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씬에 투신한 변호사들…‘법알못’ 스타트업에겐 등대이자 방파제

4인4색,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 열전

2021-05-11     최태욱

스타트업은 젊고 재빠른 조직이다. 실리를 향한 유연함도 그들의 특징이다. 스타트업 하면 떠오르는 심상, 예컨대 후드티‧운동화‧백팩 같은 외형적 이미지나, 위험에 굴하지 않고 일단 부딪혀 보는 행동 철학은 모두 그런 속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빠르고 저돌적인 특징이 때론 양날의 검이 된다. 혁신은 필연적으로 기존과의 충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법률 이슈가 발생하기도 하고, 애써 개발한 기술이 유출되거나 각종 권리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속도만 신경 쓰며 달리는 사이 조직 내 법적 균열을 방치하는 일도 생긴다. 인사·노무·회사법 등 기성 기업들이 겪는 법무 역시 고스란히 쌓여있다. 

법률 서비스에 대한 갈급함은 그 어느 조직보다 크지만 뾰족한 방책이 없다. 일당백 소수정예 조직에게 법은 너무 멀고 어렵다.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는 부담스럽고, 자체 해결은 가성비와 정확성 모두 떨어진다. 법과 가장 돈독해야 할 조직이 가장 소원해지는 모순이다. 

하지만 ‘법알못’ 스타트업들에게도 호재는 있다. 스타트업의 출현으로 세상이 진화한 만큼, 법률서비스 시장도 진화를 이뤄낸 것. 산업의 다양성을 환영하고, 스타트업의 활약을 응원하는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스타트업을 전담하는 로펌과 변호사들이 속속 등장했고, 경험과 학습을 통해 점점 더 세분화‧전문화되고 있다. [더퍼스트미디어]에서 스타트업 버금가는 열정과 미션으로 무장한 대(對)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들을 직접 만나봤다. 

 

혁신 스타트업을 이해하는 변호사들은 스타트업의 든든한 우군이다.

| 스타트업 스피릿 품은 금융 스페셜리스트_이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마스트)

“큰 기업들은 이미 특정 로펌과 단단히 연을 맺고 있잖아요. 굳이 그 레드오션에 편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네이버‧카카오 같은 혁신 스타트업과 일하는 로펌을 만들어보자는 게 시작이었죠.”(이정환 변호사)

지난 2015년 설립된 ‘법무법인 마스트’의 탄생 배경이다. 사명 ‘마스트(MAST‧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던 범선의 돛대)’에서 엿볼 수 있듯,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하는 혁신 기업들에게 성공을 위한 추진력을 제공하겠다는 철학을 가진 로펌. 그곳의 수장이 바로 이정환(40) 변호사다.

 

이정환(사진) 법무법인 마스트 대표 변호사

이 변호사의 첫 직장은 한국은행이었다. 금융권에서 근무할 당시 산업지형이 금융·IT 중심으로 바뀌는 걸 체감했고, 이는 사법고시 패스 이후 법조인으로서 전문 영역을 고르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어떤 무대에서 일하는 게 가장 즐거울까 고민하다보니, 기성 로펌에 들어가 단계를 밟는 기존의 커리어패스에 의구심이 들었어요. 당시는 마침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태동기이기도 했죠.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게 굉장히 인상깊고 신기했어요. 문득 저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의지는 신생 로펌 업무 분야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스타트업‧기업법무’, ‘금융‧핀테크‧가상화폐’, ‘지적재산권‧엔터테인먼트’ 등 혁신 창업기업들이 주요 고객사다. 이 변호사의 전문 분야는 기업자문 및 금융 M&A. 지금까지 국내 IT스타트업의 해외 투자를 돕거나, 플랫폼 기업의 무단 크롤링 분쟁을 해결하는 등 수많은 스타트업의 법적 도우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 변호사는 “가끔 자문으로 인연을 맺었던 스타트업들이 한참 후에 수천억원대에 인수‧합병되는 소식을 접하기도 있는데, 그럴 때면 괜스레 뿌듯해질 때도 있다”며 웃어보였다. 

