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덧칠한 예술, 컬쳐테크 시대 활짝
긴급진단, ICT로 진화하는 문화예술 스타트업
기술로 덧칠한 예술, 컬쳐테크 시대 활짝
2021.05.17 12:43 by 최태욱

“지난해 2월부터 잡혀있던 오프라인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어요. 수개월 간 밤잠 설치며 준비했는데 너무 야속하더라고요. 부랴부랴 온라인 전환을 준비했지만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너무 급작스레 맞닥뜨리게 된 거죠.”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 스타트업 대표의 회상이다. 그가 느낀 야속함은 이내 당혹감으로 변했다. 찻잔 속 태풍이길 바랐던 감염병 사태는 강력한 토네이도가 되어 전 세계를 휩쓸었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를 위축시켰지만 문화예술‧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피해는 특히 심각했다. 행사‧공연‧전시가 줄줄이 연기되고, 기약 없는 연기에 무기한 취소도 잇따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로 취소‧연기된 문화예술 행사는 총 6457건에 이르며 피해액은 823억원에 달한다. 가장 접근성 높은 문화 산업인 영화 쪽도 반 토막이 났을 정도. 문화생활 전에 일상생활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위기에 가장 민감하게 대처하는 건 역시 작고 기민한 조직인 스타트업이다. 문제 인식과 동시에 솔루션을 찾고 이내 실행해 나서는 스타트업 특유의 프로세스는 산업 전반에 활력과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07억원이었던 문화예술 분야의 창업지원 예산을 올해 491억원으로 대폭 증가시킨 것도 이러한 기대의 발로다. 그 기대대로 문화예술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이미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다. 핵심 키워드는 역시 ‘디지털 전환’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 블록체인 등 활용 가능한 혁신 기술을 여기저기 덧대가며 돌파구를 마련한다. 감성을 추구하던 문화예술 기업의 이성적인 변신을 직접 들여다보자. 

 

문화예술과 테크와의 만남, 컬쳐테크의 시대가 열렸다.
문화예술과 테크와의 만남, 컬쳐테크의 시대가 열렸다.

| 오프로드는 험난하다…무대 옮긴 아티스트들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의 가장 큰 강점은 상상하고 구현해내는 힘이다. 박인남 한국콘텐츠진흥원 기업육성팀장은 “매년 200~300개 정도의 문화예술 분야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타 분야 기술기업에 비해 기획력‧상상력‧창조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이는 위기에 더 빛나는 역량이다. 문화예술을 CSR과 접목해왔던 스타트업 ‘필더필’의 새로운 도전이 좋은 사례다. 

창업 5년 차의 필더필은 ‘예술가의 느낌을 사회에 채우다’라는 미션답게, 문화예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기업이다. 2017년부터 3년 간 이어진 ‘산타런’이 이들의 대표 콘텐츠. 산타 복장을 입은 채 달리고 놀면서 이를 기부와 연결하는 페스티벌로, 대기업의 사회공헌과 신진 아티스트들의 작품 활동까지 잇는 나눔과 화합의 무대다. 매년 3000명 이상이 참여하며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던 찰나, 지난해 코로나19 발발과 함께 급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무용 전공자인 신다혜 필더필 대표의 춤사위는 멈추지 않았다. 위기에 맞춰 준비한 새로운 도전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OTT(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서비스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3000 여 명이 참여했던 기부 페스티벌 '산타런' 현장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3000 여 명이 참여했던 필더빌의 기부 페스티벌 '산타런' 현장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미 만들어진 영상 콘텐츠도 넘쳐나는데 유통이 저조한 게 현실이죠. 유튜브에서 수익 올리기도 어렵고, 대형 포털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문화예술 분야의 특화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기로 한 거죠. 아티스트들의 수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고요.”(신다혜 대표)

해당 서비스의 출시 예정 시기는 오는 8월말, 서비스 이름은 ‘Ordinary Aritist Live’ 플랫폼의 준말인 OA LIVE(오아라이브)다. 오아라이브는 언제 어디서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으로, 문화예술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는 공연예술계의 넷플릭스를 지향하고 있다. 문화기획사의 성격이 짙었던 필더필은 이번 신사업을 계기로 IT기업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이미 3명의 경력개발자를 초빙하는 등 인적 구성도 마쳤다. 신다혜 대표는 “일단은 컬쳐테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기술력을 구축하는 게 목표”라며 “향후 다양한 기술 접목을 실험하며 시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다혜(사진) 필더필 대표
신다혜(사진) 필더필 대표

필더필의 새 무대가 OTT서비스라면, 미술 플랫폼 서비스 스타트업인 ‘로그아트’의 새로운 스테이지는 이커머스다. 한국화가 출신인 홍종철 대표가 지난 2018년 설립한 로그아트는 영상을 통해 미술 작가·작품과 관객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이를 구매까지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각종 아트페어, 경매 행사, 굿즈 기획전 등을 진행했던 로그아트는 지난해부터 온라인의 비중을 조금씩 늘리며, 이커머스로의 진화를 준비했다. 홍종철 로그아트 대표는 “지금까지의 판매 활동과 SNS마케팅을 통해 충분한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했다”면서 “올해부턴 본격적인 이커머스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미술품 중개를 넘어, 로그아트만의 PB(Private Brand) 상품 개발 등을 통해 콘텐츠의 다양화도 꾀할 예정. 홍 대표는 “작가들의 열정과 고객들의 기호를 제대로 연결하여, 미술을 제대로 취급하는 회사라는 정체성을 구축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로그아트의 미술 작품(황지현 작가, 왼쪽)와 홍종철 대표
로그아트의 미술 작품(황지현 작가, 왼쪽)와 홍종철 대표

