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죽어 남긴 가죽, 저희가 되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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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죽어 남긴 가죽, 저희가 되살립니다’
‘호랑이가 죽어 남긴 가죽, 저희가 되살립니다’
2015.11.21 18:53 by 조철희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업사이클링 가죽 디자인 브랜드 ‘클라우드잼’

“저에겐 그저 재료에 불과했던 가죽이 어떤 것들에겐 소중한 피부더라고요.” 박주영(39) 클라우드잼(Cloudjam) 공동대표의 회상이다. 10년 간 가죽공예가로 활동했던 그는 지난 2년 전부터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작업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죽을 보며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아른거린 것. “그 때 이후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만 봐도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가죽공예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그는 우연치 않은 기회로 해답을 찾았다.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버려지는 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제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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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잼은 버려지는 자투리 가죽을 활용해 명함케이스, 지갑, 가방, 팔찌, 팬던트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귀걸이, 반지 등 크기가 작은 제품군. 수거한 가죽을 최대한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조그만 악세사리류에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박 대표는 “희생의 산물인 가죽제품을 희생 없이 만든다는 게 클라우드잼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독특함을 강조한 디자인도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이 회사를 떠받치고 있는 건 박주영‧유인호(24) 공동대표. 가죽공예 강좌에서 연을 맺었고, 그 인연은 동업으로 이어졌다.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을 접했어요. 소위 ‘잘나가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그 인기의 비결이 궁금했었죠. 그런데 그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그 안에 어떤 가치가 담겨져 있는지 알게 되니까 저 역시 돈을 모아서 그 가방을 사게 되더라고요.”(유인호 대표)

프라이탁은 스위스의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버려지는 방수천을 주 소재로 가방을 만든다. 지금은 연매출 600억 원 이상을 올리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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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의 가치를 공감한 두 대표는 지난해 8월 서울시 선거용폐현수막 업사이클공모전에 출전해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자투리 가죽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서울청년창업센터를 통해 사업 자본금을, 청년허브에서 공간을 임대받으면서 본격적인 사업화에 나섰다. 제품 제작부터 판매까지의 전 과정 역시 온전히 두 대표의 손을 거친다. 15살의 나이차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든든한 파트너라고 서로를 추겨세운다.

“저는 가죽공예를 하고 있었지만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은 몰랐고, 유 대표는 업사이클링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소재가 없었죠. 그런 둘이 만나 클라우드잼이 탄생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외향적인 유 대표가 외부 활동이나 사업적인 면을 책임지면, 저는 자연스레 제품 기획이나 작품 활동에 주력할 수 있습니다.”(박주영 대표)

고급 소재로 분류되는 가죽이지만, 의외로 수급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현재 클라우드잼은 가죽공장 1곳과 공방 2곳에서 자투리 가죽을 수거하고 있다. 유인호 대표는 “공장에서 꽤 큼지막한 가죽도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재료 확보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며 “버리는 것을 수거해가니 업체들도 되레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클라우드잼은 서울 종로4가혼수지하쇼핑센터에 입점한 '청년가게' 중 하나다. 위 사진은 클라우잼 매장에 전시된 가죽팔찌의 모습.

업사이클링 상품의 매력 중 하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을 소장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는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규격화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돼 대량생산이 어렵기 때문. 박주영 대표는 “향후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제품을 보다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가죽과 다른 소재와의 접목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투리 가죽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모습.

다행히 소비자 평가는 우호적인 편이다. 유 대표는 홍대 ‘플리마켓’(Flea Market‧벼룩시장) 등에서 수차례 소비자를 직접 만나며 그들의 호응을 확인했다고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독특하고 과감한 디자인이 통하는 것 같아요.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내실을 튼튼히 하면서 향후 해외 판로 확보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클라우드잼은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에 등록돼 있는 19개 브랜드 중 하나. 이들의 제품은 현재 서울 종로구의 클라우드잼 매장 외에도 마포구 늘장의 업사이클링 트렌드 스토어, 관악구 마켓인유 서울대점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클라우드잼 유인호(좌)·박주영(우) 대표.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