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 새로운 가치로 관객과 예술 사이 간극 줄일래요.”
‘아트 인 메타버스’展 김영태 작가 인터뷰
“익숙함 속 새로운 가치로 관객과 예술 사이 간극 줄일래요.”
2022.05.01 21:26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15년 간 전시 현장에 있으면서 예술 작품과 관객들 사이의 묘한 경계를 많이 느꼈어요. 관객들이 충분히 몰입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죠. 자연스레 ‘조금 더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는 없을까?’하는 의문이 생겼고, 급기야 직접 팔을 걷어붙이게 됐죠.(웃음)”

김영태(43) 작가는 늦깎이 아티스트다. 작가로서의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6년 남짓. 30대 후반에 처녀작을 발표했으니 꽤나 만학도인 셈이다. 하지만 예술 작품의 ‘쇼케이스’ 현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15년 경력의 공간 기획자이자 전시 디자이너로서 예술이 소비되는 ‘무대’를 직접 빚어냈고, 작품과 관객의 만남도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로부터 축적된 갈증과 아쉬움은 작가의 예술적 동력이다. 김 작가는 “대중의 시각에서 예술의 접근성을 낮춰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영태 작가가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을 통해 ‘낯익음 속 낯설음’을 표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김영태(사진) 작가
김영태(사진) 작가

| 예술 문턱 낮추고픈 디자이너의 ‘이중생활’
김영태 작가는 예술과 거리가 있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건축가를 꿈꿨고, 실제로 대학에선 건축공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가 예술과의 접점을 만들기 시작했던 건 대학원 시절부터다. 공간 기획 및 구성을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전시장 디자인에 특화되면서 자연스레 전시장을 가득 채웠던 아트 작품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에 편입된 것이다. 

“전시디자인을 하다보면 미디어 매체를 접할 때가 많아요. 덕분에 콘텐츠에 대해서도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작품의 특성을 명확히 알아야 이를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배치할 수 있으니까요.” 

전시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예술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깊어졌다.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전시디자인(2009-2010),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디자인(2012-2013),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전시디자인(2014-2015) 등 그가 직접 기획 및 디자인에 참여했던 무대의 면면은 고스란히 김 작가의 예술적 자산이 됐다. 

 

김영태 작가가 공간디자인 및 디스플레이 연출을 맡았던 국립경주박물관 상설전시실
김영태 작가가 공간디자인 및 디스플레이 연출을 맡았던 국립경주박물관 상설전시실

자신이 기획‧구상한 전시장에서 작품과 대중들이 만나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예술은 공공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도 관객들의 만족도를 헤아리는 이유가 됐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에서 작은 아쉬움이 따라붙었다. 김영태 작가는 “예술을 접하는 관객들의 ‘심도’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예술과 관객이 유리된 느낌을 받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아쉬움은 일종의 갈증으로 쌓여갔다. 가끔 협업하던 예술가들에게 그런 갈증을 토로해봤지만 사고의 유연함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쉬운 것, 익숙한 것, 편한 것을 매개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면, 예술의 문턱이 조금은 낮아지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일었고, 이는 점차 조바심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곤 결국 ‘내가 한번 해봐야 겠다’는 다짐으로 굳어졌다. 십 수 년 넘게 전시 현장에서 쌓아올린 갈증이 몸을 일으키는 동력이 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편했어요. 그래서 디자인도 하게 된 것이겠죠. 이런 특성을 십분 활용해, 모두가 쉽게 알만한 것들에 예술적인 가치를 심어보고 싶었어요. ‘관객들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가는 예술’이라는 방향성을 잡은 거죠.”

 

| “우리 일상 곳곳에 숨은 예술성을 캐냅니다.” 
공간 디자이너의 삶에 예술가의 삶이 덧대어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16년.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모양새를 갖춘 김 작가의 예술은 ‘익숙함의 낯선’이란 키워드로 요약된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이나 이미지를, 전혀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형하고 조합하는 방식이다. 작업 초반에 도시 경관이나 공원 풍경 같은 것들을 주요 소재 삼았던 것도 ‘일상’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참여했던 ‘남원 사운드 페스티벌’은 김영태 작가의 예술관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 활동이다. 전라북도 남원의 구도심을 무대로 어린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참여형 미디어 퍼포먼스 작업으로, 어린이들이 자신이 사는 동네 곳곳의 사진을 찍고, 그 장소에서 떠오르는 그림을 스케치한 뒤 이를 AR(Augmented Reality‧증강 현실)로 표현한 작품이다. 

