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can do anything’…스타트업 C레벨의 하루
스타트업 C레벨 집중 탐구
‘C can do anything’…스타트업 C레벨의 하루
2021.09.14 18:16 by 최태욱

“미팅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요 조금만 삐끗해도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너지기 때문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죠. 체감 상 하루 에너지의 90%는 미팅으로 소비되는 느낌이에요.”

한 스타트업의 초보 CTO A씨가 밝힌 업무 소감이다. 기술 논문이나 관련 세미나를 탐닉하며, 신기술 동향을 살피고 적용하는 일이 제일 편했던 A씨였지만, 이제는 회사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며 이들을 조율‧관리하는 일에 어렵사리 적응해가고 있다. A씨는 “스타트업 C레벨 임원의 대부분이 낯선 경험과 막중한 책임으로부터 어려움을 느껴봤을 것”이라며 “나 역시 C레벨로서 필요한 능력을 하나둘 절감하고 시나브로 채워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C레벨. 문자 그대로 직급 상 ‘chief(최고위자)’를 말한다. 경영(CEO), 재무(CFO), 기술(CTO), 마케팅(CMO) 등이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구성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요구나 회사의 소구점에 따라 얼마든지 유기적인 변주를 꾀할 수도 있다. 창의력이 자산인 게임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최고책임자인 ‘CCO’에 힘을 실어주거나, 고객 관리가 중요한 회사에서 고객 최고책임자인 ‘CCO’를 신설하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C레벨은 더욱 특별한 위치다. 소수정예의 꼭짓점으로 ‘대체불가’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팀에 융해하는 혁신의 촉매제이자, 회사의 경쟁력과 방향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활약한다. 한 스타트업의 CFO는 “C레벨의 임무 중 가장 막중한 건 아프지 않는 것”이란 너스레로 스타트업 내 C레벨이 갖는 책임의 무게를 표현한다. 혁신기업의 현재와 오늘을 오롯이 책임지는 C레벨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며, 어떤 내일을 준비할까? <더퍼스트미디어>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 C레벨 임원들의 하루를 톺아봤다. 

C레벨 인터뷰이(가나다순): 김아름 팀윙크 본부장(30‧CMO), 남현우 그린랩스 본부장(37‧CTO), 유이경 프레시코드 이사(32‧CMO), 이경엽 스페이스워크 이사(32‧CTO), 이권기 서울벤처스 상무(48‧CFO), 황수빈 마크앤컴퍼니 이사(38‧CFO)

 

스타트업 맨파워의 정점, C레벨을 알아보자.
스타트업 맨파워의 정점, C레벨을 알아보자.

| 소통…또 소통, C레벨은 수다쟁이?
기업의 임원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는 ‘결재서류’에 서명하는 풍경이다. 최종적으로 선택 혹은 결정하는 인물의 이미지가 강한 것. 하지만 스타트업의 C레벨은 그에 앞서 수많은 ‘소통’이 선행된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 ‘미팅’으로 점철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데이터농업 스타트업인 ‘그린랩스’의 남현우 CTO는 “경영진 미팅으로 하루를 열고, 팀장급 미팅으로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면서 “오후 미팅은 기술적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인데 서비스 개발 팀, 신선마켓 팀, 스마트팜 팀, 데이터 팀, 아키텍쳐 팀 등이 모두 원격으로 접속하는 메타버스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스페이스워크’의 이경엽 CTO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되는 그의 일과는 프로젝트 별 미팅, 외부 관계사 미팅, 채용 관련 미팅 등으로 빼곡 채워져 있다. 이경엽 CTO는 “일과를 다 마무리해도 매니저들과의 개별 미팅이 수시로 이뤄지고, CEO와의 메신저도 줄기차게 이어진다”면서 “다른 회사의 CTO들과 틈나는 대로 교류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수평적인 소통은 스타트업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트업은 ‘일이 성사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이고, 이를 위해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다. 조직문화의 정점인 C레벨들이 수다쟁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문 액셀러레이터 ‘마크앤컴퍼니’의 황수빈 CFO는 “CFO가 숫자만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를 파악해야 하고, 내‧외부의 모든 이해관계자와 끊임없이 스킨십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팀윙크’의 김아름 CMO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회사 메신저로 팀원들의 밀린 질문에 답을 하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면서도 쉼 없이 이야기 한다”면서 “저녁 시간 이후나 주말에는 임원 단위의 논의까지 이뤄지는 만큼, 말 그대로 24시간 연중무휴로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남현우(사진) 그린랩스 CTO
남현우(사진) 그린랩스 CTO

