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마 100년, 부산경마장은 지금
한국 경마 100년, 부산경마장은 지금
2021.12.17 15:14 by 김주현

2022년은 이 땅에 공인 경마가 시작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 9개의 지방경마장 중 휴전선 이남에 있는 4개의 경마장을 돌아보는 한국마사회 말박물관 기획, 세 번째 부산경마장편이다. 부산경마장은 군산, 대구경마장에 비해 비교적 많은 자료가 남아있다. 전화(戰火)의 피해가 가장 적은 지역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특히 지금 부산시민공원이 들어선 구 하야리아 미군부대(Camp Hialeah) 철수 후 부산시민공원역사관을 건립하며 과거 경마장으로 사용되었던 기록을 직접 수집, 조사한 유현 학예사(부산시청) 덕분에 과거 부산경마장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1925년 조직된 사단법인 부산경마구락부는 1927년 설립인가를 받았고, 1930년 11월 18일 당시 부산 교외였던 동래군 서면 범전리에 면적 약 4만 8천평, 1,000m 규모의 주로를 갖춘 경마장을 준공했다. 준공에 이어 11월 22~26일, 12월 2~3일에는 추계경마를 개최했다. 비로소 ‘서면경마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기간 마권발매 규모는 186,280장, 마권매상이 372,560엔(円)으로 9개 공인경마장 중 서울(경성)에 이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9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부산경마장은 전국 9개 공인 경마장 중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큰 관람 인파를 끌어 모은 경마 도시였다. 출전 마필의 수도 1927년 99두, 1928년과 1929년에 각 176두, 1930년에 299두로 점차 증가해갔다.

신문기사를 보면 서면경마장이 들어서기 전에도 부산의 경마는 여러 장소에서 열린 바 있다. 초량역(구 부산역) 근처 해안 매축지(매립지), 연산리(현재 연산교차로에서 안락동 방향 일원으로 추정), 동래온천장 입구, (구)조선방직 광장에서도 경마를 개최했다. 대부분 근처에 하천이나 연못이 있고 철도역과도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린 부산 경마는 인근 지역민의 장거리 여행까지 유발했다. 1924년 동아일보에는 경북 밀양의 독자(신문구독자) 대상으로 부산의 추계경마 관광객을 모집하는 광고가 실렸다. 10월 19일 당일 오전 8시에 밀양역을 출발, 오후 9시에 돌아오는 일정이며 차비 1원 50전을 내면 당일 중식비는 지국에서 부담해 준다는 내용이다. 상춘이나 단풍놀이처럼 단체 경마관광의 풍조가 생겼던 것이다.

 

◆1930년 서면경마장 시대 도래 

1930년부터 부산경마는 공인 ‘서면경마장’의 시대로 접어든다. 주목할 점은 흔히 ‘서면경마장’이라고 일컫는 장소가 실상 3개의 경마장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현재 부산시민공원 내에 뚜렷한 주로 형태가 남아 있는 부산진구 범전동 64-3에 해당하는 제1 서면경마장이다. 이곳은 이후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일본군 기마부대, 1941년에 태평양전쟁으로 병참경비대, 1942년에는 연합군 포로를 관리하기 위한 임시군속훈련소, 다시 일본군 군수품 야적장으로 활용되는 수난의 역사가 혼재된 장소다.

1937년 가을부터 1945년 가을까지 기사를 통해 ‘서면경마장’이  ‘서면원두(原頭)’라는 용어로 갑자기 대체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주변으로 이전(移轉)한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제1 서면경마장의 별칭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원래 ‘원두’는 벌판이나 들판 언저리를 가리키는데 운동장의 애칭으로도 사용되었다. 1925년 개장한 동대문운동장이 한때 ‘성동원두’로 불렸다고 하니 ‘서면원두’는 제1 서면경마장이 부산시민들에게 친숙한 여가 장소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경마 시행에는 관람대와 마사가 필요한데 1937년 ‘서면원두’가 등장할 무렵에 전과 달리 대규모 시설투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1938년 부산관광안내도에서도 성지소학교(성지초등학교)와 바로 연해 있는 제1 서면경마장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일제는 전쟁이 한창이던 중에도 기존의 서면경마장에서 마권수익과 군마 훈련·조달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추구했던 것이다.

1945년 9월 29일 미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제1, 제2 서면경마장은 ‘하야리아캠프’(이 명칭은 1950년에 붙여짐)라 불리는 주한미군 기지로 탈바꿈한다. 인디언 말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의 하야리아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경마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부산시민공원역사관에는 서면경마장이 일본 병참경비대와 포로수용소를 거쳐 미군주둔지 그리고 다시 시민공원으로 변화한 질곡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뒤이어 1946년 제1 서면경마장 동쪽의 약간 아래쪽에 위치한 연지동 130번지 일대에서 국군이 사용하던 국유지를 임대하여 임시시설을 갖추고 경마를 재개했다. 이곳이 바로 제2 서면경마장이다. 부속시설은 확인할 수 없으나 주로 크기는 원래의 제1 서면경마장과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1949년 가을 미군정이 끝나면서 서면경마장이 다시 개방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제2서면경마장을 다시 사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계속되지는 않았다.

끝으로 부산경마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제3 서면경마장의 등장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몇 해 뒤인 1956년 봄, 하야리아부대 동쪽 부산진구 범전동 산 2번지 일대 골짜기를 깎아 길이 360m 미니 트랙을 설치하고 경마를 열었다. 하야리아 부대 내부의 제1, 제2 서면경마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제3의 장소를 바로 옆에 마련한 모양이다.

1,000m 주로인 제1 서면경마장의 1/3 규모에, 경주도 기수 10여명과 조랑말 70여두로 전쟁 후 열악한 상황 하에서 모든 것이 약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7년 여름까지 부산에서 마지막 경마를 시행한 장소였기 때문인지 실제로 둘러본 제3 서면경마장터에는 목욕탕, 방앗간, 식당 등 상점과 도로에 경마장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골짜기를 깎아 주로를 만들어 경마를 해냈던 부산사람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제3 서면경마장은 화려한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머지않아 다른 지방경마장들처럼 옛 지도 속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동산 앞에 붙은 화려한 재개발 조감도를 보며 100여년 전 경마장을 찾아 환호와 탄성을 보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필자소개
김주현

안녕하세요. 김주현 기자입니다. 기업과 사람을 잇는 이야기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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