변화무쌍한 스타트업씬에 맞춰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필수다. 최근까지도 규제 심의위원이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필드의 감각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 변호사는 스타트업 분야에 뛰어드는 법조인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대목에서 스타트업의 특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이미 완성된 회사를 상대로 일하는 것과 스타트업은 많이 달라요. 대개 자금 여력이 없기 때문에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투자자와 비슷한 관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비즈니스 아이템보다 사람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도 그래서죠.(웃음)

 

| 기술의 유연함과 법의 강직함을 한 손에_백승철 변호사(법무법인 비트)
최근 가장 핫한 직종은 누가 뭐래도 개발자다. 양질의 개발자 ‘모셔가기’ 전쟁이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거세져만 간다.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의 새로운 진풍경이다.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를 둘러싼 법적 이슈도 활발하다. 특허나 지재권 보호부터 기술 유출문제까지 법적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일투성이다. 그런 면에서 기술과 법을 두루 섭렵한 백승철(43) 변호사는 시대가 요구하는 맞춤형 전문가다.  

 

백승철(사진) 법무법인 비트 파트너 변호사

백승철 변호사의 이력은 스타트업의 '피벗(pivot)'을 연상시킨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공학도,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이 로스쿨을 통해 바꿔 단 명함이 바로 IT전문 변호사다. 출신이 출신인지라, 관련 분야의 법률 자문과 소송을 도맡았고 자연스레 기술 유출이나 각종 분쟁, 규제‧규정 등에 애를 먹는 스타트업들과 켜켜이 연을 쌓았다. 

“제품 개발 단계도 그렇지만, 회사를 만드는 순간부터 법적으로 신경 쓸게 정말 많은 조직이 바로 스타트업이에요. 교류나 의기투합을 중요시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을 과하게 믿어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고요. 병을 키우면 치료가 어렵듯, 법적인 정리도 되도록 빠른 시기에, 되도록 확실하게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함께 호흡했던 스타트업만 수백여 개, 단순 규제 자문부터 형사고발 사례까지 다양한 케이스를 접하면서 어느새 비즈니스 모델의 옥석을 가리는 눈까지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안주는 금물. 숨 가쁘게 진화하는 기술에 맞춰 스스로도 진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 이슈나 관련 법률의 개정 가능성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코딩 같은 기술적인 공부도 이어가고 있다. 

“요즘 개발자 없는 스타트업이 있나요?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저부터 잘 알아야죠. 개발자들이 쓰는 툴 같은 것도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데 꽤 적성에 맞더라고요. 즐겁게 배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웃음)”

 

| 예술적인 창업…법적으로도 완벽해야 하기에_김유나 변호사(법률사무소 아트로)
플랫폼의 발달과 MZ세대의 참여가 만든 열정 이코노미(Passion Economy)는 단숨에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시장이 미처 정비되지 못한 탓에 법적 분쟁 요소도 산적해있다. 한때 떠들썩했던 ‘뒷광고’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18년 김유나(37) 변호사가 법률사무소 '아트로(Artlaw)'를 설립한 이유도 그래서다. ‘젊은 기업, 착한 기업, 크리에이터를 위한 법률사무소’를 표방하는 아트로의 주 고객은 문화예술 분야의 스타트업들이다. 

 

김유나(사진) 법률사무소 아트로 대표 변호사

김유나 변호사가 초임 시절 적을 둔 곳은 ‘피키캐스트’ 법무팀이었다. 뉴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저작권 이슈 등을 관리하며 시나브로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득했고, 이는 자연스레 창업지원센터에서 스타트업을 멘토링하는 기회로까지 이어졌다. 

