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파라오들의 위대한 도전
사카라에 가다
피라미드, 파라오들의 위대한 도전
2016.02.11 10:14 by 곽민수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역동적이었던 이집트 문명. 하지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보수적인 면모도 있다. 3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몇 가지 문화적 요소를 살펴봤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피라미드(pyramid)라는 호칭은 '사각뿔'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스(πυραμίς)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에 사용되는 고대 이집트의 지명과 인명 등 수 많은 명칭들이 그리스어에 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대의 룩소르(Luxor)를 이집트학자들은 테베(Thebe)로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테베라는 명칭은 고대 이집트인들은 와제트(Waset) 혹은 누트(Nut)라고 부르던 도시를 그리스인들이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다양한 명칭들이 그리스식으로 불리게 된 것은 서구에서 고대 이집트에 관한 학문적 관심이 처음 생겨나던 무렵, 유럽인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가장 오래된 자료가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피라미드군 (사진: 곽민수)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샹폴리옹이 1822년에 최초로 이집트 신성문자의 해독에 성공하기 이전까지 후대인들은 고대 이집트어로 쓰여진 문헌들이 들려주는 풍부한 이야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서기 4-5세기 이후부터는 고대 이집트어가 점차 쓰이지 않게 되어 결국에는 죽은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지난 200여 년간 학자들에 의해 해독된 수많은 고대 이집트 문헌들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집트학자들은 바로 그 고대 문헌들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에 숨죽이며 귀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장 프랑수와 샹폴리옹 (Jean-Francois Champollion 1790-1832)

피라미드를 이야기할 때에 한 가지 가슴에 새겨두셔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피라미드’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그들은 피라미드를 메르(mr: 대체로 셈어계통의 고대어들은 모음을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메르, 미르, 모르, 모레, 모르, 마리, 등등 어떤 식으로 불려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이집트학자들은 자음을 사이에 주로 모음 e를 넣어 발음합니다.)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는 '올라 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곧 만나게 될 사카라(Saqqara)에 있는 조세르(Djoser)의 피라미드와 같은 계단식 피라미드는 일반 피라미드와는 달리 예르(yr)라고 불렸습니다. (조세르의 피라미드 이외에 세켐케트, 페피 등의 피라미드가 계단식입니다.) 예르는 '사다리' 혹은 '계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일반 피라미드와 계단식 피라미드를 서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또 완전히 같은 것으로는 인식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메르나 예르같은 일반명사도 있기는 했지만 피라미드들은 각각의 피라미드가 가지고 있던 개별적인 이름으로 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기자에 있는 대 피라미드는 ‘쿠푸 의 지평선’으로 불렸고, 다슈르(Dashur)에 있는 스네페루(Sneferu)의 굴절 피라미드는 ‘남쪽의 빛 나는 것’으로 불렸습니다. 이렇게 일반명사보다는 고유명사가 선호되는 경향은 고대 이집트 문화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피라미드는 '절대권력을 지닌 고대 지배자의 과대망상이 만들어낸 사각뿔 모양의 거대한 왕묘'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식의 정의는 조금은 불완전하여 많은 반론의 여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널리 이해되는 것과는 달리 절대권력을 지닌 군주는 아니었습니다. 파라오는 절대군주라기 보다는 우주의 정의 (마아트, maat)를 유지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는 일종의 공무수행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 건축물을 세우는 작업은 전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기보다는 사회전체의 목표를 염두에 둔 노력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도 빈약합니다. 이곳에 누가 묻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도 거의 없을뿐더러, 피라미드 내부에서 분명한 매장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도 극히 드문 일입니다. 또한 한 명의 파라오가 여러 개의 피라미드를 건설한 경우도 있습니다.

피라미드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이집트학자들은 피라미드를 조사하고 연구합니다. 최근에는 다국적 전문가들도 구성된 조사팀이 첨단 과학기법을 이용한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간단한 기사가 있으니 참고해주시길.)

참고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222051085&code=970100

잘 모른다는 것, 그렇기에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지점에 피라미드의 매력이 있습니다. 넘쳐나는 매력을 갖고 있는 그 피라미드를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사진: 곽민수)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게 될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40km 가량 떨어진 나일강 서안의 사카라(Saqqara)라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카라는 고왕국 시대의 유적들로 유명한 곳이지만 실제로는 고왕국 시대뿐만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가 탄생하던 초기왕조 시대부터 이집트 문명이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까지, 3000여년의 이집트 문명기 동안에 한 번도 이집트인들에게 버림받은 적이 없는 지역입니다. 그만큼 이곳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는 이집트의 어느 유적지에서보다 무겁고 엄숙합니다.

