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수록 예민해진다” 어느 아티스트의 모호함 활용법
‘아트 인 메타버스’展 성하은 작가 인터뷰
“어두울수록 예민해진다” 어느 아티스트의 모호함 활용법
2022.06.23 14:20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어둡고 불편한 느낌은 애써 외면하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죽음, 무의식, 수면, 무력 같은 키워드를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결합해서 공간을 재현하죠. 이를 통해 관객들의 예민함을 돋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저의 예술입니다.”

성하은(26) 작가는 친절하지 않은 아티스트다. 주제는 무겁고 표현은 모호하다.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을 제시한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영화과를 졸업했지만, 실험 애니메이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그 속내만큼은 명징하다. “누구도 하기 힘든 얘기를 대신 해주겠다”는 친절함마저 배어있다. 사람들이 쉬쉬하는 얘기를 끄집어내 우리 세상의 예민함을 키우는 게 성 작가의 예술적 사명이다.

 

성하은(사진) 작가
성하은(사진) 작가

| 준비된 창작자의 선택, ‘실험 애니메이션’ 
성하은 작가에게선 창작자의 피가 흐른다. 아버지는 건축가, 어머니는 디자인 전공자였다. 자연스레 창작하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작품에도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미대에 진학할 무렵 조금 더 마음이 끌렸던 곳은 영화 쪽이었다. 전공을 ‘영화과’로 확정하고 영화 연출가의 꿈을 키웠지만, 직접 마주한 영화판의 현실은 기대와 자못 달랐다. 

“대학교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촬영 현장에 투신했어요. 2년 정도 촬영장에서 일했는데, 체력소모가 상당하더라고요. 팀 작업도 버거웠고요. 원래 조용히 골몰하는 작업 스타일을 선호하기도 했죠.”

촬영장에서의 고전은 작가의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환기 차원에서 실사 영화 연출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파헤쳤다. 그렇게 찾게 된 분야가 바로 ‘애니메이션’이었다. 성 작가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내 생각대로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측면에선 오히려 나와 ‘핏’이 맞았던 작업”이라며 “희소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실사 영상보다 끌렸던 게 바로 애니메이션”이라고 회상했다. 

 

성하은 작가의 애니메이션 작업 사진
성하은 작가의 애니메이션 작업 사진

‘꼭 맞는 옷’의 위력은 놀라웠다. 졸업 작품으로 만든 실험 애니메이션 ‘비디오 누아르(Vidéo Noire)는 2021년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Annecy International Animation Film Festival)과 서울독립영화제(Seoul Independent Film Festival), 이듬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Busan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에 연달아 소개되면서 평단의 큰 관심을 모았다. 실험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부터다.

 

| 보다 모호하게…보다 예민하게 
성하은 작가가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작가의 사유와 기호, 그리고 경험이 농축된 작가 고유의 세계다. 일단 작가가 다소 기묘한 이미지를 좋아한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다루면서 가장 꽂혔던 개념은 ‘불쾌한 골짜기’다. 현실과 가상 사이의 괴리감에서 느껴지는 기묘함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어둡고 불편하고 모호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성 작가는 “예쁜 이미지들은 굳이 내가 다루지 않아도 이미 차고 넘친다”면서 “사람들이 애써 피하는 부분을 건드려서 세상의 예민함을 깨우고 싶다”고 설명했다. 

삶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조차 작가의 예술관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지난 2019년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통해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됐고, 죽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내며 상처를 치유하고자 애썼다. 

“탄생은 축복, 죽음은 고통이란 정서가 고정돼 있잖아요. 죽음에 대한 고민은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죠.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누군가 미리 얘기를 해줬으면 조금 나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 감정을 썩히지 말고 표현해보기로 한 거예요. 저는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이러한 작가의 예술관은 데뷔작 ‘비디오 누아르’에 잘 녹아있다. 해당 작품은 ‘죽음’을 주제로 진행한 다양한 인터뷰를 작가의 시선으로 스토리텔링한 9분 분량의 ‘3D애니메이션’으로, 죽음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가진 작품이다. 성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사유를 일깨우는 것도 예술의 역할”이라며 “영상을 접하며 짧게나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성하은_Vidéo Noire_포스터(왼쪽)_작품스틸컷
성하은_Vidéo Noire_포스터(왼쪽)_작품스틸컷

지난 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작가의 모호한 세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성 작가가 전시를 통해 선보였던 ‘digital density matters’는 디지털 이미지 과부화 시대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 속에는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괜스레 불편해지는 이미지들이 1분 29초의 러닝타임 내내 연속적으로 흘러간다. 이는 3D기술로 무엇이든 쉽게 그려낼 수 있는 세상에서 정작 유의미한 이미지는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에 울리는 경종이자, 작가가 생각하는 디지털 밀도 문제(digital density matters)다. 

“이 작품 역시 꽤나 모호한 주제죠. ‘지금의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할까’라는 아이디어로 시작을 했지만, 꼭 그런 관점으로만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제 작품의 감상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까요.”

 

성하은_Digital density matters_작품스틸컷
성하은_Digital density matters_작품스틸컷

| 친절함보다는 독특함으로 기억되고파
성하은 작가는 이제 막 첫발을 뗀 아티스트다. ‘비디오 누아르’부터 ‘Aisle’까지 총 아홉 번에 이르는 작품 활동에 참여했지만 그 이력은 모두 최근 두 해에 몰려있다. 세 번의 영화제 GV(guest visit)를 통해 관객과 만난 적은 있지만,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직접 소통한 것은 이번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가 처음이다. 

하지만 작가가 지니고 있는 예술적 내공은 짧은 경력을 압도한다. 창작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미술을 익혔고, 생애 최악의 상처까지 예술적 고민의 주제로 삼을 만큼 사유의 폭과 넓이를 확장해왔다. ‘나만 할 수 있는 걸 찾겠다’며 디자인, 영화 등 대세를 외면했던 행보에서도 신예답지 않은 뚝심이 드러난다. 

다루는 주제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만큼, 디지털·미디어 아트 분야에서의 기회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참여했던 것 역시 작가의 개인적인 관심과 미술계의 트렌드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성 작가는 “최근 들어 NFT에 관심이 많아져서 직접 민팅(minting)을 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찾아보기도 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디지털 아트에 특화된 아츠클라우드의 전시 공모 소식을 접한 덕분에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회상했다.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쫓아 지금에 이르게 된 성하은 작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쫓아 지금에 이르게 된 성하은 작가

사람들이 외면하고 기피하는 이야기에 몰두하며, 이를 추상적이고 모호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성하은 작가. 스스로 ‘불친절한 작가’로 자평할 정도로 그의 작업은 난해하고 모호하다. 하지만 목적의식만큼은 뚜렷하다.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알려줘야 하는 것들을 홀로 고민하고 재해석하여 세상에 건네는 활동. 그것이 바로 성하은 작가가 펼치는 예술의 속내다. 

“의도치 않게 ‘독특하다’, ‘평범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 왔는데 그런 성향이 제 작업까지 이어지네요.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겠죠. 최근에는 ‘종교’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데, 역시 굉장히 애매모호할 거예요.(웃음) 그저 보이는 그대로 받아 들였으면 좋겠어요. 모호함도 제 작업의 중요한 요소니까요.”

 

/사진: 성하은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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