“어린이 눈에 비친 동네 풍경은 성인의 그것과는 달라요. 이를 재해석해서 자신들의 동네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죠. 어린이들에게 쉽고 재밌게 예술을 접하게 하고, 이를 모두가 향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초기에 꿈꿨던 예술관과 가까운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영태 작가의 예술관이 잘 드러났던 ‘남원 사운드 페스티벌 2019’
김영태 작가의 예술관이 잘 드러났던 ‘남원 사운드 페스티벌 2019’

지난해 선보였던 ‘THE OASIS OF CITY’라는 작품에서도 김 작가가 표현하는 ‘익숙함의 낯선’ 가치가 오롯이 드러난다. 남대문이나 남산 타워, 63빌딩 같은 서울의 랜드마크를 꽃이나 낙엽 같이 시절을 상징하는 자연물과 결합하여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제시한다. 김영태 작가는 “작가의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작업을 할 때마다 새로이 깨닫고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면서 “그러다보니 작업에 사용하는 툴부터 차용하는 소재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해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랜드마크에 꽃이 가진 치유나 환영의 느낌을 결합한 ‘THE OASIS OF CITY’
서울의 랜드마크에 꽃이 가진 치유나 환영의 느낌을 결합한 ‘THE OASIS OF CITY’

최근 김영태 작가가 푹 빠져있는 소재는 바로 도자기다. 한국 전통 도자기나 사발의 미학적인 면에 매료돼 이를 재조합하여 선보이는 일에 여념이 없다. 지난 1월 21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소개 된 김 작가의 작품 역시 도자기를 소재로 한 영상 작품이다. ‘흐르는 빛’이라는 제목의 해당 작품은 달항아리의 외형을 타고 내리는 흰 빗줄기를 통해 곡선의 아름다움과 빛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프로세싱’이나 ‘터치디자이너’ 같은 프로그램을 고루 활용해 배경 텍스트와 조각들의 기호학적인 모습을 인상적으로 연출한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해당 작품은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가 국제 공모전이라는 점에 착안, 한국적인 미를 온전히 표현하는 데 특히 주목했다. 김 작가는 “해외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시다보니, 서로 간에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을 것으로 봤다”면서 “한국적인 미를 전달하면서, 그 안에 외국의 시선에서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들을 결합시켜 낯설지 않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흐르는 빛’_아트인메타버스 출품작
‘흐르는 빛’_아트인메타버스 출품작

| 늦깎이 예술가의 성장기…“이젠 뚜렷한 색깔의 아티스트로!”
김영태 작가는 늦은 만큼 더 분주하게 움직인다. 여전히 공간 디자이너로서 굵직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에도 작품에 대한 사고와 구상을 멈추지 않는다. 산업과 예술을 병행하면서도 10여 차례가 넘는 전시회에서 결과물을 선 뵌 것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다. 그런 과정을 통해 ‘초심자’의 면모를 서서히 지워나가고 있다. 여전히 남은 숙제는 ‘의미’를 더하고, ‘색깔’을 갖는 것이다. 현직 디자이너답게 미학적인 표현에 장점이 있지만, ‘예술가의 사고방식’은 아직 조금 생경하다. 

“처음에는 표현에만 욕심을 냈어요. 그런데 화려한 것에만 치중하다보니 의미가 옅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생각의 이질감이 큰 것 같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디자이너의 시선이었던 것이죠. 예술가의 시선과 사고를 기르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독서를 늘리고, 인상 깊은 키워드나 문장을 메모하여 곱씹는 습관까지 생겼다. 메시지를 자신의 표현 방식과 결합해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 이는 곧 예술가의 오롯한 철학을 다져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 다음 단계의 고민은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 활동이 거듭되면서 자연스레 발현한 욕심이다. 김 작가는 “그룹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내 작품에 개성과 색깔이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다”면서 “작가의 성장과정이란 결국 자신만의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가 사진과 영상 프로그램을 넘어, 코딩 프로그램까지 직접 다루게 된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다. 보다 유니크하고 개성 넘치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표현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김영태 작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김영태 작가

김영태 작가는 아티스트로서 끊임없이 선뵈고 평가받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은 스스로의 확신이 조금 부족하기 때문이다. 금번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 역시 전문가와 시장, 그리고 대중 앞에 자신의 포부를 펼쳐 보인 시험대다. 김 작가는 “아직 ‘미생’의 단계이다 보니 늘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방향이 맞는 건가’ 하는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아트 인 메타버스’ 공모는 심사위원 구성도 좋고, 대중을 위한 전시 무대도 잘 마련되어 있어 내 작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영태 작가는 보다 친절한 예술을 꿈꾸고 쫓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심오한 철학과 복잡한 세계관보단, 그저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모두의 예술’을 고민했다. 이젠 여기에 작가의 개성과 의미까지 담으려 고군분투 중이다. 늦깎이 아티스트의 성장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처음엔 화려한 표현에 집착했지만 이젠 점점 힘을 빼는 것 같아요. 잔잔하지만 기억 속에 머무는 작품을 만들려고 하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잔잔한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사진: 김영태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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