다슈르에서 바라본 사카라 (사진: 곽민수)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 전경 (사진: 곽민수)

이집트의 피라미드들은 아부-루아쉬(Abu Rowash)에서 다슈르(Dashur)에 이르는 지역에 집중적 으로 세워져 거대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의 띠’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카라도 역시도 그 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곳 사카라는 띠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지역들(우리가 이후에 찾아가게 될 기자나, 다슈르 같은 곳들)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네크로폴리스로 사용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사카라 바로 옆에 위치한 멤피스(Memphis)는 기원전 3100년 무렵, 나르메르가 상, 하 이집트를 통일 한 후, 통일 이집트의 첫 번째 수도를 건설한 장소입니다. 두 이집트의 경계인 멤피스에 수도를 건설함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시작되는데, 이 시기의 이집트인들은 최초의 수도 멤피스가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고원지대에 ‘죽음의 신神’ 소카르(Sokar)의 이름을 지명으로 붙이고 무덤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카라의 시작입니다. 그 이 후 50세기, 다시 말해 5000년이 지나 거대도시 카이로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그 거대도시의 손길은 이곳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 사카라에서 지난 50세기 동안의 역사를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 분포도. 검은색 사각형들이 모두 피라미드 (사진: Digital Egypt for Universities)

카이로에서 택시를 대절하거나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큰 어려움 없이 사카라를 찾을 수 있지만, 엄청난 시간의 무게를 간직하고 있는 이 광대한 유적지를 면밀히 둘러보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카라 여행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만만한 일정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북에서도 추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관광객이라기보다는 여행자라고 생각하는 분 들에게, 혹은 유난히 고대 이집트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사카라를 찾는 것은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경험입니다.

다만, 몇 가지 각오는 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극성스러운 호객행위에 당황하지 않을 담대함!

이집트 현지인들과 맞대고 앉아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상당한 양의 땀을 흘릴 각오!

극한의 혼란스러움을 뚫고 사카라행 버스를 찾아야 합니다. (사진: 곽민수)

카이로 시내에서 기자광장까지는 지하철을 타면 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문제는 기자 광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하철역을 나서는 순간, 여러분은 여태껏 쉽게 경험할 수 없었던 극한의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듣도 보도 못한 지명들을 외치며 외로운 여행자에게 달려드는 버스 기사들의 호객행위, 여러분은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담대해져야 합니다. '사카라!'라고 외치는 운전자의 고함소리를 따라 당당하게 마이크로 버스에 오르면 그것으로부터 사카라로 향하는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됩니다. 사카라로 향하는 도로는 마리에테야 운하를 따라서 나있습니다. 운하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쓰레기가 반 정도 차있는 지저분한 개울인 이 운하를 바라보는 건 어쩐지 서글픈 일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친절한 이집트인들과 버스 안에서 딱 붙어 앉아 미소를 나누는 것만큼은 무척이나 유쾌한 경험입니다. 마이크로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사카라 유적지 입구에 내리게 되면 2km 가량의 도보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도보여행이 두말할 나위 없이 사카라로 가는 여정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이제 조금은 땀을 흘릴 때가 되었습니다. 이집트는 겨울철에도 사막에서는 낮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마이크로 버스는 이렇게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낡았습니다. (사진: 곽민수)
삶의 공간과 죽음의 대지가 맞닿아 있는 이곳 (사진: 곽민수)

이국적인 풍경의 시골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푸른색으로 가득 차 있던 경작지가 한 순간에 황량한 사막으로 뒤바뀌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것은 삶의 공간에서 죽음의 공간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통과의례적 경험입니다. 나일강의 은총으로 인해 생명이 넘쳐나는 푸른 대지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적막한 붉은 사막, 고대로부터 이제껏 변함없이 이집트를 이루고 있는 이 두 종류의 대지를 고대 이집트인들은 각각 검은 땅과 붉은 땅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두 공간에 삶과 죽음을 대입시켰습니다. 삶의 공간에서 죽음의 공간으로 직접 걸어가는 경험, 이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곳에 도달한 부지런한 여행자들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입니다. 푸른 생명의 물결이 끝에서 황량한 죽음의 땅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사카라에 도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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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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