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패션을 아시나요?”…친환경 가죽‧염료로 지속가능한 패션 이끈다
재클린 크루즈 ‘레카라(Le Qara)’ 대표 인터뷰
“비건 패션을 아시나요?”…친환경 가죽‧염료로 지속가능한 패션 이끈다
2022.10.17 14:06 by 최태욱

‘KSGC SPECIAL’은 2022년 ‘K-Startup Grand Challenge’ 프로그램에 참여한 글로벌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연재 시리즈입니다. 

패션산업의 환경오염 유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매년 전 세계 온실가스의 10%를 차지할 정도다. 각종 화학약품과 폐기물의 양까지 생각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더 큰 문제는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옷과 잡화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재활용되는 수치는 10%대에 머문다. 우리가 입으면 입을수록 지구는 헐벗게 되는 딜레마다.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 2015년 ‘파리협정’을 계기로 대두된 이 개념은 환경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지고, 패션 산업 시스템 전반에 변화를 꾀하자는 움직임이다. 재활용 의류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업사이클링’ 패션이나 패션기업의 조림사업이나 자연보호 캠페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장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방책은 환경오염의 발생을 원천 차단하는 것. 이른 바 ‘친환경 소재’의 개발 및 도입이다. 페루의 전도유망한 스타트업 ‘레카라(Le Qara)’처럼 말이다. 사명(社名)인 ‘카라(Qara)’는 페루 원주민의 언어로 ‘가죽’이라는 뜻. 동물의 도축 없이 미생물 원료로 가죽을 만든다는 기업의 미션이 잘 담겨있다. 어린 시절 아끼던 자연환경이 망가져 가는 것을 직접 목도하면서 친환경 소재에 인생을 건 자매 창업가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스타트업 ‘레카라’를 창업한 이세말 크루즈(왼쪽), 재클린 크루즈 자매
스타트업 ‘레카라’를 창업한 이세말 크루즈(왼쪽), 재클린 크루즈 자매

| 대기업 박차고 나온 미션…“환경을 지켜라”

“어릴 때 우리 자매는 강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어요. 그땐 물도 참 맑고, 물고기들도 많았죠. 하지만 이젠 하나도 안 보여요. 환경이 너무 오염되어 버린 거죠.”

재클린 크루즈(31, 이하 재클린) 대표의 말은 그녀의 출사표와 다름없다. 패션 산업이 환경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재클린 대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페루의 ‘아레키파(Arequipa)’라는 도시로 가죽, 섬유, 직물 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재클린 대표는 실제로 가죽 공장에서 흘러나온 잔류물들이 강으로 흘러드는 걸 종종 봤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재클린 대표는 “그런 환경에 워낙 오래 노출되어 있다 보니, 대부분 오염에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면서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경각심과 도전의식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먼저 행동에 나선 건 동생인 이세말 크루즈(이하 이세말)였다. 생명 공학 및 미생물학을 전공했던 동생이 서로 다른 미생물을 조합하여 인공 가죽을 만드는 실험에 뛰어들었고, 시제품이 만들어질 무렵 재클린 대표가 전격 합류했다. 합류 당시 페루의 10대 기업 중 한 곳에서 일하고 있던 재클린은 마케팅, 영업, 재무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산업 엔지니어였다. 흩어진 자매의 전문성과 열정이 하나로 모아졌던 순간이다. 

“2017년부터 동생이 연구를 시작했어요. 여러 대학 실험실을 전전하며 정말 힘들게 개발해나갔죠. 1년 후 첫 번째 시제품이 나왔을 때, 여동생이 먼저 학업을 중단했고, 저도 회사를 나왔어요. 여기에 ‘올인’하기로 한 거죠.”

자매의 용기있는 도전은 여러 결실로 이어졌다. 투자금 마련 등을 위해 참여했던 공모전이나 경연대회에서 잇달아 입상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2019년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의 우승은 꽤나 고무적인 성과였다. 지속가능 패션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평가받는 해당 대회에서 남미 최초의 영예를 얻은 것이다. 이에 대해 재클린 대표는 “환경에 대한 인식이 점점 변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걸었는데, 이를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던 경험”이라며 “그 수상을 계기로 스스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더 큰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재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재클린 대표
소재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이세말 대표

| 가죽보다 나은 가죽, 어제 보다 나은 내일   
레카라에서 만드는 가죽은 친환경 소재이면서도 소재 본연의 기능성이 월등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먼저 모든 가죽 제품의 재료가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인간의 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생물을 의미하는데,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병을 야기하는 세균이나 사상균, 곰팡이나 버섯에서 자라는 진균, 요구르트나 맥주, 빵 등을 만들 때 관여하는 효모균 등이 모두 미생물의 일종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미생물들을 조합하거나 변형하여 옷감으로 만드는 것이 레카라가 진행한 연구의 핵심이다. 

