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롭게 다가와 희망을 속삭이는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멜리그래픽 작가 인터뷰

2022-03-25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저의 작업은 우울과 고뇌로 시작해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가 늘 따뜻하고 감미롭죠. 마음속 어둠을 거둬내고 밝게 빛나려는 작가의 의지를 작품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거예요.”

멜리그래픽(23‧이하 멜리) 작가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또렷한 디지털 그래픽 아티스트다. ‘숨겨도 twinkle 어쩌나, 눈에 확 띄잖아’라는 노랫말처럼, 늘 반짝반짝 화려한 작품을 선뵌다. 작가의 팔 안쪽에 고이 새겨진 단어 ‘mellifluous’(감미로운)는 이정표이자 정체성이다. 작가명(멜리)까지 차용했을 정도의 단호한 의지다. 이토록 달콤화사한 감성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깊은 우울과 고뇌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우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더 밝아져야 하고, 늘 따뜻해야 한다. 멜리 작가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그리고 작가 개인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멜리(사진) 작가

| 다재다능 예술소녀의 시행착오…그렇게 예술가가 되다
멜리 작가는 다양한 예술 분야를 취미이자 특기 삼는 ‘종합예술인’이다.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가 하면, SNS에 직접 부른 노래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전부 예체능”이란 그녀의 말 속엔 예술 친화적인 작가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넘치는 끼는 이미 소싯적에 발견됐다. 음악, 미술 가릴 것 없이 재능을 드러냈고, 늘 가까이 하며 놀이처럼 즐겼다. 잘하고 좋아하는 만큼 표현에도 적극적이었다. 초‧중‧고 시절 장기자랑 무대를 거르는 법이 없었을 정도다. 

“부모님 영향이 커요. 두 분 다 예술을 엄청 좋아하시거든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아주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접할 일이 많았어요. 보통 어릴 때 예체능 학원 조금 다녀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잖아요. 그런데 저는 학원을 더할수록 꿈의 개수가 늘어나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재능만큼 다양했던 꿈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점차 정돈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음악을 침범했던 ‘번 아웃’과 ‘슬럼프’는 멜리 작가를 미술학도의 길로 인도했다. 멜리 작가는 “정작 예고에 진학하니까 음악하는 친구들도 부럽더라”면서 “하지만 당시엔 내 감성을 맘껏 표현하는 미술에 흠뻑 빠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재능이 돋보였던 멜리 작가

고교 시절, 멜리 작가를 가장 흥분시켰던 분야는 다름 아닌 ‘영화’였다. 원래 ‘최애’ 취미였지만, 미술을 공부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꿈으로 진화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공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멜리 작가는 “SF물이나 히어로 영화 같은 것들을 자주 접하면서 컴퓨터그래픽(CG)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됐다”며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기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꿈을 향한 발걸음은 주저함이 없었다. 학과 공부 외에 학원까지 따로 다니며 컴퓨터 그래픽을 연마했고, 급기야 굴지의 스튜디오에 인턴으로 채용됐다. 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린 컴퓨터 그래픽의 세계는 상상만큼 황홀하지 않았다. 

“회사 소속의 아티스트로 ‘모델링’이란 작업을 했는데, 말 그대로 그냥 기술자였어요. 어떤 걸 모델링하라는 오더를 받으면, 기계처럼 그것만 만들어야 했죠.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요. 몇 달을 버티면서 여실히 깨달았어요.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게 얼마나 값진 건인지를 말예요.”

 

| 예술가가 마음 속 생채기를 치유하는 방법
짧은 인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자유로운 창작자의 길을 재촉한 멜리 작가는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22살,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은 고스란히 작업으로 이어졌다. 신출내기 작가지만 세계관은 뚜렷했다. 유년 시절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늘 그림을 달고 살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를 담는 그릇도 자연스레 빚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작품명을 고심하다가 발견한 단어가 하나 있었어요. ‘Mellifluous’(감미로운)라는 단어인데 확 꽂히더라고요. 그 이후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감미롭게만 살자’라는 삶의 모토가 생겼어요. 제 작업의 공통주제도 그거예요. 어떤 작업을 하든 마찬가지죠.”

 

[Spring Nap] 따듯한 봄 햇살에 취한 고양이들을 통해 멜리 작가 특유의 화사한 색감과 반짝반짝 파티클이 잘 드러난다.

멜리 작가가 지난해 연말 완성했던 ‘Circular Tarot’라는 작품을 보면, 작가가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평소 타로카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멜리 작가가 타로의 세계관과 카드 각각의 의미를 심도 깊게 연구한 후, 이를 자신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멜리 작가는 “타로 공부하는데만 몇 주가 소요됐던 작업”이라며 “평소 즐겼던 취미에 나의 예술관을 오롯이 투영했다는 측면에서 만족도가 특히 높았다”고 설명했다. 

