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가 되는 향초,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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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가 되는 향초, 어떤가요?”
“삶의 쉼표가 되는 향초, 어떤가요?”
2015.12.05 21:00 by 이화정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핸드메이드 향초·디퓨저 전문기업 ‘리디아(LYDIA)’

 ‘힐링’이란 말이 넘쳐나는 시대. 하지만 실체는 묘연하다. 지친 마음을 스스로 치유해가며 사는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 ‘리디아(LYDIA)’는 ‘고통을 오롯이 표현하는 게 먼저’라고 제안한다. 슬픔을 간직한 양초 ‘Depressed Candle(우울한 초)’를 통해서다. 수제 양초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이런 시도를 한 곳은 ‘리디아’가 유일하다. 잿빛 우울함을 간직한 이 양초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

‘리디아’가 판매하는 ‘Depressed Candle’. 회색빛깔로 사람들의 우울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감정이 있는 초다.

“둘째 딸이 우울증을 겪었어요. 긴 유학 생활 동안 자신을 감추고 살았던 탓이죠. 우울증이 심해져 안면 마비까지 왔을 때 비로소 자신을 돌보는 법을 깨달았죠. 그때부터였어요. 딸과 함께 감정노동에 지친 이들을 위한 향초를 만들기 시작했죠.” 최승희(60) 리디아 대표는 “리디아는 우리 가정을 하나로 묶은 교집합”이라고 했다. 최 대표의 말대로 ‘리디아’는 가족 기업이다. 향초와 디퓨저를 제작하는 어머니 최승희 대표를 필두로 재무 담당을 맡는 아버지 김예식(66)씨, 디자인과 마케팅은 두 딸인 김은아(35)·은수(32)씨가 이끌고 있다.

‘리디아’의 최승희 대표가 수제 향초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지난 6월 출시된 ‘Depressed Candle’은 이 회사 제품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겉보기엔 그저 회색빛의 자그만 돌멩이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실패’(failure), ‘외로운’(lonely), ‘슬픈’(sad) 등과 같은 단어가 아로새겨져 있다. 이 제품을 기획한 김은수씨는 “감정이 있는 초”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Depressed cake shop’ 을 만난 적이 있어요. 우울증으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을 디자인한 회색 케이크였죠. 그런데 제 눈에는 그 케이크가 우울해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처럼 케이크를 먹으며 위안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죠.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돌처럼 딱딱해질 수 있다는 걸 공감하는 상품을 만들면 어떨까 했어요.” 예상은 적중했다. 첫 선을 보인 ‘청심환 페스티벌’ 플리마켓(사단법인 오픈핸즈 주최․주관)에서 또 다른 야심작 ‘마카롱 캔들(Macaron Candle)’과 함께 완판을 기록하며, 판매 1위에 오른 것. “플리마켓(Flea Market․벼룩시장)치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었는데 의외였어요.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오히려 솔직하게 털어놨더니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모두가 위로받고 싶어 하는 시대를 사는 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죠.”(김은수씨)

‘리디아’의 또 다른 주력 상품인 ‘마카롱 초’. 눈으로, 코로 달콤함을 즐기게 하는 초다.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언니 김은아씨도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리디아가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평일 저녁과 주말을 ‘리디아’에 반납하고 제품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뤄지는 탓에 공정은 더딘 편이지만, ‘한 땀 한 땀’이 만드는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대표 디퓨저 제품 중 하나인 미모사(Mimosa)나 제비꽃(Parma Violet) 향은 인공 향 대신 천연 향을 접목시키는 수고로움으로 지친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 “‘리디아’는 사실 종교적인 여인인데, 제 마음 속의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세상을 힐링하고자 했던 여인의 비전이 ‘리디아’라는 기업에 녹아있는 셈이죠.” 최 대표의 설명에 남편 김예식씨는 “아직까지 수익은 신통치 않다”며 웃었다. 하지만 알음알음 ‘리디아’의 비전을 공유하는 이들이 늘며 매출도 호조세라고 한다. 최근엔 편집숍 ‘주느세콰’(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진출했고, 현대백화점 판교점 등 5곳의 백화점 입점도 이뤄졌다. 내년에는 성수동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 예정. “‘리디아’를 시작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미혼모들을 교육시켜서 사업을 확장시키면 어떨까 하고요. 이렇게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리디아’가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거창하진 않아도, 그게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