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 환자 74만명 분석…연명의료법 이후 항생제 사용 오히려 증가

2026-10-06     임한희
▲왼쪽부터 이대목동병원 김정한 교수, 서울대병원 유신혜 교수, 가톨릭대학교 심진아 교수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에도 암 환자의 생애말기 항생제 사용이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대목동병원 감염내과 김정한 교수와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 가톨릭대학교 심진아 교수 및 이완택 연구원 공동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전후 암 환자의 생애말기 항생제 사용 양상을 분석한 연구를 ‘JAMA Network Open’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2012년부터 2023년까지 폐암·간암·위암·대장암·췌장암·전립선암·담도암·유방암 등 8개 주요 고형암으로 사망한 성인 환자 74만3842명을 대상으로 사망 전 6개월간 항생제 처방 양상을 분석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전인 2012~2017년 환자 34만8813명과 시행 후인 2018~2023년 환자 39만5029명을 비교한 결과, 사망 전 6개월 동안 한 차례 이상 항생제를 처방받은 환자 비율은 88.3%에서 90.8%로 증가했다.

사망에 가까워질수록 항생제 사용 증가 양상은 더욱 뚜렷했다. 사망 전 3개월과 마지막 1주일에서도 항생제 처방 증가가 확인됐다.

항생제 사용 기간도 늘었다. 관찰기간을 고려한 항생제 투여량은 1000명 환자-일당 231.4일에서 261.6일로 증가했다.

특히 반코마이신과 카바페넴 등 중증 감염이나 내성균 감염에 주로 사용하는 광범위 항생제를 처방받은 환자 비율은 54.4%에서 63.9%로 9.5%포인트 증가했다. 해당 항생제 투여량 역시 1000명 환자-일당 63.8일에서 83.7일로 늘었다.

연구팀은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중단 대상이 되는 연명의료 항목에 항생제가 포함되지 않은 점이 생애말기 항생제 사용과 관련된 요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 적극적인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항생제가 치료를 완전히 중단하지 않으면서 돌봄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제시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생애말기 항생제를 일률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감염에 따른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환자에게는 항생제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상태와 치료 목표, 예상되는 치료 효과와 부담 등을 종합해 항생제 사용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정한 이대목동병원 교수와 유신혜 서울대병원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 도입 이후에도 생애말기 항생제 사용 비율과 투여량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을 보여준 연구”라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뿐 아니라 항생제를 포함해 생애말기에 시행되는 여러 치료가 환자에게 어떤 도움과 부담을 주는지를 치료 목표에 따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 완화의료팀과 감염관리 및 항생제 적정사용 관리팀이 환자의 상태와 치료 목표를 함께 평가하는 협력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생애말기 치료 결정에 미친 영향을 항생제 사용이라는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살펴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시에 항생제 사용 증가의 원인을 법 제도 하나로 단정하기보다는 환자 상태와 의료진의 치료 판단, 감염 여부 등 다양한 요인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더퍼스트미디어 임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