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게, 내가 유니콘이 될 상인가?”…스타트업의 운명을 가르는 ‘네이밍’
“이보게, 내가 유니콘이 될 상인가?”…스타트업의 운명을 가르는 ‘네이밍’
2021.01.26 01:05 by 이창희

하루에도 수없이 생겨나는 스타트업은 저마다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재치 있고 기발하거나, 혹은 깊은 의미가 담긴 이름을 내세운다. 스타트업의 이름은 곧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름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순 없지만, 좋지 못한 이름으로 성공하는 것 역시 어렵다는 게 이 분야의 진리다. 이에 더퍼스트미디어는 흥미로운 네이밍(naming)으로 입소문이 난 스타트업 6곳을 전격 해부했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왜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스타트업의 이름은 곧 얼굴이다.
스타트업의 이름은 곧 얼굴이다.

|중동 모래바람을 헤치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녹이다, ‘아부하킴’
‘아부하킴(대표 유덕영)’은 중동 지역을 타깃으로 하는 한국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3억명이 넘는 아랍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한국 제품을 판매한다. 중동에 ‘K-뷰티’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목표 아래 2018년 설립됐다.

‘아부’는 아랍어로 ‘아빠’라는 뜻이다. ‘하킴’은 유덕영 대표의 올해 일곱 살 아들의 아랍 이름이면서 ‘지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리하면 아부하킴은 ‘하킴 아빠’이자 ‘지혜의 아버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하킴은 현지에서 ‘철수’처럼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도 ‘철수 아빠’, ‘영희 엄마’ 같은 호칭을 널리 사용하곤 했는데 현재 아랍의 문화가 그러하다. 아부하킴엔 아랍 소비자들에게 친숙함을 심어주기 위한 의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유덕영 아부하킴 대표(左).(사진: 아부하킴)
유덕영 아부하킴 대표(左).(사진: 아부하킴)

“덕분에 처음 만나는 클라이언트가 우리 회사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연스레 이뤄지는 아이스브레이킹은 덤이고요.(웃음).”(유덕영 대표)

물론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없진 않았다. 품질 좋은 한국 제품을 파는 회사가 한국스런 느낌이 아니라 아랍 단어를 이름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이에 느끼는 바가 컸던 유 대표는 곧바로 서비스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 브랜드의 이름은 바로 ‘언니’다.

 

|‘no’에 ‘w’ 하나 찍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깨달음, ‘나우버스킹’
요즘에는 소위 ‘맛집’을 방문했을 때 대기가 있으면 웨이팅 등록을 하고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받을 수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카카오톡 기반 대기고객 관리 솔루션 ‘나우버스킹(대표 전상열)’의 서비스다.

나우버스킹은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 출신들이 2014년 뭉쳐 만든 스타트업이다. 창업 여부를 두고 모두가 고심하던 시절,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 영국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템즈강변에서 ‘노 버스킹(no busking·버스킹 금지)’이라 쓰인 팻말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음악가 하나가 나타나더니 팻말의 ‘no’ 옆에 ‘w’를 적어 넣고는 곧바로 버스킹을 시작했다. ‘노 버스킹’이 ‘나우 버스킹’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전상열 나우버스킹 대표.(사진: 나우버스킹)
전상열 나우버스킹 대표.(사진: 나우버스킹)

이 공동창업자의 이야기에 나머지 멤버들이 받은 영감은 컸다. 네이버라는 큰 공연장을 뛰쳐나와 스타트업이라는 길거리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겠다는 용기와 각오를 얻었다. 나우버스킹이란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고, 지금까지 비즈니스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정의가 돼 줬다.

“우리에게 ‘w’라는 글자는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그건 바로 ‘wow(와우)’한 것이었고. 세상을 바꾸는 ‘wow’한 것을 만들면 스타트업도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전상열 대표)

 

|중의적 표현에 담긴 뚜렷한 정체성, ‘비건포레스트’
‘비건포레스트(대표 이나금)’는 콩을 이용한 식물성 단백질을 주원료로 건강한 간식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최근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vegan)’ 열풍이 불고 그에 대응한 식품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만큼 반감이나 의구심 또한 적지 않다.

이에 이나금 대표는 주저하는 소비자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고 싶었다. 비건포레스트는 그 같은 고민의 산물이다. ‘비건의 숲’이라는 뜻으로 읽히지만, 동시에 ‘vegan for rest’로 읽을 수도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휴식 혹은 편안함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이나금 비건포레스트 대표.(사진: 비건포레스트)
이나금 비건포레스트 대표.(사진: 비건포레스트)

비건포레스트가 처음 내놓은 제품이 거창한 요리가 아닌 두부 과자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대중의 식생활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건 부담스럽지 않고 가벼운 스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참고로 이 두부 과자의 이름은 ‘두부로운’이다.

