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의 혁신, 밀키트 시장 이끄는 스타트업
집밥 전성시대, 밀키트 스타트업의 현재와 미래
밥상 위의 혁신, 밀키트 시장 이끄는 스타트업
2021.06.28 23:40 by 최태욱

외식은 외면하고 모임은 모면하는 시대가 길어진다. ‘시대유감’을 심각하게 느끼는 쪽은 역시나 외식업계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외식업체 10곳 중 9곳이 매출 부진을 겪었고 7곳은 폐업마저 고려했을 정도다.(한국외식산업연구소‧2020) ‘먹고 마시는 문제’는 인간사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다. ‘외식 길’이 막혔으니 자연스레 집밥의 비중이 높아졌고, 그 사이 외식업계는 배달‧포장 시장과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 시장 중심으로 재편됐다. ‘비수’와 ‘특수’가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한 셈이다. 

특히 가정간편식 시장은 바람을 제대로 탔다. 2015년부터 연평균 17.5%의 성장률을 구가해왔던 이 분야는 지난해 코로나 특수까지 흡수하며 올해 5조원 규모로 덩치를 키웠다. 기존의 시장 지배 기업들이 관련 투자를 대거 늘리고, 식품‧유통 분야 대기업들까지 속속 출사표를 던지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포스트 펜데믹 시대, 식탁 위의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기업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되는 이 시장에서 유독 스타트업이 절대강자로 군림하는 분야가 있다. 간편식의 편리함에 요리의 체험까지 선사하는 밀키트(Meal Kit)가 그 주인공이다.

 

밀키트 제품은 간편식의 이점과 요리의 경험을 모두 누릴 수 있다.
밀키트 제품은 간편식의 이점과 요리의 경험을 모두 누릴 수 있다.

| “이 구역 대장은 나야 나!” 스타트업 깃발 펄럭이는 밀키트 시장
밀키트(Meal Kit)는 최소한으로 손질된 식자재와 양념, 레시피 등을 제공해 직접 조리 후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앞서 가정간편식이 그렇듯, 밀키트 시장 역시 코로나19를 계기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시장규모는 전체 가정간편식 시장의 6% 내외에 불과하지만 성장 폭만 따지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지난 2017년 15억원 규모에 불과했던 밀키트 시장은 올해 3000억원 규모를 바라보고 있다. 무려 2900%의 성장률. 같은 기간 30%의 성장률을 보인 가정간편식 전체 시장을 압도하는 수치다. 

알짜배기 시장을 일찌감치 접수한 건 스타트업들이다. 지난 2011년 국내 최초로 밀키트 사업을 시작한 ‘마이셰프’를 필두로, '테이스티나인'(2015), '프레시지'(2016) 등이 대활약하며 시장의 덩치를 키웠다. 임종억 마이셰프 대표는 “90%에 달하는 재구매율에 힘입어 창업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면서 “특히 지난해 코로나 사태 이후 밀키트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며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순풍에 돛을 단 듯 내달리다보니 외부 평가 역시 후해졌다. 주요 플레이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시작을 끊는 건 레디잇, 탐나는밥상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테이스티나인. 홍주열 테이스티나인 대표는 “B2B와 B2C, 온오프라인과 모바일 등 다양한 무대에서 라이프 스타일 체인저를 지향해온 노력으로 성장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획득했다”면서 “코스닥 상장 요건에 부합하다고 판단, 상장주간사 선정과 함께 식품 스타트업 1호로 상장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레디밀 전문 기업 테이스티나인의 '탐나는밥상' 제품
레디밀 전문 기업 테이스티나인의 '탐나는밥상' 제품

치열하기로 소문난 식품 시장에서 스타트업들이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는 밀키트 제조 공정의 특성 때문이다. 푸드테크 기업 ‘마켓온오프’의 헤드셰프를 맡고 있는 이현호 이사는 “(밀키트 제품의 경우) 제육볶음 하나를 해도 채소와 고기, 소스, 분말, 기름 등을 다 따로 소분 포장해야하기 때문에 공정이 많아지고 일일이 사람 손을 거친다”면서 “자동화, 대량생산 등이 힘든 만큼, 다품종 소량생산의 키워드로 독자적인 제조 공정을 구축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장 선도 기업들은 저마다 최적화된 제조 공정을 구축하고 있다. 프리미엄 간편식을 지향하는 테이스티나인은 프리미엄 HMR SPF(Specialty stores retailers of Private label Food, 전문점-자사브랜드-식품) 모델 구축을 통해 중간유통 과정을 없앤 덕분에 생산원가 절감, 재고부담 완화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마이셰프는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과 ISO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한 자체 공장에 밀키트에 최적화된 생산관리 및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소속 셰프가 직접 개발한 소스와 500여개의 밀키트 레시피를 제조한다. 임종억 마이셰프 대표는 “밀키트 제조 공정은 노동집약적으로 비용 부담이 높아 대기업 입장에선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라며 “이는 특화된 제조 공정을 갖춘 스타트업들의 시장 점유율과 주도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임종억(사진) 마이셰프 대표(왼쪽)와 마이셰프의 제조공정
임종억(사진) 마이셰프 대표(왼쪽)와 마이셰프의 제조공정

