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스인가 메기인가’ 종횡무진 스타트업에 산업계 갈등 일파만파
혁신과 기존 산업의 격전지, 그 전선을 가다
‘배스인가 메기인가’ 종횡무진 스타트업에 산업계 갈등 일파만파
2021.08.31 11:42 by 최태욱

바야흐로 혁신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부터 펜데믹 쇼크까지의 5년은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선언적 구호에 절실함이 듬뿍 실리는 시간이었다. 이제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어떤 분야도 혁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태생부터 혁신의 조직인 ‘스타트업’은 그야말로 시대의 총아다. 온 나라의 자금과 인재, 관심을 쑥쑥 빨아들이며 잠재력을 경쟁력으로 바꾼다. 혁신의 경쟁력은 시장을 재편하고 또 창조하는 최대 무기다. 

모자란 것을 채우고 부족한 것을 개선하는 정도를 ‘혁신’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해야 혁신이다. 그래서 더 험난하다. 오래 굳어진 체제와 관념이 족쇄로 작용하고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최근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는 스타트업들도 그 험난한 관문에 들어섰다. 스타트업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기존 시장의 견제와 제동은 거세진다. ‘타다 금지법’을 신호탄 삼아 불거진 갈등 양상은 이제 그 전장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혁신 기업과 기존 산업들 간의 격전지, 새로움과 위태로움이 뒤섞인 그 무대를 <더퍼스트미디어>가 정리해봤다.

 

스타트업의 파괴적 혁신, 기존 산업계에는 생태계 교란?
스타트업의 파괴적 혁신, 기존 산업계에는 생태계 교란?

| 유망 스타트업 분야에 전운 ‘모락모락’ 
지난해 발행된 ‘2020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보고서(아산나눔재단 외)에선 향후 활약이 기대되는 유망 스타트업 분야로 ▲온라인 플랫폼 ▲핀테크 ▲원격의료 ▲리걸테크 ▲인공지능 등을 꼽았다. 공교롭게도 혁신의 시험대가 돼야 할 바로 이 무대에서 최근 기존 산업과 마찰이 잦아지고 있다. 

그중 가장 첨예한 곳은 ‘리컬테크’(Legal Tech‧첨단 기술을 활용한 법률 서비스)다.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이 불을 당겼다. 로톡은 법률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출시된 변호사 광고 플랫폼이다. 지난 2014년 출시 이후 “수요자의 선택권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나브로 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현재 4000여명의 변호사가 참여 중이다. 

하지만 기존의 법·질서의 시선에선 로톡의 행보가 마뜩잖다. 불법과 편법으로 생태계를 교란한다며 질타하고, 이미 가입한 변호사들에겐 탈퇴를 강요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인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 측은 “변호사법에선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변호사를 고용해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광고료에 따라 변호사를 노출시키는 온라인 플랫폼은 변호사법에서 금지하는 ‘사무장 로펌’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간 형태”라며 제동을 걸었다.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지난 5월 31일 변협에서 소속 변호사들이 로톡 같은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변호사윤리장전 조항을 신설했고,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곧장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맞불을 놨다. 로앤컴퍼니 측은 “(우리 서비스는)변호사와 소비자 간 연결 공간만 제공할 뿐 상담료나 수임료 등은 변호사들 스스로가 책정한 것이라 로펌으로 볼 수 없다”면서 “온라인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려는 젊은 변호사들의 노력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직역단체에 걸맞은 태도가 아니다”라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지난 25일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로톡은 합법”이라며 혁신에 손을 들어줬지만, 변협 측은 ‘로톡 가입 변호사의 징계’,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신고’ 등을 강행하며 갈 길은 가겠다는 입장이다. 법을 둘러싼 신구의 대립각이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다. 

 

기존 법질서라는 암초에 부딪친 리컬테크 분야
기존 법질서라는 암초에 부딪친 리컬테크 분야

원격의료 분야는 혁신의 생채기가 유독 심한 곳이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보수성에 힘이 실리는 명분도 강하다. 원격의료를 놓고 정부와 의·약계가 치열하고 지난한 대립을 펼쳐왔던 이유다. 하지만 코로나19 쇼크 이후 ‘비대면 진료 한시 허용’ 등 빗장이 조금씩 풀렸고, 지난 6월에는 정부의 ‘원격의료 규제챌린지’ 추진이 발표되는 등 점점 혁신의 가속도가 붙고 있는 추세다. 

비대면 진료&약 배달 애플리케이션 ‘닥터나우’와 대한약사회의 대립은 딱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최근 원격의료의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정부 정책과제에 비대면 진료 및 의약품 원격조제와 약 배달서비스 제한적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되면서 대한약사회와 전국 16개 시도약사회가 발끈하고 나선 것. 약사회 측은 “국민의 건강권을 담보로 일부 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약 배달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 시 오·남용은 물론, 범죄에 악용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쏟아냈다. 

