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죽음을 묻는다, <위플래쉬>
너의 죽음을 묻는다, <위플래쉬>
너의 죽음을 묻는다, <위플래쉬>
2016.02.29 16:59 by 돔돔

세상이라는 복잡한 퍼즐을 영화로 푼다. 비약과 억측이 난무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영화 독법. 지금 여기 한 편에 영화가 도마 위에 오른다.

‘나를 따르라!’면 마냥 따라야 하는 걸까? 영화 <혹성탈출>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시저를 통해 본 온정적 간섭주의의 한계.

“90세까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사는 것보단 34살까지 살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이 훨씬 낫죠.”

(주인공 앤드류가 음악가의 길을 걷는 자신을 정당화하며)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야.”

(플래쳐 교수가 주인공 앤드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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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극복과 가학 사이, <위플래쉬>의 키워드 ‘죽음’

지난해 미국의 저예산 음악영화 한 편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대히트를 친 건 여기 한국에서다. 아카데미 3관왕에 빛나는 영화 <위플래쉬> 얘기다.

제자들을 혹독하게 다룸으로써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위대함을 달성케 하는 플래쳐 교수의 모습에 많은 한국인들이 환호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하면 된다, 떨쳐 일어나자’와 같은 어구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위플래쉬>는 경제성장기 성공스토리에 대한 노스텔지어이자, 스스로를 잉여라며 자조하는 청년들에 대한 꾸중으로 읽혔다.

위플래쉬는 한국인 입맛에 맞는 성공스토리를 보여준다.(사진:Dirima/shutterstock.com)

하지만 이런 주류적 시각에 대한 반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예술 영역이 천재성과 자기극복을 요한다고 해도, 제자를 심리적 극한의 상황에까지 몰고 가는 플래쳐 교수가 다소 가학적으로 비쳐진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 대부분은 그의 앞에서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욕받이에 불과했다. ‘찰리 파커’(영화에서 재즈의 전설 ‘버드’로 표현되는 음악가)와 같은 영웅이 되는 데 혈안이 된 제자 앤드류를 제외하곤 말이다.

오직 천재 육성과 영향력에만 집착하는 플레쳐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 병폐로 지적되는 성과만능주의라 할 수 있다.

플레쳐는 피투성이 손으로 드럼을 쳐대는 앤드류를 한계까지 몰아 붙인다.

이렇게 (플래쳐 교수라는) 인간상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위플래쉬>, 필자는 조금 더 나아가 이 영화에서 죽음에 대한 고민을 보았다. 음악가로서의 길을 걷는 자신을 평가 절하하는 친척들에게 앤드류는 “의미 없이 살기보단 요절하더라도 전설이 되겠다”고 외친다. 제자들을 자극하다 교수직을 상실한 플래쳐는 자신을 사회적으로 ‘죽인’ 앤드류에게 사회적 복수(이자 기회)를 시도한다. 이런 가운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앤드류 이전의) 수제자의 죽음은 의미를 잃는다. 이제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세 가지 죽음을 하나씩 헤집어 보도록 하겠다.

위플래쉬는 여러 가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사진:tuulijumala/shutterstock.com)


죽음에 대한 고민, 삶을 성숙시키는 매개

이야기에 앞서 죽음에 대한 고민이 가지는 의미를 살피겠다. 2000년대 후반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2010년대 초에는 예일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가 출판계를 강타했다. 논리와 분석으로 점철된 그의 주장은 간명했다.

간의 죽음은 기계가 고장 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때문에 죽음은 인생에 대해 보다 행복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다.

보다 일찍이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절망이다. 이 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주체적으로 삶과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고민과 그 유용성은 비단 이런 철학자들만 인정한 것이 아니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금융인 조지 소로스 역시 ‘오류의 시대’라는 책에서 죽음에 대한 고민이 가져다 준 인식지평의 확장을 얘기한다.

세상에 대한 시각과 세상 그 자체 사이에 근본적인 불일치가 있다는 깨달음은 죽음의 문제를 새롭게 보게 한다. 죽음에 대한 관념은 죽음의 실제와 다르다. 죽음의 관념은 의식의 부정이고 죽음의 현실은 삶의 부정이 아니라 삶의 자연적인 결론이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의미부여와 판단은 역설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한층 성숙시킨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생각이 깊어지고, 일찍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이들이 조숙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죽음과, 이에 따라 제기되는 고민도 필자에겐 삶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와 같은 이치다. 감독이 의도했든 그런지 않았든 <위플래쉬>에서 나타나는 죽음들은 하나하나가 상징이 된다.

