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좋아했던 소녀, 기울어진 패션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다
김단비 비크코퍼레이션 대표 인터뷰
옷을 좋아했던 소녀, 기울어진 패션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다
2020.10.30 13:35 by 이창희

[ERA of Contents]는 엑셀러레이터 ‘와이앤아처’의 콘텐츠 기업 육성‧지원 프로그램인 ‘2020 에스테텍 스케일업’ 참여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콘텐츠 스타트업 탐방 시리즈입니다.

그 역시 예쁜 옷을 입고 싶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흔한 여고생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업계로 발을 들이게 됐고, 치열한 현장에서 20대를 보냈다. 그러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행이란 객관적 표현 뒤에 숨은 갑의 횡포, 갈수록 힘에 겨운 을의 상황. 모두가 상생하는 패션시장을 위해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될 일이었다. 혈혈단신으로 기존의 강고한 체제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비크코퍼레이션을 이끄는 김단비 대표(32)는 기꺼이 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김단비 비크코퍼레이션 대표.(사진: 비크코퍼레이션)
김단비 비크코퍼레이션 대표.(사진: 비크코퍼레이션)

|‘좌충우돌’ 20대의 경험이 남긴 내공
김단비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소위 ‘패피’의 자격이 충분했다. 분주한 고등학생 신분으로도 방과 후 아르바이트에 매진했던 건 오로지 입고 싶은 옷, 사고 싶은 옷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다양한 옷을 구매하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패션을 바라보는 눈도 점점 트이기 시작했다. 또래들이 선호하는 패션 트렌드를 자연스레 체득한 그는 마침내 칼을 뽑아 들었다. 긴 시간 아르바이트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과감히 투자해 온라인 쇼핑몰을 연 것이다. 딱 고등학생 수준의 장사였고,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이윤은 뻔했다. 하지만 장차 그가 펼쳐갈 비즈니스의 싹을 틔우기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김 대표의 좌충우돌은 끝나지 않았다. 수도권의 한 전문대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지만 한 학기를 다니다 흥미를 잃었고, 때마침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급부상하던 한 회사의 공채에 시험 삼아 응시했다 덜컥 채용이 됐지만, 거기선 반대로 학력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버티던 끝에 2년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상위권 대학 의류디자인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지만, 그 역시 만족감을 주진 못했다.

“발끈한 마음에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진학에 성공했지만 역시 대학 생활은 흥미가 가지 않더라고요. 태생이 공부보단 현장 체질인가 봐요. 다시 잘하고 좋아하는 곳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김 대표는 결국 다시 쇼핑몰을 오픈했다. 그때의 나보다 성장한 지금의 나를 믿으며, 빈티지 의류를 중심으로 20대 소비자들을 집중 공략했다.

 

쇼핑몰을 운영하며 직접 모델을 담당했던 김 대표.(사진: 비크코퍼레이션)
쇼핑몰을 운영하며 직접 모델을 담당했던 김 대표.(사진: 비크코퍼레이션)

다시 연 쇼핑몰은 철부지 여고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패션을 전공하는 패피의 눈썰미와 짧지 않은 패션 기업의 경험까지 녹아있는, 조금은 여물어진 비즈니스였다. 2년 간 꾸준히 월 매출 2000만원 이상 찍을 정도로 안정세를 구가하던 찰나, 예상치 못한 것에 발목이 잡혔다.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체력적인 혹사가 뒤따르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2014년인가…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동대문에서 의류 사입을 해서 돌아오는 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더니 이내 쓰러지고 말았어요. 생각해보면 돈을 아무리 벌어도, 쓰는 법은 몰랐죠.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 버스나 지하철만 타고 다녔으니까요. 몸에 좋다는 걸 찾아먹을 생각도 못했고요.”