| 토대 위에 그리는 대계, 인재 발굴은 최대의 과제
스타트업은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민첩하게 도출해 시장의 평가를 받는다. 솔루션의 완성도와 사업모델의 단단함 못지않게 중요한 게 ‘빠르게’와 ‘민첩하게’다. 스타트업씬에서 시간은 곧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스타트를 끊는다. 사업초기에 합류한 C레벨의 경우엔 자신이 팀 내에서 맡게 될 직무 분야의 토대를 스스로 구축해야 경우도 많다. 이경엽 CTO가 스페이스워크에 합류할 시점이 꼭 그랬다. 

“주거공급 문제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인데도, 소형 부동산 거래는 여전히 가치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아요. 부동산 중개 전문가들도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장이죠. 그 니즈를 기술로 구현하기 위해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했어요. 사내에 아무런 기술적 기반이 없었거든요. 공인중개사 법부터 건축법까지 다 공부했고, 정보 및 문서 관리도 처음부터 싹 다시 했죠.”(이경엽 스페이스워크 CTO) 

다른 C레벨 임원들도 비슷한 초기 미션을 수행했다. 남현우 그린랩스 CTO는 ‘초보 농민도 전문가에 준하는 생산성과 수익을 얻게 하자’는 회사 미션에 맞춰, 데이터 기반의 농업 어플리케이션인 ‘팜모닝’을 직접 개발했고, 푸드테크 스타트업 ‘프레시코드’의 유이경 CMO는 자사의 샐러드를 픽업할 수 있는 공유 배송지 ‘프코스팟’의 개념을 창안하는 등 고객을 찾고 시장을 만들어 가는 모든 과정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그린랩스의 팜모닝 앱이 국내 농민 3명 중 1명이 이용할 정도로 데이터농업 솔루션의 대표주자로 등극하고, 프레시코드가 20만 회원을 보유한 프리미엄 샐러드 브랜드로 급부상했던 일련의 성취는 모두 C레벨의 개척자 정신에 빚을 지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에 인공지능을 결합한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벤처스’의 이권기 CFO 역시 고독한 개척자의 시기를 보냈다. 이권기 CFO는 “2019년 연말 쯤 처음 회사에 합류했을 당시, 회사가 가진 기술력과 방향성에 비해 재무적인 정리가 굉장히 부족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뒤죽박죽되어 있던 장부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새로운 재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이경엽(사진) 스페이스워크 CTO
이경엽(사진) 스페이스워크 CTO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튼튼한 도약대를 만들었다면, 직접 점프에 나설 선수들도 친히 발굴‧육성해야 한다. 팀의 미래를 이끌 인재 육성이야말로 스타트업 C레벨의 최대 과업으로 꼽힌다. 유이경 프레시코드 CMO는 “매일 2시간 씩 이력서를 검토하는 게 루틴이 됐다”는 말로 인적 레이더를 곧추세워야 하는 C레벨의 숙명을 내비쳤다.  

