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낀 에너지, 선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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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낀 에너지, 선물이 되다
내가 아낀 에너지, 선물이 되다
2015.12.14 16:46 by 황유영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에너지도 기부할 수 있어요" 
소셜벤처 워터팜·루트에너지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 사전이 설명하는 ‘기부’의 의미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기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최근 기부 문화가 확대되면서 기부의 범위 역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연예인들의 초상권 기부나 재능 기부는 이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기부 범위 확산은 자연스럽게 기부 문화의 확산으로도 연결된다. 여기에 새로운 기부를 제안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서 절약한 에너지를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 기부하고, 서울의 절약으로 산골 마을에 전기를 기부한다. 이런 기부를 통해 세계가 나눔으로 하나가 된다.

에너지도 기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픽: Honza Hruby, shutterstock.com)

박찬웅 워터팜 대표,
"전 세계가 하나의 물탱크를 공유한다면…"

지구 어딘가에서 흙탕물을 마신 아이들이 죽어가고, 물을 구하기 위해 무거운 양동이를 진 아이가 수십 킬로를 걷는 사이 반대편의 또 다른 나라에선 물을 펑펑 쓰고 있다. 해결하기 힘들 것 같은 이 불균형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물을 절약해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기업이 있다. 물 공유 플랫폼을 추구하는 ‘워터팜’이다.

워터팜은 가정이나 기업에 절수기를 설치해 물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컨설팅해주고, 실제 줄어든 물 사용량을 수도요금으로 환산해 물 부족 국가에 공유하는 소셜 벤처다. 지구가 하나의 물탱크를 사용한다면 부족과 낭비의 불균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 박찬웅 대표의 아이디어는 캄보디아로 떠난 봉사활동에서 시작했다.

박찬웅 워터팜 대표

“물 부족 국가의 현실을 아무리 들어도 피부도 와 닿지 않았어요. 그저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죠.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듣던 국제개발 수업에서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떠났는데 그때 알게 된 어린 친구가 내 눈앞에서 흙탕물을 마시더라고요. 그 아이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었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내가 낭비하는 물을 아이에게 줄 수 있다면’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졸업 후 편입 영어 강사로 일하던 박 대표는 서른이 되던 해 ‘아름다운가게 사회적기업창업전문과정’을 들으며 아이디어를 구체화 해나갔다. 2013년 7월 소셜벤처경연대회 본선에 진출하며 기획이 현실이 됐고, 그해 10월 강동구와 희망제작소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절수기를 ‘한살림’ 30여 가구에 시범적으로 설치하면서 사업 시작을 알렸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선정되는 성과도 얻었고 7월에는 법인화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

워터팜은 사람들이 절약한 물을 수확해 물 빈곤 지역에 전달한다. (그래픽: 워터팜 제공)

박 대표가 생각하는 워터팜의 핵심 역량은 절수기가 아니라 데이터 분석이다. 이를 바탕으로 컨설팅과 물 절약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스마트 측정 장치로 발전해 나갈 계획.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서른 살에 영어 강사를 그만두면서 엄청 고민했어요. 굳이 내가 나서야 하나 싶기도 했죠. 그때는 그냥 즐거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초기 단계에서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무산되는 과정을 겪으며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물 뿐 아니라 에너지 전반이나 빈곤 등 모든 불균형을 해결하고 싶어요.”

에너지 나눔으로 기후문제 해결까지
루트에너지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빈곤 해결’, 루트에너지의 미션이다. 미션 수행은 ‘절약과 나눔’으로 한다. 내가 절약한 에너지를 타인에게 나눠준다는 얘기다.

소셜벤처 루트에너지는 환경컨설팅 업체를 거쳐 덴마크에 있는 UNEP(유엔환경계획) 기후에너지 분야 연구소에서 일하던 윤대환 대표가 비즈니스를 통해 한국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10월 귀국하면서 설립했다.

루트 에너지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에너지 공유 캠페인 ‘에너지 히어로’다. 내가 안 쓴 만큼 에너지 빈곤층에게 기부할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이다.

'에너지 히어로' 캠페인 참여자들의 모습

생활 속에서 ‘걷자(계단 및 도보)’, ‘끄자(미사용 전등 및 모니터)’, ‘뽑자(미사용 코드)’, ‘타자(대중교통)’, ‘들자(1회용컵 대신 텀블러)’, ‘쓰자(양면인쇄, 이면지)’, ‘입자(시원한 옷차림)’, ‘닦자(핸드타월 대신 손수건)’ 등 8가지 절약법을 실천하고 인증샷을 앱이나 SNS에 올리면 수혜자에게 친환경 에너지가 기부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기부된 에너지는 한 마을을 밝혔다. 세븐일레븐 후원으로 진행된 ‘산골마을 태양광 패널 설치’가 그것이다. 서울 은평구의 270여 세대가 거주중인 ‘산골마을’은 노후주택 비율이 높아 80%가 에너지 빈곤층에 속한다. 이 마을 중 21가구에 지난 8월. 10kw태양광 패널이 기부됐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매년 600만원의 전기요금 절감효과까지 볼 수 있다. 전기 요금 절감은 물론 약 14톤의 이산화탄소(CO2)를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전망. 이는 3000번 이상의 에너지 절약을 실천한 600명의 ‘에너지 히어로’ 덕분에 가능했다.

서울 은평구 '산골마을'에 태양광 피널이 설치되는 모습

에너지 히어로는 매주 1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온라인 에너지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쉽고 재미있는 간접 체험을 통해 에너지 절약과 기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다.

향후 루트에너지의 활동은 해외에서 더 빛날 전망이다. 28년 동안 약 60만 명의 환자를 무료 진료한 ‘요셉의원’과 시리아 난민들에게 100개의 룸 텐트를 지원하는 에너지공유캠페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민들의 절약 참여를 이끌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