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것은 거주한다는 것.”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이다. 건축과 공간은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미술관(박물관)’은 조금더 특별하다. 미술이란 ‘공간’을 담아내는 건축이면서, 정작 건축이 사유되지 않는 ‘공간’이다. 미술관의 벽•문•창문 등이 ‘말을 걸어오는’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자.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그린 부드러운 곡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이야기.
알바루 시자의 건축 특징 중 하나는 '인공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위 사진에서 조명을 달아놓은 듯한 빛은 사실 '자연광'이죠. 하지만 자연광을 그대로 내부에 들이지는 않습니다. 지붕에 창을 만들어,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천장 아래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만큼 큰 공간을 만들고 그 아래에 '이중 천장'을 하나 더 다는 것이죠. 이로써 자연광은 이중 천장에 반사돼 3층 전시실 내부로 들어오고, 반사된 빛은 또 다시 전시실 내부 벽에 비춰 은은하게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자, 이전편에 등장했던 나무 모형을 다시 볼까요?
미메시스를 위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오른쪽의 사각형 건물은 열린책들 사무동입니다.) 가운데로 움푹 들어간 부분 양쪽으로 직사각형의 창문 두 개가 나있습니다. (동그라미 역시 창문입니다.) 창문 밑에 1.2m 정도의 공간을 만들고, 천장을 하나 더 다는 것이죠.
자연광을 간접조명으로 바꾸기 위해 천장도 이중으로 만드는 알바루 시자.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천창이나 인공조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 콘센트, 스위치 등 설치물을 가리기 위해 이중벽을 세웠던 것처럼 천장 역시 이중으로 만든 것이죠. 비상등, 화재경보 장치 등도 벽을 파내 안으로 숨겼다고 합니다. 알바루 시자는 혹시라도 구조물이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 입면도에 사람을 그려넣고 시선이 어느 쪽으로 닿는지 시뮬레이션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불필요한 것은 최대한 숨기려는 노력에 입이 벌어집니다.
자연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을 따라 시선을 돌리다보면 다른 차원에 들어온 기분이 듭니다. 고개를 어느쪽으로 돌리든 유려한 곡선과 직선이 만나는 풍경은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죠.
이중천장을 달면서까지 자연광을 은은하게 끌어들이려는 시자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인공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날씨가 좋지 않거나 밤에는 어떻게 전시를 하지요?"란 물음에 시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안 보여주면 됩니다!" 그만큼 자연 그대로의 빛 아래에서 작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길 바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시자의 의도대로,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 미술관 분위기도 달라지는 마법이 펼쳐지죠. 필자가 방문했던 날은 미세먼지가 가득했지만, 신기하게도 미메시스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하늘이 얼굴이 비췄죠. 늦은 오후에 접어들면서 전시실 내부에도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던 그때의 기억은 꿈처럼 계속 남아있습니다.
포르투갈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성당 역시 알바루 시자의 건축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건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곳은 긴 수평창인데요. 창문 하나로 성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하네요.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고개를 올려다보면 동그란 천창이 보이는데요. (미메시스 나무 모형에서 보였던 그 동그라미 창문입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을 뚫은 듯한 동그란 창문은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올려다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천장에 난 창문을 보며 '빛과 공간의 마술사'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을 떠올리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은 뮤지엄산(Museum SAN)의 제임스 터렐관을 통해 그의 작품을 언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빛을 도구가 아닌 '빛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터렐의 작품을 '체험'한 이들은 그가 만들어낸 빛과 공간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든다는 소감을 밝히는데요. 그의 대표작인 스카이 스페이스(Sky Space)는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천장에 뚫린 동그란 창문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더욱 침잠해 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지요.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는 미메시스를 세우기 전,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地中) 미술관' 내 <빛의 집(House of Light)>을 방문합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제임스 터렐의 작품으로 구성한 <빛의 집>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네요. 미메시스에 터렐의 작품이 설치되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을 조금 더 감상해보실까요.
이제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문밖에 나서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지요. 최소한의 것만 남긴 알바루 시자의 건축 철학. 우리의 삶도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빼고 가벼워져야 않을까 합니다. 윤민지의 첫 미술관 산책,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