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동지이자 고객…B2B말고 業2業에 꽂힌 혁신가들
스타트업을 위한 스타트업 열전
스타트업은 동지이자 고객…B2B말고 業2業에 꽂힌 혁신가들
2021.03.15 21:02 by 최태욱

지난주 최고 화제는 쿠팡의 나스닥 입성이었다. ‘동아시아의 아마존’을 꿈꾸던 쿠팡이 글로벌 스타트업으로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다. 꽤 신선한 자극이 됐나보다. 곧장 컬리 발 뉴욕 증시 검토 소식이 들렸고, 야놀자, 티몬 등 국내 상장을 추진 중이던 스타트업들의 셈법 역시 복잡해졌다. 벌써부터 “향후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이 줄을 이을 것”이란 섣부른 예측도 나온다. 꽁꽁 숨겨왔던 K-스타트업의 잠재력이 세계무대에서 터질 조짐이 보인다.  

얄궂게도 이 같은 낭보 속에서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의 고질적인 한계도 드러난다. 상장 대기표를 뽑은 기업이 대부분 이커머스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벤처가 스타트업으로 명찰을 바꿔 달던 2010년대 초반부터 “우리 스타트업은 유독 B2B(기업 간 비즈니스)에 약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생태계의 건강함 측면에서도 산업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미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의 68%는 테크 중심의 B2B 기업이다. 

통상 B2B 사업모델은 개인 대상 거래에 비해 수익성·안정성·확장성에 대해 높게 평가받는다. 기업 경영을 위한 서비스와 기술이 다른 비즈니스의 성장을 돕는다는 점에서 건강한 선순환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국가별 시장 상황에 영향을 덜 받아 해외 진출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에겐 꽤 높은 벽이다. 대중의 수요만 꿰뚫으면 성공이 보장되는 B2C와는 달리, 대상 기업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실적이 담보돼야하기 때문이다. 돈과 자원, 경험이 부족한 신생 기업으로선 의욕만으로 넘을 수 없는 문턱이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B2B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의 활약은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전장의 동지들인 만큼 맞춤형 솔루션이 도출될 확률이 높고, 영업 기회를 확보하기도 용이하다. 그 결과 한 쪽은 경영의 효율성을 얻고, 한 쪽은 레퍼런스가 쌓인다. 동병상련으로 시작한 협업이 동반성장으로까지 이어지면 중간층이 두터워지는 효과가 생긴다. 스타기업과 영세기업이 양분한 K-스타트업 생태계의 지도가 송두리째 바뀌는 것이다. 

 

수익성‧안정성‧확장성이 월등한 B2B 사업모델은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의 일환이다.
수익성‧안정성‧확장성이 월등한 B2B 사업모델은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의 일환이다.

| 협업 툴부터 재무관리까지…시행착오 줄이는 외부의 도우미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기업 성장에 있어)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이며, 좋은 경영은 경제적인 발전은 물론 사회적 화합까지 가져 온다”고 했다. 그런데 스타트업에겐 경영의 3요소라는 사람·돈·물자가 모두 부족하다. 스타트업을 타깃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아이템이 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유다. 

2015년 11월 설립된 ‘마드라스체크’는 ‘플로우’라는 협업 툴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핀테크 기업 ‘웹케시’의 사내벤처 출신인 이학준 대표가 연결의 힘을 바탕으로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로 론칭했다.

“협업이 잘 되려면 추적관리가 빠르고 정확해야 해요. 특히 스타트업은 사람이 들고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누가 언제 찾아도 흐름과 과정, 현재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어야 하죠. 그 부분에 허점이 보이더라고요. 스타트업들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스타트업에게 시행착오는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요.”(이학준 대표)

플로우는 메신저, 프로젝트 소통, 워크플로우, 화상회의 등의 운영 툴을 한국적이면서도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제공한다. “평범한 조직도 플로우를 통해 비범하게 만들겠다”던 초심대로, 설립 4년 여 만에 누적 가입 팀 수 12만개를 돌파하며 시장에 녹아들고 있다. 

플로우가 내부 협업툴이라면 ‘채널톡’은 외부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과거 사무실을 내면 가장 먼저 설치하던 전화기가 챗봇으로 바뀌고 있는 시대라는 것에 착안, 2018년 설립한 ‘채널코퍼레이션’이 고객과 기업의 연결고리를 자처하며 내놓은 서비스다. 상품 카테고리는 크게 채팅상담, 마케팅, 팀 메신저 등으로 나뉜다. 최시원 채널코퍼레이션 대표는 “철저히 고객 지향적이되, 대기업이 쓰는 것보다는 캐주얼하고 심플한 것이 우리 서비스의 특징”이라며 “미래 커뮤니케이션의 표준이 되려는 노력을 통해 70만 중소사업자들이 공기처럼 쓸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학준(사진) 플로우 대표는 “엔지니어 중심의 스타트업들은 여러 툴에 능통하지만, 커머스나 마케팅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툴 다루는 데 익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사진: 마드라스체크)
이학준(사진) 플로우 대표는 “엔지니어 중심의 스타트업들은 여러 툴에 능통하지만, 커머스나 마케팅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툴 다루는 데 익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사진: 마드라스체크)

