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를 좇는 길바닥 예술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사람 냄새를 좇는 길바닥 예술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2016.02.02 11:03 by 구승준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에서 폭발하고, 어떻게 숙성 또는 변형되며, 어떻게 완성되는가?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가장 빤한 이미지는 대뇌 ‘생각의 전구’에 불이 번쩍 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에이티브를 이루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 아주 작은 요소다. 크리에이티브를 현실화하는 데는, 상대성원리를 발견하기까지의 기간보다 그것을 대중에게 설명할 방법을 고민한 기간이 더 길었다는 아인슈타인의 고백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여기서는 그 얘기를 듣는다. 그들의 공상가적인 열정과 만년대리 같은 성실성, 아이디어를 세일즈 하는 마케터 같은 수완까지 크리에이티브의 모든 것.

상업주의의 숙주가 되어버린 잡지사를 과감히 나와 혼자서 기획, 편집, 디자인, 원고 작성까지 하는 1인 잡지 <BLINK>를 만든 김아람 에디터. "당신이 본 것을 믿으라"는 그녀를 만나보자.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어떤 아티스트는 자신을 치장하려고 예술을 한다. 어떤 아티스트는 그저 돈벌이가 되니까 예술을 한다. 또, 어떤 아티스트는 유명해지려고 예술을 한다. 그게 예술 행위의 첫 번째 동기일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며 변질된 모습일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모두 자기 자신의 삶에서 괴리된 아티스트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이런 아티스트가 너무 많다.

진짜 아티스트는 자신과 솔직하게 대면하는 ‘세례의식’을 거친 후 만들어진다. 그때, 예술은 그에게 도구가 아니라 존재방식이 된다. 그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이 국제학부를 다니며 외교적 수사를 익히는 대신, 질박한 동네사람들에게서 나는 사람 냄새를 택한 것도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너는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데, 왜 너를 증명하려고 하니?”라는 어머니의 말이 도화선이 됐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괴리된 삶’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가장 ‘충실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길바닥으로 간다. 길바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맨얼굴이 주는 감동만큼, 자신을 울리고 웃기고 뒤흔들어놓은 것이 없기에.

LEICA M3_몇년 동안 모은 돈으로 산 그녀의 보물 1호. 셔터를 누를 때마다 지금도 그녀의 가슴은 뛴다. 필름카메라라 미리 사진을 볼 수 없어 기대감은 더 증폭되며, 오늘 암실에서 어떤 사진이 나올지 상상하게 만든다.

정(情)을 담기 위해 찍는다 ― 임수민 사진의 출발점

어렸을 때는 어땠나?

임수민(이하 임) : 부모님의 직업 때문에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살았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성장기 내내 모로코, 프랑스, 호주. 덴마크와 한국을 오가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더 증폭된 것 같다. 어제까지 히잡을 뒤집어쓴 사람들을 보다가 오늘 갑자기 머리칼이 노랗고 눈이 파란 사람들을 보면, 어린 나이에 얼마나 신기했겠나.

당신은 유전자만 한국인이고 생활 방식은 외국인인, 이른바 ‘머리 까만 외국인’ 아닌가?

임 : 아니다. 외국 체류 중에도 부모님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집 안에서 외국어를 못 쓰게 하고 한국어를 쓰게 하셨다. 대학교도 반드시 한국에서 나오라고 고집하셔서 한국으로 온 것이다. 또 식습관도 완전히 한국식이라서,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김치 생각이 난다. 뜨거운 국에 밥 말아서 김치랑 먹을 때가 좋다.

서울_노인들

늘 한국이 그리웠다는 말인가?

임 : 그렇다. 한국이 너무 그리웠는데, 대학 다니려고 한국에 와보니 사람들이 나를 외국인 취급해서 많이 속상했다. 당시에는 말도 어눌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외국에 있을 때는 한국인이라고 차별 받았는데, 한국에 오니 외국인이라고 거리를 두니 당황스러웠다.

한국이 그리웠던 이유는 뭔가?

임: 어릴 적에 서울 홍제동에서 살았다. 인기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88>에 나올법한 그런 동네였다. 삐뚤빼뚤한 좁은 골목길, 칠이 벗겨진 담벼락이며 파란색 철대문 등등. 투박하지만 따뜻했던 분위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 동네를 생각하면 한국인 특유의 ‘정(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외국 사람들에게 '정(情)'이라는 말을 번역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적당한 말이 없었다. ‘emotion’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friendly’도 아니다. ‘close’라고 해서도 안 될 것 같고, ‘sympathy’와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사진에는 정이 묻어난다. 정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인가?

임: 그렇다. 정(情)을 말로 표현하는 건 어렵지만, 사진으로 담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다. 미국 아틀란타의 에모리(Emory) 대학교에서 사진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다.

서울_노인

‘필름 카메라’에는 나의 존재가 더 개입되는 희열이 있다

전공을 바꾼 것인가?