 

원격의료는 혁신의 진입이 유독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원격의료는 혁신의 진입이 유독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약사회의 우려에도 불구, 비대면 진료 분야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닥터나우의 경우 월 평균 9만명, 누적 원격진료 211만 건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 12월 대한약사회로부터 당한 고발 건(약사법 위반)이 최근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도 혁신 쪽에 힘을 실어준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경쟁이 아닌 상생의 길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장 대표는 “우리 플랫폼의 주인공은 결국 의사와 약사”라며 “마을 약국과 마을 고객이 대면, 비대면을 넘나들며 소통의 범위를 확장하고 이를 통해 모두의 편익이 증진되는 건설적인 방향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닥터나우는 향후 자사 플랫폼의 서비스 방식과 사실관계를 면밀히 검토해 주무부처의 유권해석을 받는 동시에, 약사회와의 소통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 존재감 커질수록 견제도 거세질 것…결국 넘어야 할 산

“난생 처음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이제 진짜 시작’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AI세무 플랫폼 ‘삼쩜삼’을 서비스하는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의 김범섭 대표는 올해 4월 한국세무사고시회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자비스앤빌런즈가 프리랜서 사업소득 환급이라는 광고를 하며 불법세무대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행 세법에서는 세무사자격이 없는 자는 세무대리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자비스앤빌런즈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높은 수수료 때문에 전문 세무사 사무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배달 및 택배 기사, 크리에이터, 플랫폼 노동자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1인당 평균 10만원대 정도의 소액 환급금을 돌려주는 간편 세무 시장인 만큼, 기존 세무법인에서 다루지 않았던 틈새시장이라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 전문직의 영역에서 스타트업의 존재를 의식하고 경계하는 움직임이 보다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탈의 한 관계자는 “전문직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중개하는 플랫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유독 기존 산업계와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면서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이는 스타트업이 일을 아주 잘 해내고 있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고 귀띔했다. 점점 커지는 스타트업의 위상이 기존 산업계를 동요시키고 있다는 애기다. 

지난 7월 공인중개사협회가 ‘대형 부동산플랫폼 기업 골목상권 침탈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온라인상에서 인증샷 릴레이 시위를 펼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직방 같은 부동산 플랫폼이 막대한 자본과 정보력으로 직접 중개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상도의에 반할 뿐 아니라 중개업권을 침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직방에서 새롭게 내놓은 ‘온택트파트너스’를 겨냥한 것으로, 해당 서비스는 소비자가 가상현실(VR)과 3차원 기술 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매물을 둘러볼 수 있도록 개발된 프롭테크 기술이다. 이에 직방 측은 “우리는 중개사와 이용자를 위한 디지털 도구로써 디지털 네트워크를 제공할 뿐, 중개는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중개사가 직접 하는 모델”이라며 선을 그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스타트업의 성숙도와 비례해 넘어야 할 관문이 높아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세무사고시회와 공인중개사협회가 경계하는 건 간편 세무시장 잠식이나, 가상현실 서비스의 등장 같은 것이 아니다. 어느새 100만 회원 수를 보유한 자비스앤빌런즈의 전파력과 10년 이상의 내공으로 완성된 직방의 시장 침투력, 그 자체다. 

 

부동산 업계는 프롭테크 스타트업의 도전을 맞닥뜨리게 됐다.
부동산 업계는 프롭테크 스타트업의 도전을 맞닥뜨리게 됐다.

| 쌓여 가는 고소장…상생발전의 길은 없나?
이 밖에도 부동산 담보 가치 평가 서비스 ‘빅밸류’와 감정평가사협회,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와 대한의사협회의 대립까지 산업계 전반에 신구의 대치전선이 길게 늘어져 있다. 각각의 전선에서 고소‧고발이 넘나드는 가운데, 유권해석과 규제완화 정책까지 복합적으로 얽히며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이는 역사와 전통이 증명하는 예상된 암초일지도 모른다. 경영컨설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버와 에이비엔비도 무더기 벌금을 맞고 법원에 들락날락거리며 지금에 이르렀다”면서 “해당 시기에 가장 합당한 근거를 토대로 완성되었고, 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킴으로써 공고해지는 것이 ‘체계’인 만큼, 기존의 체계를 흔드는 일에는 많은 난관과 비난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장과 고객은 편의만을 생각한다. 그런 면에선 이용자 편의를 극대화시킨 스타트업들을 기존 산업계가 넘어서기는 버겁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과 질서가 무시 되어서도 곤란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가 나서 참여와 중재,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이유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혁신의 드라이브를 거는 것 같지만, 막상 기존 산업계의 반발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뚝심과 소신을 독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조정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선거와 맞물리게 되면 이익단체의 표심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전통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이익단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곧 있을 대선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고 귀띔했다. 

 

기존의 체계를 흔드는 일에는 많은 난관과 비난이 따라온다.
기존의 체계를 흔드는 일에는 많은 난관과 비난이 따라온다.

세상은 부지런히 내일을 향해 간다. 초창기 스타트업이 시장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데 그쳤다면 오늘날의 스타트업은 금융이나 교육, 통신, 제조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이면서도 탄탄한 체제를 가진 시장에 당당히 입성해 판을 흔들고 뒤집는다. 스타트업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배스일까, 아니면 생태계에 활력을 주는 메기일까? 그 답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로운 공존 여부에 달려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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