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대로 내 길을 가는 20대 <이십할 페스티벌>
내 식대로 내 길을 가는 20대 <이십할 페스티벌>
내 식대로 내 길을 가는 20대 <이십할 페스티벌>
2015.12.15 22:25 by 이양구

'살아있는' 공연, 공연예술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 극장과 관객… 지금 '살아있는' 예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올해 <이십할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어느덧 두 해 째를 맞은 공연이다. 작년 겨울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서 공연하던 걸 생각하면 올핸 비교적 따뜻한 편. 하지만 계절은 어느덧 초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저녁이었다.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1분기 포스터. 올해로 2회를 맞은 '이십할 페스티벌'은 연극을 하고 싶지만 인맥도, 경력도, 자본도 없는 20대들이 직접 만들었다.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으며 페스티벌 내에서 개개인의 네트워킹을 통해 공연제작팀을 꾸린다. 1분기에는 선배 연극인과의 토론 및 참가자들과 네트워킹 시간을 갖는다.(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페이스북)

이 스산한 계절, 20대 연극인들이 마로니에 공원 야외무대를 누비는 이유는 뭘까?
이들의 얘기가 궁금했다. 지난 12월 7일, 양정현(28‧연출‧극단 청년단), 최하은(26‧극단걸판‧창작정거장 ‘이상’ 대표), 한상웅(28‧프로젝트그룹 SOMA) 등 참여자 세 명과 자리를 함께 한 이유다. 이들 셋은 서로를 “지금까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십할페스티벌 참여자. 왼쪽부터 양정현 (연출‧극단 청년단), 최하은(극단걸판‧창작정거장 ‘이상’ 대표), 한상웅(프로젝트그룹 SOMA))

양정현 연출(이하 양) = 작년에 1회 페스티벌 대표였던 전윤환(앤드씨어터) 형이 제 공연을 보러 왔었어요. 같이 소주를 한 잔 먹다가 기획 의도를 듣게 됐죠. 한 마디로 ‘같이 뭐라도 좀 해보자’는 거였어요. 같이 할 생각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재밌겠다고 했죠. 해보자고요.

한상웅(이하 한) = 저도 마찬가지에요. 전윤환 연출이랑 밥을 먹다가 제안 받았죠. 또래 친구들이랑 야외에서 작업을 하는데 우리끼리 재미있게 해보자고요. 그래서 제가 흔쾌히……

최하은 대표(이하 최) = 저는 (양)정현오빠 연락을 받았어요. 처음엔 작가로 왔다가 연출도 해보고 많이 배웠죠. 사실 졸업한 뒤 정말 황야에 버려진 기분이었거든요. 지도도 없이요. 그때 여기 와 보니까 나만 황야에 버려진 게 아니더라고요. ‘버려진 애들이 많구나…’란 생각이 들자 ‘내 길을 내 식대로 가보자’는 자신감이 생겼죠.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참가작 <공터(共無地)>(최하은 대표 연출). 공터는 불안정한 두 젊은 노동자의 이야기로, 그들은 같은 시간, 비슷한 장소에서 일을 하고 마주친다. 단기, 아르바이트, 일회용품, 노동자,그리고 소비자.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이다.(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참가작 중 <공터>(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왜 이십대만 모였던 것일까. 사실 나는 작년에 <이십할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걸 보고 꽤 큰 감동을 받았다. 냉큼 좀 끼워달라고 했는데 ‘뺀찌’ 맞았다. 이십대만 된다는 거였다. “마음이 이십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십할 페스티벌이나 준비하라”는 거였다. 왜 하필 이십대만 모인 걸까?

양 = 가장 출발하기 어려운 게 20대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윤환 연출의 경우 20대부터 자기 극단을 운영했잖아요. 어려움이 많았겠죠. 그 한계지점을 돌파하기 위해서 20대들끼리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그러니까 2014년 여름만 해도 동갑내기 친구들을 연극 현장에서 만나기가 어려웠어요. 저보다 나이가 아주 많거나 아예 어리거나 그랬죠. 그런 데서 외로움이 오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공연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150명이 넘어요. 18개 팀이 만들어졌다가 14개 팀이 공연까지 했으니 거의 100여명이 참여 했어요. 거기에서 상웅 씨와 하은 씨도 만난 거고요.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1분기 <너와 나의 LINK> 중 오세혁 작가와의 만남(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텀블벅)

한 = 사실 배우들은 학교나 (입시)학원 같은 데서 만나요. 그런데 연출들은 우연한 기회에 작업을 하다가 건너건너 알아가는 게 고작이죠. 그러다보니 만나기 어렵죠. 누가 누군지는 아는데, 선뜻 밥 한 끼나 술 한 잔이 어려운거예요.
<이십할 페스티벌>이 만남의 공간을 열어준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만들고 올리는 것 자체가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이었어요. 내 작품을 올리면서도 좋은 만남이 생겼고, 주변에 다른 친구들 것을 보면서 서로를 알게 되죠. 다른 친구 작업을 보면서 ‘나 혼자만 달리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기댈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건 덤이고요.

최 =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게 가장 크죠. 그것도 수십 명을 동시에요. 전 60명 정도 만난 것 같아요.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을 마치고(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한 = 저는 100명이랑 다 얘길 해봤을 거예요. 공연 보고 술 먹으면서. 이 페스티벌이 정말 좋은 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거죠.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해요. 특히 정현 씨가 했던 ‘근육을 키운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함께 작업을 해나가면서 근육을 키운다는 거죠.

