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둘째 주
100분. 내가 명절 때 이동하는 시간의 전부다. 친‧인척 모두 서울‧경기 권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가능한 일이다. 민족 대이동으로 시내길이 한산해져 (명절 땐)오히려 평소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 ‘귀경길’ 같은 단어가 평생 낯선 이유다. 어릴 적엔 “시골 내려간다”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목적지가 멀면 멀수록 부러움은 더 컸었다.
재작년 추석 때 부산을 방문했다. 일종의 명절 바캉스였다. 기차를 강권하는 친구에게 “막혀봤자 10시간 아니냐!”며 호탕하게 차를 몰았다. 그리고… 진짜 10시간이 걸렸다.
10시간 운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심지어 혼자 운전했다.) 서울을 벗어나는 데만 두 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그 지점에서 이미 멘탈에 금이 갔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갈까?’ ‘버스전용차선을 훔쳐 탈까?’ ‘이 도로가 유독 막히는 게 아닌 가…’ 반복되는 갈등은 심신의 피로를 가중시켰다. 오분의 일도 못가서 고속도로를 버렸고, ‘국도의 좁은 길은 더 심하다’는 걸 온 몸으로 느낀 후에야 고속도로로 되돌아왔다. 몇 번씩 되풀이 되는 음악은 진저리가 났고, 라디오 디제이들의 귀성 안부는 희롱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 첫 ‘귀성길’ 체험이고, 앞으론 영원히 없을 계획이다.
‘양방향 정체… 부산-서울 7시간40분’
현재 시각, 경부고속도로 상황이다. 이맘때쯤 각 포털 사이트에선 시시각각 귀성길 속보가 바뀐다. 앞으로 몇 시간이 정체의 절정이라든지, 얼마 후부턴 다소 해소될 전망이라는 등 분석도 활발하다. 사실 예전엔 그저 숫자와 활자의 조합에 불과했다. 내겐 의미 없는 정보였고 별 신경도 안 썼다. ‘뭘 저렇게까지 열심히 알리지…’란 생각도 했다.
그런데 재작년 추석 이후부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숫자만 봐도, 눈앞에 4열종대로 길게 늘어진 차량의 행렬이 아른거렸고, 기약 없는 정체에 대한 스트레스와 파김치가 되는 몸과 마음이 마치 ‘내 것’인양 느껴졌다. 빨리 도로상황이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어디 사고 난 곳은 없는지 한 번 더 살피게 됐다. 더 나아가 이런 수고를 감내케 만드는 가족과 명절의 의미도 새록새록 새겼다.
하나의 몸짓을 꽃으로 만들어준 건 ‘이름을 불러주는’ 경험 덕분이다. 귀성 정체 속보 역시 경험을 통해 비로소 ‘숫자+활자’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겐, ‘서울에서 부산까지 00시간’ 같았던 문구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글: 최태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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