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두 손에 ‘희망’을 쥐어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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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두 손에 ‘희망’을 쥐어주렵니다
노숙인 두 손에 ‘희망’을 쥐어주렵니다
2015.09.25 16:58 by 최태욱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일자리 창출로 빈곤 퇴치 나선 ‘두손컴퍼니’

 최근 한 종편 채널에서 막을 내린 드라마 ‘라스트(LAST)’는 서울역 노숙인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로 눈길을 끌었다. 극중 주인공은 노숙인들의 인권과 재기를 위해 수없이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이미 4년 전부터 비슷한 사투를 벌이던 회사가 있었다. ‘싸움’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통해서다. 노숙인들과 함께 일하며 ‘땀의 가치’를 전파하고, 그들의 재기를 응원하는 소셜벤처 ‘두손컴퍼니’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1년 7월 설립된 두손컴퍼니는 사람과 일의 가치를 중시하는 소셜벤처다. (사진: 두손컴퍼니 제공)

“마음속에서 뭔가 ‘찌릿’한 게 느껴졌어요. 분노와 울분, 황당함이 뒤섞인 감정이었죠.” 지난 2011년 여름 접했던 신문기사. 박찬재(27) 두손컴퍼니 대표의 시선이 노숙인에게 고정된 계기다. ‘철도공사가 역사 내 야간 노숙행위를 전면금지하고, 노숙인들을 쫒아낸다’는 내용의 보도. 박 대표에겐 ‘방아쇠’가 됐다.

사실 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남들처럼 취업 걱정이 우선이었다. 그 흔한 봉사활동 경험도 없었다. 사회적 가치나 혁신, 창업 같은 건 ‘먼 나라’ 얘기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마음 맞는 친구 서너 명을 모아 서울역으로 달려갔죠.”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 무작정 거리의 노숙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보살피는 사회복지사나 시설 관계자의 얘기도 수집했다. 그렇게 6개월. 노숙인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과정은 자연스럽게 ‘시장조사’가 됐다.

“노숙인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왜곡돼있단 걸 느꼈어요. 흔히 매스컴에선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처럼 표현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30%도 안됐죠. 이 일 저 일을 찾아다니며 재기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노숙인들이 훨씬 많았어요.”

가장 시급한 건 ‘꾸준한 일자리’. 박 대표는 “보통 실내에선 박스나 쇼핑백 만드는 일을 하고, 시장이나 공사장에선 허드렛일을 구했는데, 워낙 들쑥날쑥하다보니 생활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일자리를 통한 빈곤의 퇴치’라는 미션이 탄생하게 된 이유다.

두손컴퍼니는 박찬재 대표(맨 오른쪽)를 포함, 총 10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 중 2명은 노숙인 출신이다.(사진: 두손컴퍼니 제공)

과정은 험난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헌책방, 가구 ‘업사이클링’(Up-cycling‧버려진 제품에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 휴대폰 부속품 수집 등 여러 아이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관계자는 외면했고, 법과 제도의 벽은 높았다.

처음 가능성을 보인 건 ‘옷걸이’ 사업이다. 친환경 소재의 옷걸이(A-Hanger)에 기업의 광고를 붙여 만든 제품. ㈔서울노숙인시설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일·문화카페(여성노숙인 생활시설)’ 등 6개의 노숙인 시설에 일감을 제공했다. 지금까지 30만개에 누적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자리 잡았지만,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처음엔 ‘전 국민의 옷걸이를 바꿔보자’는 목표였어요. 많이 팔릴수록, 노숙인 분들의 일자리가 안정되니까요. 그런데 기업 광고 수주로 수익을 올리는 사업구조상 연속성이 떨어지더라고요. 우리가 생각했던 꾸준하고 지속적인 일자리로선 부족했죠.”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두손허브센터(물류센터) 내부 모습 (사진: 두손컴퍼니 제공)

올해 3월 시작한 물류업은 새로운 도전이다. ‘노숙인들이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과 제조업을 경험하며 얻은 노하우가 만난 결과다. 론칭 초기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물류센터(두손허브센터)개관 5개월 만에 10개의 고객사가 생겼다. “더 받고 싶어도 창고에 자리가 없다”고 말할 정도. 회사 매출의 무게중심 역시 물류업 쪽으로 크게 넘어간 상태다. 작은 회사들에게 특화된 맞춤형 물류시스템이 최고의 강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마리몬드’, ‘와디즈’, ‘골드넥스’, ‘에코준컴퍼니’ 등 중·소규모의 회사들이 고객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두 명의 노숙인을 직접 고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설립 4년차, 옷걸이와 컵홀더를 만드는 제조업체에서 물류업까지 진출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두손컴퍼니. 그 동안 이 회사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깨달은 노숙인은 80여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같이 일하는 (노숙인)분께서 ‘드디어 딸에게 연락을 했다’며 자랑하신 적이 있어요. ‘날 피하진 않을까, 괜한 피해를 주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연락을 주저하셨던 분이죠. 일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피부로 느껴집니다.”

하민종(24) 두손컴퍼니 매니저의 말이다. 하 매니저는 “쉬는 날에도 전화해서 ‘일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며 감사인사를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말은 회사 전체의 ‘힐링 메시지’가 된다”며 웃었다. 박찬재 대표는 “이 일을 하며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홈리스(Homeless) 야학교실에서 2년간 교사 생활을 했는데, 열정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을 많이 접했어요. 자기 힘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간 분이 있을 정도죠. 밝고 긍정적인 사람들도 많아요.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숙인’이란 글자 안에 가뒀던 고정관념과 편견들을 거둬내면 말이죠.”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