죽음에 대한 고민을 담은 셸리 케이건과 조지 소로스의 저서


첫 번째 죽음, 죽더라도 화려하게

영화에서 주인공 앤드류는 끊임없이 위대한 음악가라는 목표에 집착한다. 자신이 재즈밴드 드럼파트에서 밀려나자 연습시간 확보를 위해 좋아했던 여자도 차버리고, 그렇게 무섭던 플래쳐 교수에게도 당당하게 자기 몫(연주 참여)을 요구한다. 그는 죽음조차도 이런 목표에 대한 강한 열망을 반영해 해석한다. 잘나가는 사촌과 자신을 비교하는 가족‧친지 앞에서 그는 강한 어투로 말한다. 자신은 90살까지 조용하게 살기보단 34살에 죽더라도 오래 기억되겠다고. “화려하게 죽겠다”는 그의 외침은 젊은이의 패기로도, 미성숙한 존재의 치기로도 읽힌다. 어찌됐든 이런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낭만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런 낭만적 태도는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존재해왔다. 로마의 공화주의자 호라티우스는 “젊은이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당연하고 아름답다”고 선언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의 젊은이들은 ‘벚꽃의 낙화’라는 미의식으로 가미카제가 되기도 했다.(오오누키 에미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호라티우스는 조국 위한 죽음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제시한 사례와 앤드류는 조금 다르긴 하다. 다소 개인적 바람에 따라 화려한 죽음을 추구한 것. 하지만 그의 태도가 찰리 파커에 대한 동경이나 플래쳐의 확신으로 공고화해진 걸 감안하면 로마나 일제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앤드류 역시 계속된 연습으로 피 흘리는 손을 얼음물에 넣으며 낭만을 생각했으리라. 영화에선 이런 그의 태도가 위대한 즉흥연주라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그게 과연 추구할만한 태도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죽음, 참을 수 없는 ‘팽형(烹刑)’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조선시대 형벌로 ‘팽형’을 소개한다. 원래 팽형은 죄인을 끓는 물이 가득한 가마솥에 넣어 죽이는 잔인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 팽형은 미지근한 가마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이 벌의 무서움은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죄인은 이제 사회적으로 산 사람이 아닌 것. 가족들은 장례식을 열고 이웃들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는다. 두문불출하며 지내는 죄인이 선택하는 길은 결국, 자살이다. 언론/SNS에서 치부가 드러나는 사람들이 결국 사회적 죽음을 맞는 걸 보면, 이 팽형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소속된 대학에서 최고 수제자를 양성했다는 명예를 가진 플래쳐 교수는 제자 앤드류에게 그야말로 팽형을 당했다 할 수 있다. 자신이 지휘하는 공연에서 분노한 앤드류에게 한 방 맞은데 이어 그의 가혹한 훈육 방법이 만천하에 드러나 교수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믿는 상황에서 이런 사회적 죽음을 인정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클럽 등에서 공연을 계속 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죽음은 아니다.) 그러기에 그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으려 한다. 연주 기회를 주는 척 앤드류를 다시 연주회로 끌어들이고, 그 자리에서 큰 망신을 줘서 다시는 재즈 분야에 발도 못 붙이게 하려 했던 것. 자신이 당한 사회적 죽음. 그리고 복수. 그 모습은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태도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사회적 도태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이라고 말한다.(사진:igor.stevanovic/shutterstock.com)

세 번째 죽음, 전설에 가려진 잊혀진 죽음

앞의 두 죽음과 달리 마지막 죽음은 실제 죽음이다. 퓰리쳐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앤드류 이전의 제자는 졸업 후 좋은 기회를 얻어 음악인으로 대성했으나 압박감을 못 이겨 자살하고 만다. 하지만 이 죽음에 대해서 퓰리쳐 교수와 앤드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퓰리쳐는 학생들에게 그 학생은 자살이 아닌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말하며 애도한다. 너무나도 뻔뻔하게 애도의 시간을 짧게 가지곤 다시 기존 방식으로 학생들을 다그친다. 그의 거짓을 다른 이에게 들은 앤드류는 충격을 받는 듯 했지만, 우연히 만난 퓰리쳐 교수의 연주 참여 제안을 선뜻 승낙하며 손 쉽게 떨쳐낸다. 누군가에겐 자랑이었고 누군가에겐 우상이었던 그 졸업생의 자살은 이렇게 잊혀져버린다. 앞서 설명한 방식으로 죽음을 대하는 인물들이니 당연할 걸까?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한 비중은 아니었지만, 끝내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때 자랑이자 우상이었던 선배의 자살은 너무 쉽게 잊혀졌다.

당신에게 죽음이란?

이상 위플래쉬에 드러나는 죽음 세 가지를 살펴봤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나 영화의 주제가 앞서 언급한 철학자들처럼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도 주체적인 고민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주인공이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마주하는 자세로 미루어 보건데 그들의 죽음 ‘관(觀)’은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당신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현대인에게 너무나도 멀고 두려운 것이 죽음이라지만 이 영화의 긴박감과 재즈의 황홀함을 잠시 잊고, 고민해볼 여지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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