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영접한 일타강사 “야, 너두 할 수 있어. 인공지능처럼”
송다훈 데이터뱅크 대표 인터뷰
AI 영접한 일타강사 “야, 너두 할 수 있어. 인공지능처럼”
2020.11.18 13:05 by 최태욱

[ERA of Contents]는 엑셀러레이터 ‘와이앤아처’의 콘텐츠 기업 육성‧지원 프로그램인  ‘2020 에스테텍 스케일업’ 참여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콘텐츠 스타트업 탐방 시리즈입니다. 

“시험 한번 보고 피드백을 받는 데까지만 평균 일주일이 걸려요. 학습시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레 소모되는 비용도 치솟죠. 토플 점수 만들기 위해 평균 400만원을 들이고, 6개월 이상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송다훈(29) 데이터뱅크 대표의 말은 토플(TOEFL‧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의 높은 문턱을 잘 나타낸다. 영어권 교육기관에서 요구하는 가장 공인된 테스트로, 전 세계 180여 개국, 5천만 명 이상이 응시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지만 이를 정복하는 과정은 그만큼 고되다. 특히 주관식 시험의 특성상, 사람의 일대일 평가와 첨삭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소모해야 할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만만치 않다. 토플/IELTS 등 공인영어 시험 시장이 6조원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인간의 노고’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인간의 노고를 컴퓨터가 대신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하 AI)의 존재 덕분이다. ‘토플 시험의 평가와 첨삭 등 피드백을 인간만큼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AI가 있다면,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력으로 출발한 스타트업이 바로, 영어 입시시장에서 ‘일타강사’로 활약하던 송다훈 대표가 이끄는 데이터뱅크다. 

 

송다훈(사진) 데이터뱅크 대표
송다훈(사진) 데이터뱅크 대표

| 유학 포기자의 절치부심, 사업 밑천이 되다
송다훈 대표는 소위 조기유학 경험자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대학입학까지 일사천리로 내달았다. 졸업 후 미국 대기업에 입사하여 경험을 쌓는 것이 정해진 수순으로 느껴질 찰나, 급제동이 걸렸다. 

“(집에서)등록금 보내주는 게 며칠 늦어지나 싶더니, 어느 순간부턴 뚝 끊기더라고요. 집이 많이 힘들어졌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중도 귀국 후 1년,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했던 안이함은 그 사이 ‘여기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영어 통역 일자리까지 구해 사회경험을 쌓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엄밀히 말해 그의 학벌은 ‘고졸’에 멈춰있었던 것. 1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돌연 대입 전선에 뛰어든 이유다. 그때 경험한 것이 바로 영어특기자 수시 전형의 세계였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다녔으니, 1차 토익‧토플은 문제될 게 없었어요. 2차 시험 분위기라도 파악하려고 마지막 한 달 학원을 다녀봤는데 두 가지 때문에 놀라게 되더라고요. 영어특기자 시험 시장이 생각보다 큰 게 하나였고, 학원의 서비스가 생각보다 명쾌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였죠. ‘나라면 다르게 가르쳐 볼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2011년 11월, 원하는 대학에 무사입성한 송 대표는 그길로 학원 시장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이번엔 학생이 아니라 강사로서 말이다. 조교로 시작한 지 1년, 그 사이 학원 매출의 60%를 담당할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그 후로 다시 1년, 학부모들 사이에서 개인번호가 돌아다닐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자 돌연 독립을 선언했다. 가세가 기운 집안의 장남이 단지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은 서서히 비즈니스가 되었다. 법인회사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영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 것. 획기적인 커리큘럼과 확실한 실적을 앞세운 회사는 점차 영역을 넓히며 승승장구했고, 송다훈 대표는 영어입시 시장의 일타강사이자 일곱 권이 넘는 수험영어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유학 포기자에서 영어 입시 시장의 강자로!
유학 포기자에서 영어 입시 시장의 강자로!

| 입시 영어 최강자가 AI를 만나면 벌어지는 일 
사업이 가장 승승장구하던 2015년, 송다훈 대표 역시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산타토익’으로 유명한 AI 솔루션 기업 ‘뤼이드’와 연이 닿은 것. 뤼이드의 장영준 대표에게 “토익 교육에 AI를 적용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뜬 구름 잡는 얘기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당시에는 AI로 교육한다는 얘기는 아무도 안했거든요. 알파고가 세상에 나오기도 훨씬 전이었으니까요. 그저 뤼이드에 갓 입사한 대학 후배가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인연이 시작되었죠. 하던 일에 매너리즘을 느낄 찰나기도 했고요.”

송다훈 대표가 AI를 통해 미래 교육의 가능성을 느낀 건 2016년 한 해 동안 뤼이드의 콘텐츠 총괄(CCO)로 일하면서다. 이듬해 알파고가 등장하며 세상을 놀래 켰고, 교육과 AI를 엮는 시도도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비즈니스가 갖는 한계점도 명확해졌다. 일대일 첨삭 지도 방식이 주가되다보니 대표자의 역량만으론 확장성의 한계가 있었고, 무작정 강사를 들이자니 교육 품질 관리가 문제였다. 이는 돈이 있는 자만이 기회를 얻는 사교육의 맹점과도 직결됐다. 