비용의 대한 고민 역시 중요한 경영 관리 활동이다. 특히 부족한 돈을 쪼개 써야 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스팬딧’은 이런 현장의 고민을 비즈니스로 풀어냈다. 경비 처리부터 전표 작성·관리까지, 기업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 처리과정의 자동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앱과 웹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처리 가능한 신속성과 투명성이 핵심. 오세준 스팬딧 팀장은 “외부 비즈니스에 집중한 나머지, 내부 프로세스 구축에 허점을 보이는 스타트업들을 위한 서비스”라며 “스타트업을 포함한 기업들로부터 꾸준히 피드백을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에는 회사 내의 모든 돈의 흐름을 원활하게 컨트롤하는 서비스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출범한 ‘고위드’는 스타트업의 신용 기준을 새로이 확립해 각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돕는 스타트업이다. 정말 필요한 곳에 자본이 융통되는 것이 금융의 미덕이지만, 아무리 잠재력이 탁월한 스타트업도 기존 금융의 틀 안에서는 자본을 조달 받기 힘든 현실에 착안한 것. 첫 번째 실천 과제는 스타트업을 위한 법인카드 발급이다. 지난 2017년 설립 4개월 만에 유니콘에 등극한 미국의 법인카드 핀테크 스타트업 ‘브렉스(Brex)’ 모델을 차용한 것. 이 회사의 조영모 카드사업팀장은 “많은 스타트업에서 법인카드 수요를 포착했지만, 이들이 가진 조건으로는 기존 은행의 카드 발급 기준을 뚫을 수 없었다”면서 “이에 스타트업에 맞는 신용평가 기준을 마련해 기존 카드사를 직접 설득·영업해가며 서비스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답답한 속이 뻥 뚫릴 만한 지원군이다. 고위드는 초기 고객들의 활발한 피드백에 힘입어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선진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위드와 스펜딧은 스타트업의 돈 문제를 후방 지원하는 스타트업이다.(사진: 각 사)
고위드와 스팬딧은 스타트업의 돈 문제를 후방 지원하는 스타트업이다.(사진: 각 사)

| 틈새시장에서 주도시장으로… 제2의 유니버셜디자인 꿈꾼다
스타트업을 위한 스타트업의 활약은 시장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초석이다. 한화생명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드림플러스(DREAMPLUS)에서 활약하다, 지난 2018년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마크앤컴퍼니’를 설립한 홍경표 대표 역시 이 부분을 주목한다. 

“B2B스타트업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검증과 실적이에요. 좋은 솔루션 만들어도 다른 기업에 제시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제대로 검증만 된다면 순식간에 생존이 아니라 성장을 도모하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죠.”

홍 대표가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만들겠다”며 독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마크앤컴퍼니는 현재 ‘혁신의 숲’이란 플랫폼을 통해 기업의 정량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를 영문화하여 해외 기업데이터 플랫폼과도 연계할 계획. 스타트업을 위한 부동산 중개나 채용 플랫폼 등 업계의 고질적이며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솔루션도 속속 선 뵐 계획. 모든 활동의 지향점은 하나로 모인다. 스타트업 시장의 성장과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공급하는 스타트업 5곳이 모여 ‘B2B SaaS 얼라이언스’를 결성한 것도 B2B기업 활성화와 스타트업 시장의 선순환을 위한 것이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공급하는 스타트업 5곳이 모여 ‘B2B SaaS 얼라이언스’를 결성한 것도 B2B기업 활성화와 스타트업 시장의 선순환을 위한 것이다.

B2B의 과정으로 '業2業'을 택한 기업들의 행보는 출발선에 해당한다. 마치 계단이나 문턱 등을 없애며 장애인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전 인류, 전 세대 디자인의 표준이 된 것처럼, 스타트업을 위한 서비스 역시 ‘스타트업만을 위한’ 서비스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 분야의 활약이 산업 전반의 ‘뉴노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쇼크 이후 대기업에서도 점차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원격·재택근무 등의 방식은 스타트업 분야의 일반적인 업무 형식을 닮아있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스타트업들 역시 이미 대기업 고객사를 경험하고 있다. 플로우를 서비스하는 ‘마드라스체크’는 지난해에만 이랜드리테일, BGF리테일, 에쓰오일 등과 새로이 파트너십을 맺었고, 스팬딧 역시 대기업 고객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오세준 스팬딧 팀장은 “내부에 재무 관련 팀이 있는 기업도 코로나19이후 상황에서 내부 프로세스를 처리할 프로그램이 부재하여 우리 서비스를 사용한다”면서 “앞으로도 스타트업과의 협업과 피드백을 통해 서비스 품질을 고도화하고, 범용성을 높이는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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