임: 아니다. 나는 비전공자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국제학을 전공했는데, 스펙을 쌓느라고 다양한 공부를 하고, 기업체 인턴도 몇 개씩 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마침 에모리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그동안 너무 숨 돌릴 틈도 없이 살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그냥 놀자’라는 목표를 세웠다. 전공 수업 네 개에 교양 수업은 사진 하나였는데, 전공 수업은 대충하고 암실에서만 하루 아홉 시간 이상 있었다.

그때 사진의 모든 것을 배운 것인가?

임: 사진 찍는 건 배우지 못 했고, 암실에서 현상하는 것만 배웠다. 그 이후부터 계속 네거티브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임수민 사진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면 여러모로 간편한데, 왜 굳이 필름 카메라로 작업하는가?

임: 맞다. 처음 필름 현상을 하던 시절에는, 여행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한 일도 있었다. 타이밍 조절을 잘못 했는지 모두 하얗게 나왔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더라. 디지털로 사진을 찍을 때는 인공적인 느낌이지만, 아날로그의 느낌은 나의 존재가 더 개입되는 느낌이다. 그저 버튼만 누르는 게 아니라 나의 행위가 좀 더 들어가야 한다. 내가 잘 하면 결과가 좋아지지만, 내가 잘못하면 결과가 나빠진다. 필름을 현상하는 과정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희열을 느꼈다.

왜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가?

임: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즐겁다. 사람들을 만나면 잊고 살았던 나 자신 속의 다른 조각을 발견하는 듯하다. 또, 삭막한 도시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이 시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스튜디오에서 찍거나 하는 예쁜 사진은 나 말고도 잘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녀의 작업노트_늘 다음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궁리한다. 고등학교 때 미대를 고민할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비전공자이므로 더 치열하게 노력한다. 다큐멘터리 사진들에서 좋은 장면을 잡기 위해 구도가 희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인물의 표정과 구도 등을 모두 살리기 위해 애쓴다.

개인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 집단의 역사가 된다

처음 전시를 연 건 언제인가?

임 : 3년 전이다. 당시 덴마크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회사가 ‘덴마크 디자인 센터’ 건물에 있었다. 내가 사진을 전시하고 싶다고 제안을 해서, 로비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외국인이 찍은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찍은 한국인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어떤 전시를 했나?

임: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노인, 노동, 놀이>를 테마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사진을 전시했다. 원래 이 공간은 학생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는데, 당돌하게도 정보대학원장에게 찾아가니 원장님이 껄껄 웃으며 실무진에게 소개해 전시가 성사되었다.

재작년에는 이태원 우사단 길에서 전시를 했는데, 노인들의 사진을 찍어 액자로 만든 후 전시가 끝난 후 나눠드렸다. 원래 전시를 하려면 사진을 크게 뽑아야 하지만, 액자를 만들려고 일부러 작게 뽑았다. 어르신들이 그걸 받고 아주 기뻐해주셨다. 다음에는 가족사진을 찍어 나눠드리려고 기획 중이다. 양평에서 했던 <작은 역사>라는 이름의 전시도 있다. 개인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 집단의 역사가 된다는 의미다. 또, 제주도에서는 <재주도 좋아>라는 전시를 했다. 여러 나라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한국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밖에 다수 전시를 했다.

아네테_여인

이 시기, 이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임 : 어렸을 때는 홍제동에서 살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반포에서 살았다. 그런데 너무 삭막한 것이다. 다시 홍제동으로 가 보니, 이미 그 동네는 없어지고 고층 아파트촌이 들어서 있었다. 내가 그때 겪은 것들은 모두 마음에만 남아있다. 도시가 더 개발되고 지금 살아있는 분들이 돌아가시면 모두 사라져버리게 되는데, 너무 안타깝다.

서울_노인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무례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가?

임: 예전에 육교를 지나며 봤던 어떤 풍경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계단을 느릿느릿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오던 여고생 둘이 답답해서 마구 화를 내더라. “아, 짜증나! 왜 길을 막아!"하면서. 그런데 원래 사람은 느린 것 아닌가. 자동차나 열차가 빠르고, 기계가 빠른 것이다. 도시화되고 기계화된 사회가 우리를 무례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인들은 거리에서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고, 뒤에서 사람이 오건말건 문을 세게 닫아버린다. 문화적인 소양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도 한다.

임: 문명이라는 이름은 세련되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차가운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련된 방식으로 대화하는 게 좋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예전에는 어린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어른들이 혼을 냈다. 그건 전혀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애정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다. 요즘은 담배 피운다고 혼내려고 하면, 학생들이 동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거나 심지어 어른을 집단 폭행하기도 한다. 때로는 혼내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닌가.

대여섯 살 때 프랑스에서 겪었던 일이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아시안 푸드마켓에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한 아줌마가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고추를 다듬고 계셨다. 그걸 보자 갑자기 한국에 있을 때 할머니가 김치를 담그시던 모습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한국 할머니들은 투박하지만 정이 느껴진다.