“개인적으로 네이밍 센스가 뛰어난 편이 결코 아닌데, 운 좋게 잘 지어진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니었나 싶어요.”(이나금 대표)

 

|‘어덜키즈’를 위한 유러피안 감성, ‘꼬메 맘마’
‘아트브러쉬(대표 강혜리)’는 어린이 색조화장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하고 싶은 이른바 ‘어덜키즈(adulkids)’를 겨냥한 제품으로, 천연 소재와 안전한 성분을 배합해서 만든다. EWG(environment working group) 그린 등급도 획득했다.

강혜리 대표가 오랜 기간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만든 브랜드명은 ‘꼬메 맘마(come mamma)’다. 이탈리아어로 ‘엄마처럼’이라는 뜻이다. 엄마를 흉내내고 싶은 어린 딸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이다.

 

꼬메 맘마 대표제품 ‘크리스탈레이크 페어리핑크’.(사진: 아트브러쉬)
꼬메 맘마 대표제품 ‘크리스탈레이크 페어리핑크’.(사진: 아트브러쉬)

유럽은 우리와 달리 어린이 화장품이 일찍부터 발달하고 활성화됐다. 강 대표가 벤치마킹하고 싶은 브랜드도 모두 유럽 회사들이었다. 꼬메맘마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감성을 자신의 브랜드에 녹여내고 싶었던 의지의 산물이다.

“엄마를 따라서 화장놀이를 하고 싶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엄마들이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엄마처럼’ 화장을 해 보는 것으로도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강혜리 대표)

 

|‘K-culture’의 세계화를 선언한 이름의 무게, ‘서울 시스터즈’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K-푸드를 표방하는 스타트업 ‘푸드컬처랩(대표 안태양)’은 유산균을 베이스로 한 김치 시즈닝을 만들어 판매한다. 매운맛부터 짠맛, 단맛, 신맛까지 다양한 매력을 가진 김치의 감칠맛을 내세운다.

푸드컬처랩의 브랜드명 ‘서울 시스터즈’의 역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생 안찬양 이사와 함께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던 안태양 대표는 야시장에서 떡볶이 장사에 뛰어들었지만 시장 공략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안태양 서울 시스터즈 대표.(서울 시스터즈)
안태양 서울 시스터즈 대표.(서울 시스터즈)

당시 현지에서 한국 문화 열풍이 불었고 맛도 충분했지만 소비자들은 좀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그때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떡볶이를 파는 한국 자매, 즉 ‘서울 시스터즈’라는 네이밍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대성공을 거뒀고, 그 정체성은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의 브랜드명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 시스터즈 이전에 지은 이름은 ‘핫시스(hot-seas)’였습니다. 매운 시즈닝이란 뜻이었죠. 그런데 의미를 야릇하게 곡해해서 떡볶이엔 관심 없고 전화번호를 묻는 이들만 들끓었죠. 결국 하루 만에 버렸죠. 이름의 중요성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안태양 대표)

 

|모든 이들이 추억을 기억할 수 있는 그날까지, ‘니은기억’
‘니은기억(대표 장준근·장유근)’은 액자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오프라인 매장이나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기성품 액자를 넘어 고객들이 추억하고 싶은 특별한 것들을 담을 수 있는 액자를 내세운다.

우리는 스마트폰 갤러리에 수백 수천 장씩 사진을 갖고 있지만, 이를 인화해 액자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니은기억은 액자뿐만 아니라 사이즈와 해상도 같은 기술적인 부분까지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장준근(左)·장유근 니은기억 대표.(사진: 니은기억)
장준근(左)·장유근 니은기억 대표.(사진: 니은기억)

장준근 대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간직하고 기억하려는 욕구도 갖고 있다고 강변한다. 니은기억은 바로 여기에서 착안한 네이밍이다.

“사람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발견하면 카메라가 없더라도 손으로 네모를 만드는 시늉을 하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도 언제부터인가 골을 넣으면 ‘네모 세레머니’를 하잖아요. 그 손의 모양이 ‘니은(ㄴ)’과 ‘기역(ㄱ)’입니다. 기역보다는 기억이 더 의미에 어울린다 생각해서 최종적으로 지금의 이름이 탄생했죠.”(장준근 대표)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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