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치이면 결국 바깥밥에 손이 간다. 편한 것도 잠시 뿐, 몇 끼니 연달아 먹다보면 삼삼한 음식들이 당길 때가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가벼우면서, 속을 달래줄 수 있는 것들. 밥에 물을 말아 김치한 쪽 얹어 먹자니 너무 궁상맞고, 죽을 끓이자니 괜히 환자흉내를 내는 것 같다. 그럴 때면 국수 한 그릇이 제격이다. 깔끔한 멸치 육수에, 쫄깃하게 잘 삶아낸 면발을 말아서 호로록 건져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국수를 해먹는 것이 쉽지가 않다. 뚝딱 말아먹고 끝날 잔치국수 한 그릇을 위해 나는 멸치의 내장을 따고, 육수를 우리고, 야채를 볶고, 달걀을 나눠서 지단을 부치고, 면을 삶는다. 애시당초에 이럴 여유가 있었더라면 바깥밥을 사먹지 않았을 일이다.
그래도 굳이 시간을 내어 육수를 내고 국수를 삶는다. 핸드폰도 잠시 내려놓고, 음악도 틀지 않고 정성스레 도마 앞에 서서 칼질을 하고, 불 앞에서 고명을 볶는다. 모든 것을 차분히 늘어놓고 손 안에서 정리한다. 손은 분주하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진다. 이럴 때면 요리는 차라리 의식이다. 그 어떤 상황에도 여유있을 것, 그 어떤 일에도 치이지 말것, 그리고 언제라도 나의 리듬을 놓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의식. 우리는 흔히 '먹고 산다'고들 한다. 그렇게 먹는 것은 삶의 많은 부분들을 결정짓는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밥을 직접 해먹기를 바란다. 그렇게 더 다양한 이들이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차려진 찬이 많아야 밥상이 맛깔난 것처럼, 다양한 삶이 있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일 것이다.
재료
국물용 멸치 15마리
다시마 한 장
마늘 네 알
대파 한 줄기
달걀 한 알
당근 약간
소면 1 인분(100g)
레시피
1. 차가운 물 7컵에 멸치와 다시마, 대파를 넣고 강불로 끓인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15분 정도 우려낸 후 다시마를 건져낸다.
TIP 육수를 우릴 때에는 찬물에서 부터 우려야 육수가 잘 우러나온다.
TIP 다시마는 오래 삶으면 씁쓸하고 떫은 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건져주어야 한다.
2. 끓는 육수에 마늘을 다져 넣고 20분 정도 중약불로 끓인다. 국간장 한 두 큰술과 소금으로 간을 본다.
3. 육수가 끓는 동안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로 나눠 지단을 부쳐 채치고, 당근은 가늘게 채쳐서 기름에 볶는다.
TIP 당근은 영양소 흡수를 돕기 위해서 볶아 먹는 것이 좋다. 볶으면 단 맛이 강해져 먹기에도 좋다.
4. 소면을 삶아서 찬물에 헹군 뒤,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서 육수맛을 들인다.
TIP 찬물에 헹구지 않으면 면이 쉽게 퍼진다.
5. 그릇에 면과 육수를 담고 고명을 얹는다.
TIP 채썬 신김치나 김가루를 얹어도 좋다.
/사진: 이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