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1 통행량이 적은 평일 밤 시각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앞서가던 트레일러와 추돌한 후 중앙분리대를 들이 받고 1차로에 거꾸로 멈춰선 승용차. 손상이 심한 차량 안에는 의식을 잃은 운전자가 갇혀있습니다. 차량 엔진부분에서는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해 구조가 몹시 시급한 상황입니다.
CASE2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인해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례입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고로, 목격자도 다수 있습니다.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운전자는 의식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손상된 차체로 인해 자력으로 빠져나오기는 힘든 상황인데요, 불길은 점점 거세져 갑니다.
위 두 사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고입니다. 교통사고 및 그로 인한 차량 화재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대조적인 상황인데요, 두 번째 사례의 운전자는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첫 사례의 운전자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현재까지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사고 직후 현장을 지나던 사람들의 신속한 대처와 적극적인 구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려 고속도로 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활동을 펼쳤던 박용식(51), 황영규(50), 박명자(59), 류현덕(52), 우미숙(50) 씨. 지난 해 ‘생명수호지기’를 수상한 이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립니다.
“나 자신이 남을 위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한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지난해 11월 19일, 부산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오고 있던 박용식 씨 일행은 밤 9시경 부산울산고속도로 청량IC 인근에서 사고차량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9개월가량 지났지만, 모두들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를 발견하고 일단 차를 갓길에 멈춰 세웠습니다. 어두컴컴한 언덕길이라 차 안의 모든 불을 다 켜놓고 조심스럽게 사고차량으로 접근했습니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고 엎드려 있는데, 처음엔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혹시 몰라 운전석 문짝을 떼어 내 보니 미동과 함께 신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사람 살아있다!’고 막 소리 쳤죠. 하지만 이미 전면 엔진부에서부터 불이 붙고 있었습니다. 구조가 상당히 시급한 상황이었죠.”
당시 일행이 탑승한 차량의 운전자였던 박용식 씨가 말했습니다. 박용식 씨는 차량 정비업에 종사하고 있던 덕분에 차량의 상태를 빨리 파악하고, 손상된 문도 떼어 낼 수 있었습니다. 평상시 차내에 비치해 둔 소화기로는 불길을 지연시켜 시간을 벌었습니다.
박용식 씨와 황영규 씨가 운전자를 구조하고 있을 때 여성 동승자인 박명자, 우미숙, 류현덕 씨도 가만히 보고만은 있지 않았습니다. 신속히 신고한 후 구조를 담당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핸드폰 액정을 밝혀 후속 차량에 사고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들이 먼저 구조에 앞장 선 모습을 보고 일부 운전자들도 차를 멈추고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차체가 심하게 손상된 탓에, 의자와 핸들 사이에 꼭 끼인 사고차량 운전자의 몸은 좀처럼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칫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무리하게 충격을 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트레일러 운전사인 황영규 씨는 당시 운전석을 넘보는 불길을 보니 순간 다섯 해 전 운전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직장 동료의 일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함부로 운전자를 잡아 뺄 수도 없어 우왕좌왕하는 사이 불이 아주 크게 났어요. 예전에 제 직장 동료가 사고가 났는데, 차에 불이 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차량 운전자도 그대로 두었다간 화재로 죽을 판이라 어떻게든 빼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상된 차체와 씨름하던 중 함께 구조를 돕던 다른 사람이 운전석 의자를 발로 세게 차자 운전석이 차체에서 떨어져나갔습니다. 끼어버린 다리까지 힘들게 빼 내 운전자를 안전한 곳으로 뉘이고 나서 10초나 흘렀을까요. ‘펑’ 하고 타이어가 터지더니 화염이 운전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도착한 구급차가 부상당한 운전자를 싣고 떠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습니다.
“그런 긴박한 상황, 어떻게 보면 부상당한 운전자뿐만 아니라 옆에서 구출하는 사람들의 목숨도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잖아요. 구하고 난 후 보니까 남자분들은 손이 유리에 찔리고 옷도 그을려 있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대단해요. 정말.”
박명자 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고 합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하더라도 위험하고 또 익숙지 않은 일이라 선뜻 구조에 나서기는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침착하게 부상자를 구조할 수 있었던 것은 박용식 씨가 평소에 소화기 하나를 챙기는 마음에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운전할 때 소화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내가 위급할 때 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면 언젠가 꺼져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는 큰 힘이 되기 때문이지요. 나 자신이 남을 위하고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소화기를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좋은 게 어디 있을까요.”
구조해 놓고 ‘살았어, 이제 살았어’하며 막 울기도이들은 모두 같은 봉사팀에서 활동하며 평소에도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염불봉사를 3년에서 길게는 13년 동안 해왔습니다. 개인 봉사도 줄곧 해왔는데요, 미용사인 우미숙 씨는 울산 남구에 거주하는 독거어르신들의 살림을 도와드리고 인근 양로원에서는 미용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박명자 씨는 몇 해 전 새로 직장을 잡기 전까지 8년간 부산대학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노래가 취미인 황영규 씨는 울산의 복지시설을 돌며 자신의 목소리로 주변 이웃들에게 힘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나눔’은 이들의 일상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사고를 당한 운전자를 구출한 이 다섯 명의 사례는 2013 생명수호지기 수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에게 당시의 사고와 생명수호지기 수상은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저는 평소에 ‘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라는 말을 믿고, 그런 삶을 살고자 했어요. 계속 머리로만 생각하던 것인데, 당시 일을 계기로 그것이 정말이라는 것이 확실히 증명이 된 거죠. 사람을 구조해 놓고 얼마나 좋았던지 몰라요. ‘살았어, 이제 살았어’ 하면서 막 울었죠. 그때 정말 몸으로 느꼈어요. 너와 나는 정말 둘이 아니구나, 하나였구나.”
우미숙 씨는 당시의 일을 통해 자신이 머리로만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생명수호지기 수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시의 일이 전해지게 된 데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에 공을 돌리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수호지기 수상을 통해 중년의 여성인 나 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미숙 씨의 말을 거들어, 박용식 씨는 생명수호지기가 더욱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했으니 보고 칭찬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달라는 것이죠. 한 번씩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시민은 경찰 측에서 포상도 하고 활발히 알리잖아요.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요. 생명수호지기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물며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