서울_노인

“엇, 아까 가게에서 봤던 할머니 사진이잖아?”

그래서 사진에 노인들을 주로 담는가?

임: 노인들은 행동 하나 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하다. 말 한마디를 하거나 손을 구부려 뭔가를 집으려고 할 때도 역사를 보는 듯하다. 오랫동안 몸에 밴 특유의 느낌이 있어,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감동을 느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노인을 담는 건 의미가 크다.

이태원 우사단길에 작업실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인가?

임 :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달동네 같은 곳인데,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 느낌이 난다. 거기에서 동네사람들을 찍어 <동네사람들>이라는 사진 전시를 했다.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와서 “어, 이 할머니 오면서 보니까 저 가게에 앉아 있던데...”라며 신기해했다. ‘서울에 이런 곳도 있구나’ 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게 해 주고 싶다.

도시화가 덜 된 저개발 국가의 사진을 찍는 것도 소위 ‘사람 냄새’ 때문인가?

임: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저개발국가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하고, 우리가 도와줘야 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못 배우고....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국제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정말 그런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만 했다. 성격상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막상 아프리카에 가 보니 선입관이 와르르 무너졌다.

서울_노인

상상했던 것과 어떻게 달랐나?

임: 가난하다고 절망에 빠져있지 않았고, 되레 삶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면서 놀고 있었다. 빈곤층이 사는 마을에 갔는데 여자들이 너무 화려하고 멋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선진국의 고층 빌딩에 근무하는 여자들이 무채색 옷을 입고 있지 않나. 우리는 가보지도 않고 선입견으로 낙인을 찍어, 그들의 문화와 전통까지 무시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함부로 생각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성공’이라는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 삶을 희생시키지 마라

요즘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삶은 만만치 않다. 상업사진의 정점을 찍은 작가들도 웨딩 스튜디오나 베이비 스튜디오를 내고 있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어떻게 먹고 살려고 하는가?

임 : 나는 사진으로 돈을 벌려는 생각이 없다. 돈은 다른 방식으로 벌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처럼 공무원을 하거나 대기업에 필사적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프리랜서로 번역과 통역을 할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왜 남들처럼 정규직을 선택하지 않고 고단한 길을 가려고 하는가?

임 : 그동안 일반적인 대학생의 삶을 살았다. 인턴을 하거나 기업에서 마케팅을 하거나 여러 일을 하면서 스펙을 쌓았다. 회사에 들어갈 때마다 조직에 적응하고 일을 잘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 날마다 울었는데, 그걸 본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너는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데, 왜 너를 증명하려고 하니?” 그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내게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보다는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스탄불_노인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좋은 대학을 나와 사치스러운 취미생활까지 하니, 팔자가 좋아서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임 : 나는 결코 즉흥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살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건 계획에 의해서다. 일을 해서 돈을 모았고, 돈이 떨어지면 계속 다른 일을 했다. 내가 벌어서 아프리카를 갔고, 카메라도 샀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임 : 한국 대학생들은 사고가 경직된 면이 있다. 누구의 꿈인지 모르는 꿈을 좇고 있는데, 그게 정말 내 꿈인지 물어볼 틈이 없다. “대학을 나왔는데 직장을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지 않으면 부모님들은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번이라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와 대화를 해야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지 못 한다면, 부모나 타인의 바람을 충족시킨다고 한들 행복해질 수 없다.

코펜하겐_졸고 있는 소녀

청년들이 왜 이렇게 두려워할까?

임: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 하고, 남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감성을 포장해서 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정말 그런 걸 느껴서 올리는 게 아니라, 우연히 그런 사진을 찍으면 그런 감정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다. “내가 이렇게 올리면 멋있지 않을까?”라는 식의 ‘인스턴트 감성’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자신만의 삶을 당당하게 산다면 두려움이 덜할 것이다.

모로코 마라케시_아버지를 쳐다보는 소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임: 죽기 전까지 계속 사진을 찍고 싶다. 라이카(Leica)를 든 할머니가 되는 게 내 꿈이다. 그리고 내면적으로는, 단단하면서도 평온한 사람이고 싶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 나는 행복해. 모든 게 만족스러워.”라는 순간은 하루에 5분도 채 안 된다. 슬플 때나 짜증날 때도 인생의 한 부분이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매 순간 불행하고 행복해도 그에 휩쓸리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영감을 받는가?

(임) : 사람!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임수민 | 연세대학교 국제학부 졸업,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재학 중 / 제주도 <재주도 좋아>, 우사단길 <하하하 프로젝트> <동네 사람들>, 양평 <노인, 노동, 놀이>, 등 다수 전시회 |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모로코, 호주, 프랑스, 덴마크에서 살았으며, 아프리카와 유럽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오로지 필름만을 사용하며, 낯선 사람들과 행인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http://soominy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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