남현우 그린랩스 CTO는 자신의 일 년 성과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인재 발굴을 꼽기도 했다. 그는 “업무의 터전이 1차 산업인 농업 분야라 기술과 개발자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했다”면서 “농업 분야에 혁신의 마중물을 부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에 역량 있는 개발자들을 설득해서 합류시키는 작업에 큰 에너지를 쏟았다”고 말했다. 1년 만에 30명에 이르는 정예 개발팀이 구성된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다. 이경엽 스페이스워크 CTO는 토대 구축과 인재 육성을 병행했던 케이스다. 기술적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팀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이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은 초보 CTO인 그에게 너무도 험난한 과정이었다. 이경엽 CTO는 “C레벨에게 필요한 건 천재적인 업무 능력이 아니라, 체계적인 관리능력이란 걸 절감했다”면서 “약 2년 간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중간관리자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지금의 시스템이 안착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황수빈(사진) 마크앤컴퍼니 CFO
황수빈(사진) 마크앤컴퍼니 CFO

| 좁고 깊게는 옛말…넓고 깊게 파야하는 게 스타트업의 C레벨 
어떤 조직이든 C레벨은 해당 분야의 국가대표 급 역량을 전제로 한다. 뾰족한 전문성을 담보하다보니 때론 선입견이 생기기도 한다. CTO는 왠지 천재 개발자 출신일 것 같고, CFO는 여의도를 주름잡았던 투자자였을 것 같은 선입견 말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스타트업 플레이어다. 스타트업의 흥망성쇠에 모두 관여해야 하는 만큼, 한 분야에 매몰되기 보단 기업의 모든 활동에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구성원 모두가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권기 서울벤처스 CFO는 “사내 재무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니 기업이 장사하는 부분도 신경쓰게 되더라”고 했다. 자금이 들고 나는 걸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CFO의 숙명이다. 이권기 CFO는 “잠재적 고객사를 만나 PT도 하고 설득도 하면서 고객 유치에 나서 본 적도 있다”면서 “영업사원부터 CEO의 역할까지 두루 수행해야 하는 게 CFO란 자리”라고 덧붙였다. 두 곳의 스타트업에서 투자재무총괄 역을 수행했었던 황수빈 마크앤컴퍼니 CFO 역시 “C레벨은 단지 타이틀 일 뿐, 회사의 모든 일을 내 일처럼 맡아 주는 게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이라며 “공부와 독서를 꾸준히 하면서 미래를 읽어내는 능력을 함양하려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의 광범위한 활약은 늘 ‘번 아웃’의 불씨를 남긴다. 유이경 프레시코드 CMO는 “마케팅과 관련된 모든 일에 조금씩 관여하다보니, 업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게 느껴진다”면서 “시장과 고객의 디테일이 쉼 없이 변하기 때문에 눈앞에 닥친 일만 처리해내고 있는 데도 지루할 틈이 없는 구조”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아름 팀윙크 CMO는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일을 함으로써 얻는 재미와 보람이 커서, 초반에는 퇴근도 잊을 정도로 업무에 푹 빠져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역할과 범위가 커지고, 엮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묻지마 식’ 열정보단,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조금 더 요구받게 된다. 김아름 CMO는 “회사가 나에게 무거운 타이틀을 부여했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감도 함께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최근엔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 체력과 멘탈 관리를 신경써가면서, 번 아웃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이경CMO 역시 “스스로 워라벨 구분 없이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성향이 오히려 주변 팀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요즘엔 등산이나 필라테스 같이 여유를 느끼는 취미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유이경 CMO는 지난여름 타 분야의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강원도 고성으로 70km도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유이경(사진) 프레시코드 CMO
유이경(사진) 프레시코드 CMO

스타트업의 C레벨은 스타트업이란 함선의 선원이자 선장이다. 이 때문에 선원의 고달픔과 선장의 고독함을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자리다. 디테일을 챙기면서도 큰 그림을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평가하는 가운데 자신의 메타인지까지 체크하는 복잡다단함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다. 회사의 간판으로서 눈부신 성과의 주역이 되고, 혁신 생태계의 ‘구루’로서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다. 그 매력은 그들을 다시 일으키는 동력이다. 레벨이 다른 그들의 하루는 그렇게 완성된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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