| 변주와 콜라보, 다양한 맛과 체험 가능케 한다 
초창기 밀키트 제품의 메뉴 구성은 다소 제한적이었다. 면 요리나 튀김 등 간편식 하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메뉴나 스테이크 같이 아예 파티 요리를 연상시키는 메뉴로 이원화됐다. 하지만 밀키트에 대한 심리적 접근성이 높아지고,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한계 없는 메뉴 구성이 가능해졌다. 포장‧배달 산업이 외식업계의 모든 메뉴를 안방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사연 가득한 노포(老鋪)의 손맛부터, 유명 오너셰프의 특별식까지 밀키트가 흡수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집밥이 일상화되면서, 마치 엄마의 밥상을 연상시키는 가정식 메뉴가 크게 증가한 것도 특징. 국·탕·찌개 등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고 한식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간편식에 거부감을 보이는 중‧장년층까지 포용하려는 전략과도 맞닿아있다. 업계 1위로 평가받는 프레시지의 경우 전처리 야채, 샐러드, 육류, 소스, 레토르트, 반찬류 등 총 7가지 식품 유형에 500여 종에 달하는 제품을 생산한다. 스타트업답게 유행하는 문화 코드를 발 빠르게 캐치해 메뉴에 녹여내는 기민함도 뽐낸다. 실제로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프레시지의 ‘채끝짜퐈떡볶이’ 메뉴는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짜파구리’의 콘셉트를 차용한 것이다. 

언택트 시대의 신흥 소비주체는 누가 뭐라 해도 MZ세대다. 밀키트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업종 및 콘텐츠와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가치와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를 사로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때론 식품기업들과, 때론 문화 콘텐츠와 연계하며 밀키트가 가진 맛과 멋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프레시지는 이미 30년 이상의 업력을 지닌 노포들과 협업해 ‘백년가게 밀키트’라는 브랜드를 출시했고, ‘63빌딩’으로 잘 알려진 한화호텔앤리조트와 합을 맞춘 ‘63 다이닝 키트’를 비롯, 다양한 레스토랑들과 RMR(Restaurant Meal Replacement‧레스토랑 간편식) 제품을 기획‧제작하며 맛의 변주를 꾀하고 있다.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의 콜라보도 활발하다. 마이셰프는 이달 초 아티스트이자 요리 크리에이터인 유튜버 ‘허챠밍’과 함께 개발한 밀키트 신제품과 관련 굿즈 등을 처음 선보였다. 임종억 마이셰프 대표는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팬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 크리에이터 고유의 특성을 우리 밀키트에 그대로 녹여내는 데 집중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했다”면서 “실제로 협업 제품 출시 직후 빠르게 주문이 폭주하여 품절 소동을 벌어지는 등 소비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귀띔했다.

 

마이셰프는 폭넓은 고객층 유입을 위해 다양한 협업을 통한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요리 크리에이터 ‘허챠밍’(사진)과 함께 개발한 신제품
마이셰프는 폭넓은 고객층 유입을 위해 다양한 협업을 통한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요리 크리에이터 ‘허챠밍’(사진)과 함께 개발한 신제품

가정간편식으로 불리지만 그 무대가 가정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업계의 주요 기업들은 이미 B2B부터 해외시장까지 시야를 확장시킨 지 오래다. 비즈니스 전용 밀키트 제품을 서비스하는 방식부터 생산 솔루션, 플랫폼,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방식까지 다양하게 이뤄진다. 

아예 출범 초기부터 B2B를 정조준한 스타트업도 있다. 2015년 론칭한 푸드테크 스타트업 ‘플레이팅’은 ‘셰프의 찾아가는 사내식당’이라는 오피스 케이터링 서비스를 앞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사내 직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기업 구독형 서비스로, 전속 셰프의 식단으로 메뉴가 구성되며 음식의 배송과 배식, 수거까지 담당한다. 최대 1000명 규모의 기업까지 이용이 가능하며 서비스의 전 과정이 자체 개발한 어플로 관리된다. 장경욱 플레이팅 대표는 “공유오피스가 대세인 미국 스타트업씬에서는 식사를 사내에서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돼있다”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이를 직접 보고 겪은 것을 떠올리며 비즈니스를 구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론칭 이후, 전문 셰프가 직접 고안한 700여 개의 메뉴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 국면을 맞은 기업들의 수요가 높아지며, 서비스 도입에 대한 문의가 전년 동기대비 500% 이상 증가했을 정도다.

 

플레이팅의 ‘찾아가는 구내식당’ 서비스 전경
플레이팅의 ‘찾아가는 구내식당’ 서비스 전경

| 강렬한 도전, 잠재된 위협… 수성 위한 과제들
먹거리 패러디임의 변화 속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밀키트 스타트업들. 많은 전문가들은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본격적인 막을 올려도 이미 정립된 음식 소비문화가 쉽사리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주력 소비계층인 1인‧맞벌이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중·장년층 소비자까지 점차 포용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밝은 전망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는 신호들도 감지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쟁쟁한 경쟁자들의 합류 러시다. 앞서 언급했듯 4년 간 30배나 커진 시장을 식품‧유통 대기업들이 좌시할 리 없다. 실제로 국내 1위 식품기업인 CJ제일제당을 시작으로, HY(구 한국야쿠르트), 동원홈푸드 등이 밀키트 분야로의 본격 참전을 알렸고, SSG닷컴이나 배달의 민족 같은 온라인 유통기업들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식품과 유통 분야의 탄탄한 벨류체인을 앞세운 이들의 도전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이에 대해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는 “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될 전망이란 것은 경쟁 역시 치열해진다는 걸 의미한다”면서 “가격 경쟁으로는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분화된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레시피로 승부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건비·원자재값·물류비 등의 부담은 고질적인 문제이자 과제다. 밀키트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는 ‘높은 제품 가격’ 역시 이로부터 나온다. 제품 안전성 등에 특히 민감한 식품군의 특성상 마냥 비용을 줄이기도 마땅찮다. 여기에 식재료 하나하나가 소분 포장되는 제품 특성상 언제든 폐기물 이슈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급변하는 외부 정세 역시 예의주시해야하는 부분. CJ 제일제당의 한 관계자는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외식업계 상황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는 만큼, 지금 당장의 시장성만 보고 무작정 (가정간편식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각 사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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