양 = 제가 중학교 때까지 농구를 했던 사람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봐요. 농구선수는 자꾸 슛을 날려봐야 하잖아요. 우리도 그래야하거든요. 근데 그럴 환경이 없다는 거예요. 특히 연출은 더 그렇죠. 작가도 내가 쓴 글을 배우가 연기하는 걸 봐야 늘어요. 시행착오를 겪어볼 환경이 너무 없는 거죠.

최 = 누가 그러더라고요. 지원금을 받으려면 경력이 있어야 되는데 경력을 만들려면 지원금을 받아야 된다고. 그래서 그런 지원 제도라는 체제 바깥에서 우리 스스로 뭔가 훈련을 하고 경험을 쌓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생각의 전환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양 = 나이도 어린 게 뭘 하겠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게 좀 많았어요. 자질이나 생각을 보기 보다는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그런 얘길 하고 있어?’라는 분위기. 사실 하고 싶은 얘기도 마음대로 못 하죠. 연극계만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반이 그렇지 않나요?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참가작 <하루 종일 보라>(양정현 연출). (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참가작 중 <하루 종일 보라>(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사실 작년 <이십할 페스티벌>이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20대들이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뭔가 강렬하게 표출하는 느낌 덕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러 갔더니 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나오는 작품이 있더라. 한겨울 밤에 그 추운 마로니에 공원에서. 오죽 힘들면 그럴까 싶은 마음 한 편엔, 조금 다른 에너지를 만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무슨 작품들을 했을까, 그리고 아쉬웠던 것은 무엇이 있었을까.

최 = 아쉬운 게 동시에 장점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8월에 연락을 받아서 9월에 오프라인 만남을 하고 11월에 팀이 서로 매칭 됐어요. 공연은 12월이었죠.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추진력이 필요했어요. “장비는? 공간은?” 외치면서 뜨겁게 뛰어다닐 수 있었던 이유예요. 한정된 시간 안에 멋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올해는 조금 많이 온건해져 보였을 수도 있어요.

한 = 전 작년에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용사들 얘기를 했어요. 좀 게임스럽죠? 하하.  ‘선택 받은 사람은 따로 없다’란 내용이었죠.
당시 날씨가 굉장히 추웠어요. 음악을 틀어야 하는데 컴퓨터가 얼고, 핸드폰도 안 켜지죠. ‘지금 기온이 너무 낮습니다’라고 뜨면서 배터리가 순식간에 나가버려요. 그런데도 마음은 다들 뜨겁죠.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영하 십 몇도 한 겨울, 그것도 야외에서요. 입이 얼어서 대사하기도 어려운데 다들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요.
올해는 우렁 각시가 시집가는 얘기를 했어요.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얘기에요. 자유…… 내가 선택하고 노력하면 미래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참가작 <우렁각시 시집 가는 날>(한상웅 연출). '살림 잘 하는 여인'의 이미지로만 굳어있는 우렁각시. '어머니', '아내'로서의 우렁이가 아닌 '사람'으로서 주체성을 찾는 이야기다.(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참가작 중 <우렁각시 시집 가는 날>(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연출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그런 선택과 자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사회구조로 넘어갔다. 속칭 ‘헬조선’말이다. 구조에 대한 질문이 작품과 삶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을까 궁금했다.

최 =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떤 작업이든 구조적 모순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구조가 정의롭지 못한데 개인이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이십할 페스티벌 자체만으로 구조적 모순에 대항할 순 없겠죠. 그러기엔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대학로의 압축판 같은 거죠.

내가 궁금했던 건 <이십할 페스티벌>의 주제나 내용이 아니었다. 다만 그 안에서 어떠한 절차들이 지켜지고 있는가, 어떻게 만나서 합의를 이루고 자신들이 내세운 가치와 원칙들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한 = 일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작년과 올해가 많이 달랐어요. 작년에는 급작스럽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었다면 올해는 체계를 가지고 진행을 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달랐던 것 같아요. 올해는 집행부가 전체의 밑바닥을 받치면서 가는 상황이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십할 페스티벌>에 이런 집행부라는 체계가 있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최 = 우리가 만든 것은 상하관계가 있는 구조라기보다는 일을 하기위한 시스템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 2분기 포스터. 1분기 '너와 나의 LINK'에서 쌓은 네트워킹을 토대로 공연제작팀을 꾸린 후, 직접 공연을 만들어 올린다. 20분 내외의 창작 야외극을 만들며, 올해는 100여 명의 인원이 18편의 작품을 공연했다.(사진: 이십할 페스티벌 페이스북)

양 = 제일 필요한 게 결국 돈과 시간이더라고요. 사람의 열정이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일을 만들어내는 건 돈과 시간이죠. 근데 돈이 없으면 시간이 없어요. 경력을 만들려면 지원금이 필요하고 지원금을 받으려면 경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비슷해요.

최 = 전 1회 때는 단순히 참가만 하다가 올해는 집행부를 하면서 잡일을 많이 했는데 작년에 참가자로 있으면서 불편했던 걸 다 해주고 싶었어요. 조금 덜 춥게 해주고 싶었고 연습실도 해주고 싶었고요. 근데 부작용도 있어요. 작년에는 제가 참가자로서 직접 챙기지 않으면 공연을 못 올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올해는 집행부가 편의를 봐주는 행동들을 하다보니까 ‘니들이 지휘하냐?’는 오해도 생겼던 것 같아요. 내년 3회 때부터는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자발적인 열정과 참여로 시작된 <이십할 페스티벌>이 좀 더 나은 페스티벌 운영을 위해서 선택한 집행부 체제가 내년 제3회 이십할 페스티벌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갈지 궁금해진다.

다음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연극 <하나코>. 연극인 • 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본 <하나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연극 <하나코> 2015년 12월 24일 ~ 2016년 1월 1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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