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파피루스 읽기 (上) "이달 급여일이 18일이나 지났습니다"
파업 파피루스 읽기 (上) "이달 급여일이 18일이나 지났습니다"
2015.12.21 17:30 by 곽민수

‘고대 이집트’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발달시킨 4대 문명 중 하나 또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비롯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상대방을 잡아먹었다는 무시무시한 스핑크스가 생각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문명을 남긴 고대 이집트에서도 우리네 현대인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혹시 상상해보셨는지요. 우리 시대 사람들처럼 웃고, 울었던 평범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 최첨단 기술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작지만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룩소르 지역의 나일강(사진 : 곽민수)

1년간 세 계절 - 아케트, 페레트, 셰무

고대 이집트에서는 1년을 세 계절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 계절은 아케트(akhet)라고 불리는 ‘홍수의 계절’입니다. 현대의 달력으로는 대략 6월 ~ 9월입니다. 이 시기에 이집트의 젖줄인 나일강이 범람해 이집트 전역이 홍수에 잠깁니다. 이집트를 풍요의 땅으로 만들어낸 주역은 이 때 범람한 홍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현대의 달력으로 10월에서 1월에 이르는 기간인 페레트(peret), 즉 ‘생장의 계절’이 이어집니다. 10월 즈음 이집트 전역에서 물이 빠지면 나일강 상류에서 운반돼 온 비옥한 토양이 드러납니다. 이집트의 농부들은 새롭게 탄생한 대지에 씨를 뿌렸습니다. 마지막 계절은 ‘수확의 계절’인 셰무(shemu)입니다. 2월에서 5월 사이,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Ra)의 축복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작물들을 수확합니다. 곧 다시 찾아올 홍수를 대비해 수로도 정비합니다.

 “이번 달 급여일이 벌써 18일이나 지났습니다.”

파피루스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오늘 장인들이 5개의 감시탑을 지났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 (급여일이) 벌써 18일이나 지났습니다.’ 말을 끝마친 그들은 메네-케페르-라(Mene-Kheper-Ra) 신전의 뒤편으로 가 앉았다.” 데이르 엘-메디나의 장인들이 파업을 시작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의 급여 지급은 18일이나 밀려있었습니다. 이곳 장인들은 주로 주식의 재료가 되는 밀가루로 급여를 받았지만, 가끔은 남는 밀가루를 가지고 기호품이나 사치품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급여가 연체되자 끼니까지 거르게 되었고, 결국에는 파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는 분명한 계급사회였고, 파라오를 포함한 상류계층의 권력과 권위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계층도 개인과 가족의 기본적인 생존권이 위협 받을 때에는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파업의 공간적 배경인 룩소르 서안(출처: 구글어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메네케페르라’라는 이름은 “라의 현현(顯現)이 지속된다.”라는 뜻으로 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Thutmose III, 재위 기원전 1479-1425)의 즉위명입니다.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무덤을 만들던 룩소르의 서안에,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자신들을 위한 장례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개인용 신전을 룩소르 서안에 건설하였습니다. 파라오들의 무덤 역시도 룩소르 서안에 만들었지만, 무덤이 깊은 계곡 속 은밀한 장소에 지어지던 것과는 달리 신전은 개방된 공간에 지어졌습니다. 이러한 신전들을 보통 ‘장례신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전들은 평소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데이르 엘-메디나의 장인들은 이렇게 통제되어있던 신전 내부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농성은 밤새도록 계속 됐습니다. 밤샘 농성을 벌이는 장인들에게 관리 책임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돌아오라. 우리가 파라오의 일을 맡고 있다.” ‘파라오의 일을 맡고 있다’라는 표현은 ‘우리에게는 분명한 책임이 있고, 그러니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 하겠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이 말을 듣고 시위자들이 곧바로 철수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파피루스의 다음 단락을 보면 시위가 다음 날에도 계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투트모스 3세. 룩소르 박물관 소장 (사진 : 곽민수)

“29년, 페레트의 2번째 달, 11번째 날. 그들이 또 다시 (감시탑을) 지났다. 그들은 우세르-마아트-라 세테프-엔-라(User-Maat-Ra Setep-en-Ra)의 신전 남쪽 입구에 이르렀다.” 이 날 시위장소는 전날 갔던 투트모스 3세의 장례신전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이었습니다. 우세르-마아트-라 세테프-엔-라는 ‘라의 정의는 강력하다. 라에게 선택 받은 자’라는 뜻으로, 람세스 대왕으로 잘 알려진 람세스 2세의 즉위명입니다. 이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은 ‘라메세움’이라고도 불립니다. 11번째 날에 관한 기록은 위와 같이 한 마디만 쓰여 있지만, 장인들은 전날과 비슷한 방식으로 시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람세스 2세.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사진: 곽민수)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사진 : 곽민수)

다음이야기 파피루스 속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시위. 과연 그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고대 이집트 엿보기'의 마지막 이야기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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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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