇의 다양한 활용 사례.(사진: 더퍼스트미디어)

김 대표의 향후 계획은 원천 특허와 기술력을 더욱 극대화해 새로운 분야로 제품군을 확대하는 것이다. 갈수록 쓰임이 늘어나고 있는 기계 전동 부품 ‘유니버셜 조인트‘, 수요가 날로 증가하는 인공 관절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나노봇에 센서를 장착해 건강 상태와 인체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맥박과 체온부터 앉거나 걷는 자세 등의 정보를 수집한다면 헬스케어 분야로의 진출도 가능할 것이란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처럼 혁신적인 제품 연구·개발에 몰입하고 시장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그의 모습에서 수십 년의 첨단 우주기기 기술 경험과 연륜이 새로운 혁신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엿보인다. 후학을 양성하며 저술 작업 등으로 개인적 성과물을 정리하는 동년배들과 사뭇 다른 길에 들어섰지만, 그의 눈빛엔 변화와 혁신을 향한 호기심 그리고 진보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다.

“수십 년의 연구 자체도, 그것을 후대에 전수하는 것도 모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것들로 사회에 기여하고, 혁신을 일구는 데 사용하는 것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거창하진 않지만 저에겐 그런 사명이 있는 셈이죠.”(김석환 대표)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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