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을 꿈꾸는 그림쟁이의 미디어 아트 도전기
‘아트 인 메타버스’展 진향기 작가 인터뷰
이야기꾼을 꿈꾸는 그림쟁이의 미디어 아트 도전기
2022.05.04 00:50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이야기를 이미지로 풀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림책이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작가가 꿈이죠. 지금은 단편적인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단계라고 봅니다. 꿈을 위해 첫발을 뗀 셈이죠.”

진향기(29) 작가는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특화된 전문가다. 평생 취미가 그림이었고, 디자인으론 학부에 이어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회화‧판화 같은 순수미술 작업부터 IT기업의 UI‧UX 디자인까지 작업 영역도 꽤나 광범위하다. 하지만 진 작가의 예술은 ‘보여주기’에 머물지 않는다. 시각적인 흥미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이뤄내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표현의 완성’이다. 수작업과 디지털 작업을 오가며 펼치는 다양한 상상력과 다채로운 질감은 그녀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진향기(사진) 작가
진향기(사진) 작가

| 밀쳐내도 그 자리에…예술은 마음의 고향
진향기 작가가 처음 미술을 접한 건 7살 무렵이었다. 이후론 늘 함께였다. 하지만 취미 이상으로 생각지는 않았다. 학업의 무게감이 커질수록 조금씩 멀어졌고, 본격적인 수험생이 되자 아예 손을 놓게 됐다. 

“그림은 취미 정도로만 그릴 수 있어도 좋을 거라 생각했었어요. 먼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시기에 최선을 다 하고, 그림은 그 언제든 다시 그리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손을 놓으니 생각보다 상실감이 크더라고요.”

입시생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이어진 상실감은 취미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취미 이상’이었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어렵사리 입학한 공대를 1년 만에 자퇴하고 미대입시에 다시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진 작가는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져도, 그림과 동떨어진 삶은 감내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선택한 전공이 바로 ‘시각디자인’이었다. 이미지를 통해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산업과의 연결고리가 강한 분야, 진 작가에겐 나름의 절충안이었던 셈이다.

 

목판화 수작업과 디지털 드로잉을 넘나드는 진 작가의 작업 과정
목판화 수작업과 디지털 드로잉을 넘나드는 진 작가의 작업 과정

직접 겪어본 시각디자인의 세계는 그야말로 드넓은 땅이었다. 최근 IT산업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다양한 선택지와 풍부한 수요는 진 작가를 똑같은 시행착오에 빠뜨렸다. 디자인 회사나 빅테크 기업의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점점 자신의 표현과는 멀어지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제 작업은 언제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회사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더라고요.(웃음) 회사와 사용자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는 작업 환경을 겪으며, 문득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작업들이 아득히 밀려 나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기표현에 대한 갈증이 최고조에 오를 무렵, 진 작가는 또 다시 ‘회귀’를 택했다. 5년 여 간 붙였다 뗐다하던 ‘회사원’ 딱지를 완전히 떼어 내고, 연구와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대학원행을 결정한 것. 그녀가 자신의 작업에 ‘취미’라는 안전장치를 거두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10대와 20대를 거치며 여러 선택지를 들춰봤던 그녀는 언제나 똑같은 곳으로 되돌아왔다.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아티스트의 자리다. 

 

| ‘같은 듯 다른’ 도시의 풍경을 보여드립니다.
진향기 작가가 공식적으로 작품을 선뵈기 시작한 건 지난해 봄부터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디자인하는 일이 아닌 만큼, 본인만의 시선을 관찰하고 기록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포착한 첫 번째 주제가 바로 ‘도심 속의 기차’다. 

“저의 집과 작업실 바로 옆으로 기차가 지나가는데,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돼요. 기차가 하염없이 흘러가고 멈추는 풍경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죠. 학창시절 내내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도시의 기차가 조금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웃음)”

지난해 선보인 작품들은 대부분 이러한 영감으로 출발했다. 기차가 무심한 듯 도심을 스쳐지나가는 모습,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무미건조한 풍경들이 진 작가의 화폭에 아로새겨졌다. 고운 화면에 서정적인 풍경이지만 그리움의 감성도 깃들어있다. 이는 작가가 동시대의 도시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투영된 결과다. 진 작가는 “열차는 한 곳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정작 열차 속의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보였다”면서 “하나의 흐름 속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공유하지 못하는 삭막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차를 소재로 한 스침의 순간들의 영상 작업 과정
열차를 소재로 한 스침의 순간들의 영상 작업 과정

지난 1월 21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진향기 작가의 도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Unrealistic journey’는 골프 필드에서 쓰이는 골프공을 의인화해, 그들의 여정을 표현하고 있는 디지털 이미지다. 

해당 작품 역시 작가 특유의 양가적인 느낌이 잘 드러난다. 아름다운 초원이 배경인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차가운 도시가 공존하며 부조화를 빚어내고, 잘 다듬어진 자연이 오히려 인공적인 느낌을 내비치며 묘한 삭막함마저 느끼게 한다. 작업 초기에는 상업적인 용도를 생각했었기 때문에,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도시의 색상으로 연출되었다.

“도시의 인공적인 숲에서 사는 현대인들을 골프공을 통해 상징화하려 했어요. 작품의 제목인 ‘비현실적인 여행’이 보기에 따라선, 가장 현실적인 우리네 삶일 수도 있겠네요. 화사한 그림인 것 같지만 쓸쓸한 느낌을 풍기는 것도 그래서죠.”

 

Unrealistic Journey, 아트인메타버스 공모전 당선작
Unrealistic Journey, 아트인메타버스 공모전 당선작

|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아티스트 되고파 
진향기 작가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는 무대에 올라섰다. 현실과 이상의 갈림길에서 현실을 쫓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해보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어김없이 이상을 바라보는 자신과 마주했다. 여전히 시각디자이너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만큼, 그녀의 시행착오가 다시금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분주하다. 마음속에 품은 꿈을 보다 구체화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떼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지난해 ‘아트 인 메타버스’ 공모에 선정된 것도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진 작가는 “동시대 미디어 아티스트 100인 안에 내 작품이 들 수 있을까?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디지털 아트는 어떤 작품들일까? 하는 두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도전했던 공모”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나며 미디어 아트에 대한 시야가 한층 넓어진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2021 서울대학교 관정도서관에 설치된 본인의 작품 앞에 서 있는 진향기 작가
2021 서울대학교 관정도서관에 설치된 본인의 작품 앞에 서 있는 진향기 작가

진향기 작가에게 이미지 중심의 미디어 아트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미지 한 장 한 장 자신의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내는 실험을 통해 다다르고픈 종착지는 그림책 작가다. 시각적인 표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이 가장 적극적으로 완성된 형태다. 당장 올해 안에 이미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전시나 출판의 형태로 발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보충해주는 삽화와는 조금 달라요. 이미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거죠. 심지어 글이 없어도 따라갈 수 있도록요. 눈에 보이는 모든 색과 형태와 질감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 전하는 아티스트로서 대중들과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

 

/사진: 진향기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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