세계무대까지 확장성이 열려있고, 공교육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식. 그러면서 돈도 충분히 벌 수 있는 비즈니스. AI교육에서 이런 이상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AI를 통해 이상적인 미래 교육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AI를 통해 이상적인 미래 교육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 유료화‧글로벌‧공교육, 세 마리 토끼 잡는다
미래교육의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송 대표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난해부터였다. 운영하던 사업체를 매각하고 AI모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중‧고등학교 동창이자, 미국 카네기멜론대 통계학과를 전공한 후 미 대기업 및 공공기관의 데이터 분석과 자동화 업무를 담당했던 조현상 CTO의 합류는 천군만마였다. 

지난해 7월, 법인 설립과 함께 시작한 첫 과업은 양질의 데이터 확보였다. AI의 완성도는 결국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과 질로 승부가 난다. 알파고가 수 만 건의 기보를 학습한 후 세계 제일의 바둑기사를 이길 수 있었듯이 말이다. 이 대목에서 데이터뱅크가 가진 장점은 극대화된다. 송다훈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토익‧토플의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대형 출판사에 팔았을 정도의 실력파 강사.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기계학습 기반의 웹사이트 ‘토플뱅크’를 통해 직접 만든 콘텐츠를 무료로 공개하면, 이용자가 전체 시험, 일부 섹션, 일부 문제 단위로 문제를 풀고 AI가 제시하는 피드백을 받는다. 유저 학습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딥러닝 기반의  AI는 정교해진다. 해당 사이트에서 이뤄지는 과정이 데이터뱅크의 현재이자 미래가 되는 셈이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이트 제작 3개월 만에 국내 사용자수가 1만8천명을 돌파했고, 해외 유저들에게도 입소문이 나 현재 175개국에서 토플뱅크를 사용하고 있다. 토플뱅크 베타사이트를 론칭한 지 1년 여 만에 전 세계 토플 응시자의 5%가 토플뱅크를 이용할 정도. 특히 고무적인 것은 유저수가 매월 140%씩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까지 쌓인 데이터양만 무려 300만 건. 송 대표는 “지난 1년 간 모은 데이터보다 지난 50일의 데이터가 많았다”면서 “마치 바이러스처럼 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현재 베타서비스 기간에는 모든 서비스가 무료. 데이터뱅크 입장에선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의 일환이지만, 이용자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일단 검증된 문제를 풀어볼 수 있고, 피드백도 즉각적이다. 사람에게 평가 및 첨삭을 받으려면 과외 선생님에게 5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고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지만, 토플뱅크를 통하면 이 모든 것이 5초 안에 무료로 해결된다. 송 대표가 “내가 직접 채점한 것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까지 AI 자동채점기의 정확도를 고도화시켰다”고 자부하는 수준. 사이트 후기에 “이런 퀄리티가 무료라니 감동” “명쾌한 해설과 적절한 예시, 인공지능이란 게 놀라울 따름”이란 찬사를 쉽게 볼 수 있는 이유이자, 송 대표가 “데이터 1억 건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하는 이유다. 

 

토플뱅크 사이트에 올라온 실제 이용자 후기(사진: 토플뱅크 캡처)
토플뱅크 사이트에 올라온 실제 이용자 후기(사진: 토플뱅크 캡처)

사이트 오픈 후 1년 4개월, 그 사이 학습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통해 서비스의 정확도와 기술 안정화를 위해 분주히 뛰어왔던 데이터뱅크는 ‘공개 SW 3day Startup 경진대회 대상’(2019),  ‘스타트업콘 대상’(2020), ‘세계지식포럼 데모데이 대상’(2020), ‘슈미트(Schmidt) 투자유치’(2020), ‘TIPS프로그램 선정’(2020) 등 굵직한 성과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내년 2분기까지 서비스 유료화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0%달성이라는 마일스톤도 이미 설정해둔 상태. 토플을 넘어 IELTS 등 다른 시험으로의 확장도 계획 중이며, 사업의 미션이었던 공 교육 분야에서의 활용 방안도 점차 모색해가고 있다. 법인 설립 1년여 만에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교육 스타트업으로 성장했고, AI교육의 가능성까지 환하게 밝혀낸 데이터뱅크지만, 정작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은 다름 아닌, 사람 이다. 

“AI서비스이니 만큼 훌륭한 개발자 모시는 게 관건이거든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CTO 외에는 개발자가 없어서 ‘너희가 무슨 테크기업이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죠.’ 지금은요? 뛰어난 개발자들이 8명이나 함께하고 있고, 정말 훌륭한 분들이 계속해서 지원해주시고 있어요. 저희 여건 상 다 모시진 못하지만… 우리가 기존 교육시장을 파괴하고 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다는 믿음이 굳건해집니다.(웃음)” 

 

데이터뱅크의 팀원들. 송다훈 대표는 “우리 팀의 케미를 완성한 것이 가장 큰 사업적 성과”라고 말한다.
데이터뱅크의 팀원들. 송다훈 대표는 “우리 팀의 케미를 완성한 것이 가장 큰 사업적 성과”라고 말한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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