“스타트업들을 밀착 마크하면서 아이디어 단계, 사업자등록, 투자 유치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어요.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조직보다 법률서비스가 절실한 곳이 스타트업이지만, 그 어떤 조직보다 여의치 않다는 걸 확인했죠. 그런 경험들이 저의 개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예술(art)과 법(law)을 결합한 사명에 걸맞게, 아트로의 시선은 철저히 문화예술 분야에 고정되어 있다. 실제로 뉴미디어나 글로벌 전시 스타트업, 각종 크리에이터들이 주로 이곳의 문을 두드린다. 김 변호사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겪는 법적 분쟁은 자잘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문료 부담없이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 이상의 정신적 혹은 심정적 피해에도 민감한 분야가 예술 쪽이라, 그런 부분까지 보듬기 위해 특히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김유나 변호사는 스타트업 분야에서의 활동을 통해 늘 신선한 자극을 받고 있다고 귀띔한다. 자고 나면 바뀌는 트렌드에 맞춰 시시각각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 흥미롭고, 과연 어디까지 갈지 기대하는 바도 크다고. 대기업에 맞서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스타트업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그리고 이는 다시 새로운 도전의 동력이 된다.

“젊은이들이 대기업 대신 창업에 도전하는 것과 변호사들이 대형로펌 대신 전문 분야를 찾아가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기업의 크기와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니 법률서비스도 그에 맞게 변해야죠. 권위를 벗어 던지고 창의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법조인들도 늘고 있고요. 일단은 자신이 '픽’한 분야을 철저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인 것 같아요. 우리도 문화예술 산업의 구조나 관행, 하다못해 그들만의 용어까지 따로 공부하고 있답니다.(웃음)”

 

| 혁신을 변호하려면 혁신적인 조직이 필요합니다_ 김용혁 변호사(법무법인 디라이트) 
법률 조언이 절실한 스타트업이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높은 서비스 비용, 두 번째는 스타트업에 대한 로펌(변호사)의 이해 부족이다. 이에 대해 ”두 번째 문제만 해결하면 첫 번째는 자동적으로 해결 된다”는 발상으로 솔루션을 제시한 로펌이 있었으니, 바로 2017년 설립된 '법무법인 디라이트'다. 

“미국 포드사가 컨베이어 벨트를 만든 이후 자동차 가격이 확 싸졌잖아요.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생산비용이 떨어지니 자연히 판매가도 낮아진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였어요. 변호사들이 스타트업을 잘 알면 알수록, 그들에 대한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법률 서비스 비용이 낮아질 것이라 믿었죠.”

법무법인 디라이트 창립멤버 중 한 명인 김용혁(46) 변호사의 말이다. 김 변호사의 얘기대로 디라이트는 특정 스타트업에 숙련도를 갖춘 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일종의 ‘변호사 스타트업’이다. 모빌리티와 물류 분야 스타트업을 담당하는 김용혁 변호사만 해도 물류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고, 국토연구원의 디지털물류혁신 네트워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김용혁(사진)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 변호사

스타트업에 대한 숙련도를 높이는 과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스타트업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인 규제 변화를 시시각각 체크하고, 관련 법령과 정책의 개정도 예의주시한다. 특정 산업 분야의 담당자는 해당 산업을 지속적으로 추적관리하면서 주1회 사내발표회를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김 변호사는 “워낙 변화 속도가 빠른 분야라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면서 “다른 분야에 비해 변호사들 공부를 훨씬 많이 시키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스타트업’ 네 글자에 이 정도까지 꽂힌 이유가 뭘까? 김 변호사의 대답은 '새로운 가치와 사회적 기여'다. 

“우린 로펌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장애‧난민이나 재난 구호 등의 활동을 통해 잘 실천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죠. 대(對) 스타트업 법률 서비스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스타트업이 잘 돼야 우리나라 경제 전체가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고, 그들을 돕는 게 결국 사회 전체에 기여한다는 확신이 있죠.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 분야에 주목하는 법조계의 시선이 점점 늘고 있다는 건 크게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웃음)”

 

/사진: 각 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