 

[Circular Tarot]는 감미롭게 희망을 찾아가는 멜리 작가의 예술관을 타로의 세계관에 투영한 디지털 아트 프로젝트다.

멜리 작가가 추구하는 감미로움은 단순히 ‘보기에 좋은’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따듯한 감성을 통해 절망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목적의식이 더 강하다. 어둡기 때문에 밝아지려 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즐거워지려 하는 것이다. 

“사실 어느 때부턴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강박이나 우울증, 공황장애로 실제 병원에 다닌 적도 있죠. 어쩌면 작업을 치료제 삼으려 했던 것인지도 몰라요. 따듯한 감성의 작품을 통해 제가 추구하는 편안하고 아늑한 꿈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것이죠.”

멜리 작가는 고뇌로 시작해서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자존감을 회복한다. 그녀가 손에서 작업을 놓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녀가 품게 된 작가로서의 소명은 자신이 발견한 희망의 빛을 관객들과도 나누는 것이다. 

 

| 감정 말고 메시지…<아트 인 메타버스>展은 도전이다 
지난 1월 21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는 멜리 작가에게 새로운 시도의 무대이자 도전의 장이다. 그동안 어떤 주제의 작품이든, 자신의 감정을 투사시키며 작업해왔지만, 이번만큼은 감정을 배제하고 메시지에 집중했다. 멜리 작가는 “스타일이 너무 뚜렷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이는 스타일에 갇혀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면서 “전혀 새로운 주제와 표현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애써 나를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작 ‘HOME_Be your future’는 환경파괴의 경각심과 위기감을 일깨우는 3D 디지털 영상 작품이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등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을 대비시키며 인류가 마주하게 될 미래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두 세계관을 보여주는 매개체는 집이에요. 집은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된 환경문제를 나의 미래로써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장치죠. 이를 통해 어떤 집, 어떤 환경에 살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을 직관적으로 던지려 했습니다.”

 

[HOME_Be your future]는 인류가 마주할 두 가지 미래를 대비시켜 환경파괴의 경각심과 위기감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번 작품은 멜리 작가가 사운드 아트까지 손수 맡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만큼, 기술적인 숙련도는 높았지만 작품에 직접 적용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토피아의 사운드는 자연의 소리만을 그대로 넣어 편안함과 안정감을 자아냈고, 디스토피아의 사운드는 빠른 심박 수의 심장 소리를 연상시키는 드럼 베이스를 사용해 경각심을 극대화했다. 

“처음 시도했던 면들이 많아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어색하고 어렵기도 했죠. 하지만 막상 끝내고 보니 잘했다 싶어요. 자신감도 많이 붙었고요. 향후 주제 선정에 있어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 같아요. 작가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한 느낌이랄까요?(웃음)”

 

| 예술이 주는 위로와 희망,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파
멜리 작가가 그리는 세상은 아직 밑그림 정도에 불과하다. 작가로서의 행보 역시 이제 출발선이나 다름없다. 그녀의 공식적인 신분은 여전히 학생이다. 이번 <아트 인 메타버스>의 경험은 그래서 더 값지다. 멜리 작가는 “세계 52개국의 디지털 아티스트들과 전시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내겐 큰 기회이자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아츠클라우드와 동행하며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는 29일부터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진행될 작가 개인전 ‘Artist of the week’은 그 동행의 시작점이다. 

 

멜리 작가 팔 안쪽에 새겨진 ‘Mellifluous’은 정신적으로 지친 작가를 일으키는 마법의 단어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했고, 영화보기를 즐겼던 멜리 작가는 아직 그 어느 것도 완전히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당장의 가시적인 목표는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멜리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운드 아트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서 “이를 더 발전시켜 사운드 디자이너 겸 그래픽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게 지금 당장의 현실적인 꿈”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분야의 표현을 빌리든, 멜리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건 역시 특유의 감미롭고 따뜻한 분위기다. “아무리 힘들어도 감미롭게 살자”던 그녀의 독백은 이제 방백이 되어 관객들을 향한다. 

“관객들이 제 작품을 보고 조금이나마 편안함과 위로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작품을 통해 우울과 몽환 속에서 밝음을 찾아왔던 것처럼, 관객들도 제가 추구하는 편안하고 아늑한 꿈의 세계를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가는, 친근한 아티스트가 되겠습니다!”

 

/사진: 멜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