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나의 힘’…일상의 새로운 속내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변화는 나의 힘’…일상의 새로운 속내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2022.06.16 11:22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니체는 창조에 대해 ‘삶을 삶답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위대한 구원’이라고 말했죠. 저 역시 창조하지 않는 삶은 권태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예술 활동이란 권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인 셈이죠.”

안정빈(25) 작가는 변화를 갈망하는 아티스트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성찰이 가장 큰 예술적 원동력이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돌연 디지털 아트의 길로 선회한 것 역시 변화와 창조를 향한 묵직한 발걸음이다. 이를 통해 안 작가가 성취하고픈 것은 세상과의 온전한 소통이다. 회화나 사진, 입체 등 모든 이미지 매체에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동시대 세상과 사람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안정빈(사진) 작가
안정빈(사진) 작가

|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깨달음, 사유의 깊이를 더하다
안정빈 작가에게 미술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글보다 먼저 배웠고 평생을 함께했다. 안 작가가 “유치원에서 처음 그림을 그렸던 순간, 이미 진로가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그림은 안 작가를 특별하게 만들었지만 순기능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자신의 세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했던 경험들은 오히려 안 작가를 자신의 세계에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학창시절 내내 ‘반항아’적인 면모를 보였어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면, 선생님 말이라도 따르지 않았죠. 당연히 친구들과도 쉽게 융화되지 못했고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을 이상한 것처럼 여겼던 것 같아요.”

의식의 반전이 일어난 건 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한국화 전공생으로 미술을 깊이 다루기 시작하면서, 미술에 대한 관점이 180도 바뀌었다. 전공 교수님에게 예술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싹튼 변화. 미술에 대한 자세는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달리하게 된 가르침이었다. 안정빈 작가는 “내 재주나 솜씨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나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관점을 다른 사람들과 합의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미술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모든 것에 의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큰 혼란스러움을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혼란은 안 작가를 사유하게 했다. 작업하는 시간 대신 방안에 틀어박혀 명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기술의 진화보다 생각의 확장에 몰두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애썼다. 안 작가는 “나만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나가기 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꾀한 첫 번째 시도가 바로 미디어 아티스트로의 변신이었다. 

“시대적 합의와 나만의 관점이라는 측면으로 미술을 바라보니, 한국화로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동시대의 시스템과 사고체계들을 반영한 작업을 해야겠다싶었어요. 그게 바로 미디어 아트였죠.”

 

| 우울하지만 희망적인…나의 주제는 나를 닮았다
안 작가가 새로이 바라보게 된 미술은 졸업 즈음부터 비로소 표현되기 시작했다. 안 작가는 “교수님의 가르침과 나의 깨달음을 온전히 흡수하고 구현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 회상했다. 

졸업 작품으로 발표한 ‘Choice’는 작가의 변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결과물이다. 어릴 때부터 칭찬을 들었던 그림솜씨는 물론, 한국화 전공생의 뉘앙스조차 찾아볼 수 없는 순수 사진 작업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가운데 두고 무심한 듯 찍어낸 사진은 자칫 밋밋하다는 인상마저 준다. 하지만 담백한 사진 속에 담긴 사유만큼은 깊고 풍부하다. 안 작가에게 큰 깨달음을 줬던 키워드인 ‘사회적 합의’에 대한 고찰이 듬뿍 담겨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처럼 솟아있지만 사실 우측으로밖에 갈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를 보면서 ‘우측통행’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떠올렸어요. 사물 자체에는 속성이 없지만 인간의 가치에 의해 질서가 만들어진 거죠. 이를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중요성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 어떤 삶, 어떤 세상이든 모두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이죠.”

 

‘선택’이라는 인간의 속성을 표현한 작품 ‘Choice’
‘선택’이라는 인간의 속성을 표현한 작품 ‘Choice’

첫 작품은 안 작가가 새로이 구축한 관습과 규칙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사물들이 가진 속성을 활용해 존재를 확장하고 감정을 비유하는 이미지’라는 형식적인 특징이 완성됐고, 공허한 세상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쫓으려는 주제적인 측면도 다듬어졌다. 안 작가가 ‘우울한 희망’이라고 표현하는 작가의 예술관이다. 

‘Bags’라는 작품 역시 비슷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있는 사람들이 소지한 각양각색의 가방들을 보고, 이를 각자의 생각 주머니로 상상하면서 표현한 작업이다. 안정빈 작가는 “사람들이 모두 가방을 쥐고 있는데, 크기도 모양도 모두 다르다는 게 인상적이었다”면서 “이를 통해, 같은 동시에 다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안 작가는 졸업 전시에서 선보였던 두 작품에 대해 “평생 그림을 그렸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미술’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라고 귀띔했다.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이를 자신의 관점과 표현에 온전히 녹여냈다는 얘기다. 두 작품 모두 지난해 ‘제1회 청년미술대전’에 입선하는 등 가능성도 확인했다. 안 작가는 그렇게 미디어 아티스트로서의 첫 발을 떼었다.

 

같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속성을 표현한 작품 ‘Bags’
같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속성을 표현한 작품 ‘Bags’

| 속내 오롯이 보여주는 진솔한 작가로 기억되고파
안정빈 작가는 현재 자신의 작업에 대해 “심장을 꺼내 보이는 듯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핵심적인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심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희열과 고통이 공존하기도 한다. 

지난 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안 작가의 속내는 여실히 드러났다. 해당 전시를 통해 안 작가가 선뵌 ‘Peaches’는 부화뇌동(附和雷同)과 화이부동(和而不同)에 대해 이야기한 작품이다. 사진을 찍은 후 ‘프로크리에이트(procreat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지난 작업들과의 기술적 차별점을 갖는다. 이 작업 역시 출발은 작가가 새로이 발견한 사물의 속성이다. 

“외할머니께서 복숭아 농사를 하셔요. 지난여름 할머니께서 복숭아를 보내 주셨는데, 그걸 보면서 집단과 떨어져 있음에도 특별하지 않고, 집단에 속해 있음에도 특별한 사람을 떠올리게 됐죠. 결국 특별함이란 외면의 다름이 아니라, 내면의 다름에 따라 생기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부화뇌동을 너머 화이부동으로 가야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Peaches’
부화뇌동을 너머 화이부동으로 가야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Peaches’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안 작가에게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다. 디지털 미술 작품이 기존의 미술 작품처럼 가치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확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안정빈 작가는 “미술의 본질이 가상세계 속 지적유희라면, 디지털 환경은 창조를 위한 가히 완벽한 환경”이라며 “이러한 환경에서 앞으로 아츠클라우드가 만들어 가게 될 새로운 가치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안 작가 역시 향후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태도와 관점을 의미 있게 창조해 나가기를 원한다.

“제 작품은 발가벗은 듯 초라한 제 모습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요. 저라는 사람의 생각을 감상하시면서 각자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가를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죠. 앞으로 자신의 모든 걸 내보이는 진솔한 아티스트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사진: 안정빈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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