자연에서 나온 것이니 만큼,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통상 가죽을 만들기 위해 매년 38억 마리의 동물을 도축하지만 이 과정이 불필요하다. 자연히 도축 과정에서 생기는 자원의 낭비가 없어지고, 공정에 소요되는 플라스틱 및 화학약품의 사용량도 제로에 수렴하게 된다. ‘패스트패션’의 대두로 골치를 썩고 있는 폐기물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레카라의 모든 제품은 생분해성 특징을 가지며 공정상 생기는 잔류물 또한 비료로 사용가능하기 때문이다. 재클린 대표는 “동물 가죽을 만들기 위해 연간 4000억 리터의 물을 쓰지만, 우리는 그 1%의 용수로도 가죽을 만들 수 있다”면서 “사용 잔류물이 퇴비로 재사용 될 수 있는 만큼, 거의 완벽한 제로웨이스트(Zero-waste) 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지만, 그 가치에만 매몰되지는 않는다. 동물 가죽과 흡사한, 어떤 면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소재의 기능성을 자랑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100도의 온도와 압력을 견디고 2788psi의 인장 강도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의 내구성을 갖췄다. 동물 가죽과 비교해 우수한 촉감을 보유해 특히 고급 제품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용이하다. 기존보다 짧은 생산 시간과 적은 생산 비용으로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품질이 들쑥날쑥하여 일관성을 갖기 힘든 동물 가죽의 단점마저 보완한다. 

레카라는 친환경 인공 가죽의 개발을 완료한 이후 내친김에 미생물을 활용한 바이오 염료까지 개발했다. 옷감과 염료라는 구색을 갖춘 것. 레카라의 성취가 미래 패션 분야의 지속 가능한 솔루션으로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이유다. 

 

레카라의 친환경 가죽과 염료 제품
레카라의 친환경 가죽과 염료 제품

| 트렌드 넘어 문화로…“한국의 소비자들도 함께 해요!”
레카라가 한 땀 한 땀 공들여 추구하던 가치들은 이제 묵직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자사의 공정과 제품에 대한 특허 출원은 물론, ‘GOTS’, ‘OEKO TEX’, ‘Bluesign’, ‘FCS’ 등으로부터 섬유 인증까지 보유한 상태다. 자매 둘이서 추구했던 혁신의 동지도 어느새 10명으로 늘었다. 

레카라가 부지런히 혁신을 향해 달리는 사이, 세상도 그 혁신을 받아들일 채비를 마쳤다. 전 세계가 ‘ESG’(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이르는 말)에 눈을 떴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친환경 가죽 시장 역시 10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들어 레카라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회사가 부쩍 많아진 것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반증이다. 

“럭셔리 브랜드를 포함해 전 세계 200개 이상의 패션 기업에서 이미 관심을 표명했어요. 현재는 20여 개의 브랜드와 상업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 중이죠. 그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딱 하나에요. 친환경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거든요. 저희는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가죽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고요.”

 

레카라의 가죽으로 만든 패션 제품들
레카라의 가죽으로 만든 패션 제품들

레카라는 지난 8월초 국내 최초의 인바운드(Inbound) 기업 보육 프로그램 ‘K-Startup Grand Challenge’을 통해 한국 시장에 노크했다. 이들이 한국을 눈여겨 본 이유는 한국의 시장성과 시민의식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가죽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시아의 거점이며, 세계 10위 안에 드는 럭셔리 마켓, 거기에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한국에서 자신들의 혁신을 증명해내겠다는 포부다. 

“주부들이 먹는 제품을 살 때 성분을 확인하잖아요. 이제 옷을 살 때도 그럴 거예요. 소재를 확인하고 환경에 무해한 제품을 선택하는 거죠.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정착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고 싶어요. 한국 시장에서도 아마 내년쯤이면, 저희 소재가 활용된 제품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사진: 레카라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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