 

|특명! 의류시장의 고질적 문제점을 해결하라
지친 몸을 회복하고자 쇼핑몰을 매각하고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김 대표는 2015년 과거에 다녔던 회사를 다시 찾아갔다. 맨주먹이던 6년 전과 달리 그의 손에는 패션 관련 지표로 만든 여성 패션시장 전략이 들려있었고, 회사 대표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여성패션 부서의 MD(Merchandiser) 자리를 제안했다.

김 대표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했다. 당시는 회사에서 많은 인력이 다른 브랜드로 빠져나가면서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맡은 파트의 매출을 유지·성장시키기 위해 연일 야근을 불사했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해외 패션시장을 학습하고 동시에 온라인 대응을 위한 개발을 따로 배우기도 했다.

 

밥 먹듯 야근에 시달리던 시절.(사진: 비크코퍼레이션)
밥 먹듯 야근에 시달리던 시절.(사진: 비크코퍼레이션)

그의 성취와 별개로 회사 생활은 난항이 이어졌다. 낮은 인건비, 없다시피 한 휴가와 열악한 복지 등은 패션업계 전반의 고질병이었다.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였고, 그 꼭대기에 온라인 입점 수수료라는 거대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1000여개 브랜드를 일일이 확인해보니 온라인 플랫폼이 가져가는 수수료가 평균 30%를 훌쩍 넘었어요. 50~60%를 상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요. 이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브랜드는 계속해서 어려워지고, 노동자들이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김 대표는 답을 찾았지만 곧바로 문제에 덤벼들 수는 없었다. 경험을 더 쌓고 힘을 키워야 했다. 회사를 그만둔 그는 2018년 여름 충북에 신설된 청년창업사관학교,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스타트업 스쿨’ 7기, ‘와이앤아처’의 콘텐츠 기업 육성‧지원 프로그램인 ‘에스테텍 스케일업’까지 다양한 경험을 소화했다. 많은 전문가들의 교육과 조언, 각종 프로그램에서의 경험은 자신이 구상한 비즈니스를 구현할 동력이 됐다.

 

|미래 소비의 주체, Z세대를 믿는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올해 탄생한 것이 바로 ‘스타일링 판매시스템’ 기반의 쇼핑몰이다. 거대 플랫폼 대신 자사 스토어를 기반으로 하되 철저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커머스’를 지향한다. 소비자가 누구든 비크코퍼레이션의 제품을 본인 SNS에 업로드하고 이로 인해 추가 판매가 발생하면 리워드를 제공하는 방식. 쉽게 말해 소비자 모두가 인플루언서가 되는 시스템이다.

이들이 타깃으로 하는 소위 ‘Z세대’들은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의 관심을 즐기며,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를 공략해 Z세대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그들이 좋아하는 게임 요소도 적극 도입했다. 플랫폼에 높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스스로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

 

비크코퍼레이션의 ‘스타일링 판매시스템’.(사진: 비크코퍼레이션)
비크코퍼레이션의 ‘스타일링 판매시스템’.(사진: 비크코퍼레이션)

이 모든 것이 구현되면 소비자는 인플루언서 활동에 따른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고, 브랜드는 높은 수수료를 내고 입점하는 대신 제품 생산 및 공급에 집중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편의성 높은 쇼핑 환경 속에 연쇄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까지 도모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비크코퍼레이션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시스템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더 다듬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산더미다. 이에 김 대표는 패션 분야의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투자자, 멘토 등을 가리지 않고 만나며 이 부분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제안과 유의미한 성과까지 얻으며, 기분 좋은 고민거리도 늘어나고 있다.

김 대표의 꿈은 비정상적인 수수료로 얼룩진 패션시장을 바로잡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착한’ 패션기업이 되는 것이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유익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겠다는 그의 포부만큼은 분명하다.

“사실 석유산업 다음으로 환경에 좋지 않은 게 패션 분야입니다. 지속가능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은 것도 그래서죠.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것부터 소비와 기부 방식을 접목하는 것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만들어가 보려고요!”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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