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강렬하게’…빛의 잔상 남기고픈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최희원 작가 인터뷰
‘스치듯 강렬하게’…빛의 잔상 남기고픈 미디어 아티스트
2022.04.17 23:37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예술은 결국 존재에 대해 묻는 일 같아요.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이 곧 창작 과정인 거죠. 작품은 그에 대한 답이고요. 제가 찾은 답은 ‘영원하지 않은 것 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을 찰나에 강렬하게 빛나도록 표현하죠.”

최희원(26) 작가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탐구하는 아티스트다. 존재의 실체나 원리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그로부터 발생한 의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최 작가의 세계 속에서 존재는 다변하고 유한하다. 그녀가 오래도록 기억되기보단, 스치듯 강렬하게 남는 예술을 꿈꾸는 것도 영원하지 못한 존재의 속성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영상의 언어는 암흑과 빛 사이의 잔상 같은 작가의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다. 최희원 작가에게 예술이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존재방정식’과 같다. 

 

최희원(사진) 작가
최희원(사진) 작가

| 호텔리어부터 영화감독까지…존재를 찾는 여정
최희원 작가는 카멜레온 같은 경력을 가졌다. 이력서만 들여다봐서는 개연성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대학에서 공부한 건 어문학(중국어)이었다. 최 작가는 “대학에 들어갈 무렵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었던 무언가가 없었다”며 “돌이켜보면, 일단 외국어라도 하나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전공을 선택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졸업 후엔 자연스레 전공을 따랐다. 일반 회사에서 일을 한 적도 있고, 호텔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경험하기도 했다. 초년생 시절의 사회 경험은 시야 확장의 의미가 더 컸다. 이후 시대의 흐름에 자신의 적성을 투사하며 진로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웹 개발자, 콘텐츠 기획자, 영상 제작자, 예술 창작자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그러한 개척의 결과다. 

“시작은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부터였어요. 개인 홈페이지부터 제작해보자는 생각에 국비 지원사업에 참여해서 코딩을 배웠죠. 이후 2년 정도 다양한 기업‧기관의 백오피스 일을 하다보니까 앞 선에서 기획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기획 업무를 하다 보니 직접 제작도 하고 싶고… 그런 식으로 여기까지 흘러온 것 같아요.(웃음)”

급변하는 삶의 궤적이지만, 단순한 호기심이나 변덕의 결과는 아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마다 진지하고 끈질기게 배움에 임했고 나름의 성과도 이어졌다. 사회보장원 개인정보보호 지원시스템 구축(2018),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 웹사이트 운영(2019),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소셜미디어 운영(2020), 유네스코 아태교육원 VR웹사이트 구축&홍보영상 제작(2021) 등의 이력에선 최 작가의 빼어난 습득 능력과 이를 활용하는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영상제작 분야에 발을 들이자마자, 영화 ‘양의 공간’(2030청년영화제 선정작)의 감독·각본‧미술로 참여하며 영화감독 데뷔까지 이뤄낸 것도 최 작가의 확장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최 작가는 “실험영화의 성격이 짙었던 작품으로, 영상을 통해 나의 철학을 표현하는 시초가 됐던 활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의공간_2022_단편영화_4분20초
양의공간_2022_단편영화_4분20초

사실 최희원 작가의 삶 전체를 돌아보면, 그녀가 창작자로 변신한 게 전혀 뜬금없거나 뜻밖의 행보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끼고 살만큼 미술을 좋아했고, 대학시절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그래픽 툴을 익히며 표현의 영역을 넓혀왔다. 자신의 철학이 여물 무렵 발견 한 게 영상의 매력이었다. 최 작가는 “내가 가진 생각들을 풀어내기엔 정적인 그림보다, 동적인 영상이 훨씬 적합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영화 작업은 그에 대한 실험이자 시험이었던 셈이다. 

영화는 매력 있는 작업이었지만 비효율적인 측면도 컸다. 많은 인력과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배우부터 촬영, 조명, 음악 인력까지 직접 추리다보니 제반 준비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너무 크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최 작가가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아트 활동에 주목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자신의 창작물이나 표현양식들을 이따금씩 SNS에서 소개하던 수준을 넘어,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어릴 적 미술 학원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크고 작은 창작을 해왔어요. 하지만 말 그대로 취미 수준이었죠. 그런데 개발, 기획, 제작을 두루 경험하면서, 점점 욕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최종 결과물에 내 아이디어와 철학이 오롯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된 거죠.”