 

| 보다 기술적인 것이 보다 예술적인 것
문화예술 분야는 타 분야에 비해 아날로그적인 특성이 강한 영역이다. 문화예술 분야의 스마트화를 앞세운 교육·세미나·특강이 넘쳐나는 것도 다소 더딘 디지털 전환에 대한 반작용이다.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비즈니스 초기부터 ICT요소를 적극 접목해 시장을 개척한 스타트업들도 있다. 이들의 시선은 단순히 기술의 접목이 아닌, 고객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기술의 정교화‧고도화에 맞춰져 있다. 

2017년 설립한 ‘옴니아트’는 디자이너 브랜드 ‘얼킨’을 통해 ‘온디맨드 시각 라이선스 커머스’를 서비스하는 스타트업이다. 저작권이 풀린 명화, 아이돌 스타의 캐릭터, 아티스트의 작품 같은 IP(Intellectual Property‧지적재산) 중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시뮬레이션한 후 의류·잡화·컵 같은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소비자가 자사 플랫폼 내에서 원하는 IP나 적용하고 싶은 제품을 직접 선택하면 곧바로 스마트 공정과 연결돼 ‘나만을 위한’ 제품이 탄생하는 것. 이성동 옴니아트 대표는 “고객 입장에선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고,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다양한 라이선스를 소비자에게 노출할 수 있어 수익 창출이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옴니아트에서 제작한 의류를 착용한 가수 비비
옴니아트에서 제작한 의류를 착용한 가수 비비

옴니아트의 핵심 자산은 시뮬레이션 기술 관련 특허다. 다양한 IP가 실물 오브젝트, 그러니까 의류나 잡화 등에 자연스럽게 적용되기 위해선 3D실물에 가깝게 표현하는 기술이 필수. 옴니아트는 지속적으로 R&D과제를 수행하며 이 시뮬레이션 모듈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소비자가 현실에 없는 상품을 웹상에서만 보고 구매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이질감을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이었다”면서 “이를 위해 소비자들의 반응과 피드백을 축적하고, 대학 연구기관들과도 협력하면서 기술력을 확보해왔다”고 했다. 

기업의 당면 과제 역시 시뮬레이션 기술의 고도화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향후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는 IP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개별 브랜드로 론칭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성동 대표는 “앞으론 오프라인을 온라인에서 구현하는 정도가 아닌 오프라인에 없던 걸 온라인에서 선뵐 수 있는 수준을 만족시켜야 한다”면서 “미래를 지향하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기술을 완성하여 이 분야의 게임 체인저로 우뚝 설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성동(사진) 옴니아트 대표
이성동(사진) 옴니아트 대표

지난해 10월, 아시안 스타트업 컨퍼런스 ‘A-STREAM’ 파이널 IR에서 1위를 수상하며 존재감을 뽐냈던 ‘달라라네트워크’는 지난 3월 ‘트윙플’이란 플랫폼을 새로 오픈하며 컬쳐테크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지난 2018년 기존의 스타메이킹 시스템의 한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달라라네트워크는 유저가 중심이 되는 신개념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표방하는 스타트업이다. 걸그룹 출신이었던 김채원 대표의 경험을 자산 삼아, 기획자나 엔터테인먼트 업계 주도가 아니라, 팬덤 주도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오픈형 스타메이킹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 

 

김채원(사진) 달라라네트워크 대표
김채원(사진) 달라라네트워크 대표

이번에 베타버전으로 론칭한 트윙플은 아티스트 지망생들이 올린 챌린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지난 두 달 간 약 1000여 명의 예비스타가 콘텐츠를 업로드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 김채원 대표는 “두각을 나타내는 예비스타들이 속속 등장하며 팬덤까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반 유저들 입장에선 이들이 올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지망생 입장에선 기획사와의 연결고리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달라라네트워크는 트윙풀 플랫폼 론칭을 계기로, 향후 보다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컬쳐테크로의 진화를 완성할 계획이다. 온라인 오디션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투표 조작이나 위·변조를 원천봉쇄하고, 크라우드 펀딩과 리워드 시스템을 적용해 팬이 직접 스타를 키우는 환경을 구축하는 식이다. 객관적인 스타 지표를 만들기 위해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능을 활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김채원 대표는 “모든 산업이 그렇듯, 문화산업 역시 시장의 중심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옮겨지고 있다”면서 “이 같은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고, 그에 적합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만이 컬쳐테크 분야를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라네트워크의 트윙플 플랫폼 캡처 화면
달라라네트워크의 트윙플 플랫폼 캡처 화면

 

/사진: 각 사 제공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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