 

| 바다 이면의 숨결, 한옥 너머의 우주를 보다  
최희원 작가에게 예술 창작은 사유로부터 답을 얻는 과정이다. 우리 주변의 무수히 많은 현상과 대상에 대한 명상과 사유가 작업의 출발점이 되고, 그 사유 가치를 확장시켜 나가며 작품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지난해 선보인 ‘오름’이란 영상 작품을 보면, 보다 쉽게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제주도의 작은 화산 봉우리를 일컫는 오름을 통해 존재의 반복성을 제시했던 시도였다. 최 작가는 “제주도에는 ‘오름에서 나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면서 “삶이 시작되고 죽음을 맞고, 다시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아이러니를 회귀하고 반복되는 오름의 모습을 통해 표현했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Breath; Wave’라는 작품도 최 작가의 세계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작 중에 하나다. 해안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바다와 파도의 풍경을 작가만의 존재론적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던 작업이다. 심연의 깊은 바다 속에서 물결이 응축하고 확장하는 것을, 숨을 내뿜고 들이키는 과정으로 표현하여, 멎을 듯 이어지는 반복적인 숨결을 통해 지속되는 존재의 본질을 보여준다.

“어떤 소재를 가지고 와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아요. 사물을 깊이 관찰해서, 대상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을 발견하고, 중립적인 시선에서 그것을 영상에 담죠.”

 

오름_2021_미디어 아트_컬러_사운드_52초(왼쪽), Breath; Wave_2021_미디어아트_컬러_사운드_2분
오름_2021_미디어 아트_컬러_사운드_52초(왼쪽), Breath; Wave_2021_미디어아트_컬러_사운드_2분

최희원 작가가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한 건 불과 2년 여 전의 일이다. 표현하는 것이 좋아 만들기 시작했고, 온라인에서 소통하며 자신의 철학을 넌지시 알리는 정도였다. 자세를 고쳐 잡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향후 자신의 정체성을 미디어 아티스트로 확정하고, 창작과 표현에 ‘올인’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1월 21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는 최 작가가 그려 갈 새로운 인생의 데뷔 무대나 다름없다. 최 작가는 “취미 이상의 목적으로 작업한 첫 번째 작품”이라며 “작가로서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면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았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 최희원 작가가 선보인 작품은 한옥의 무한한 가치를 표현한 ‘한옥의 우주’다. 전통적인 한옥집을 구경하다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프로세싱(Processing)’ 프로그램 언어를 활용하여 먹의 점과 선으로 빗방울을, 흑과 백의 대비로 한옥 안의 우주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우주는 결국 점에서 시작하잖아요. 한옥에서 우주를 발견하곤, 점과 한옥이라는 공간을 통해 절대적 무한정과 절대적 한정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운드 역시 한옥의 빗소리와 음향효과를 흑과 백의 비율에 따라 교차시켜 표현하고 있죠. 특히 마지막 6초는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비가 온 세상을 뒤덮고 마침내 암흑 상태가 되는데, 그 부분이 관객들에게 사유의 여지를 주는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옥의 우주_2022_미디어아트_흑백_사운드_1분6초
한옥의 우주_2022_미디어아트_흑백_사운드_1분6초

| 다양한 경험은 예술적 자산, 관객들 뇌리에 남는 작가로 
최희원 작가는 정식 작가의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를 통해 활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전시 공모가 이뤄졌던 작년을 기점으로 최 작가의 발걸음이 점점 분주해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 <양의 공간>의 ‘GV(Guest Visit)’ 행사로 열어젖힌 올해는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전시 참여에 이어, ‘빛의 잔상’이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영등포문화재단) 개최로 그 예술적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근래 보여주는 예술적 갈증을 감안하면, 언어나 웹 개발 등을 공부하며 흘러간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최 작가는 모든 경험의 가치를 귀히 여긴다. 저마다의 경험과 기술이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며 작가의 표현력을 돋우고, 철학을 다지는 자산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특히 기술 기반의 작업이 주가 되는 미디어 아트 분야에선 효용도가 더욱 커진다. 최 작가는 “시각 예술을 위한 프로그램 중에는 직접 코딩을 해야 하는 것도 많아 개발의 경험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면서 “프로젝트 관리의 경험, 콘텐츠 기획의 경험, SNS채널 운영의 경험, 심지어 영화각본 작성의 경험까지 아티스로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커리어패스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최희원 작가
다양한 커리어패스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최희원 작가

이제야 비로소 진짜 ‘갈 길’을 찾았다는 최희원 작가는 “길을 알았으니, 열심히 달릴 일만 남았다”고 덤덤히 말한다. 그녀가 꿈꾸는 아티스트로서의 길은 원대하거나 장구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작가가 주로 탐구하고 표현하는 존재의 가치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흑과 백, 빛과 그림자처럼 사물의 양변을 관찰하여 대상의 본질을 가장 작은 단위인 ‘점’으로부터 표현해요. 점은 시작이자 끝이며, 형과 색의 측면에서도 중성적이거든요. 중성적이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불변하지 않는 존재를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도록 표현하려 하죠. 그 강렬함이 관객들로 하여금 잠깐이라도 사유하게 할 수 있다면, 저는 오래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저 ‘빛의 잔상’ 같은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사진: 최희원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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