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슈르, 그 완성의 과정
다슈르, 그 완성의 과정
2016.03.03 09:28 by 곽민수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고대인들의 메시지를 간직한 우나스 피라미드와 고금을 막론하고 큰 영감을 선사하는 이집트 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이야기.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사카라에 이르는 길은 분명히 무척 고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슈르(Dashur)로 가는 길은 그보다도 더 힘든 여정입니다. 전 세계 배낭 여행자들이 애용하는 여행 안내서 론니 플래닛(Lonely Planet) 이집트편에서조차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슈르로 향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할 만큼 그 여정은 분명히 만만치가 않습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 (사진: 곽민수)

 

| 다슈르로 떠나요

그렇지만 다슈르에 가는 걸 쉽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험난한 여정은 여행자가 이집트에서 경험할 수 있는 큰 행운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다슈르는 오래도록 군사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여행자뿐만이 아니라 연구자들도 특별허가 없이는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허가 없이 마음껏 다슈르를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20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

사카라의 계단식피라미드 묘역 외벽 위에서 바라본 다슈르의 전경, 오른쪽이 붉은 피라미드, 그리고 왼쪽이 굴절 피라미드입니다. (사진: 곽민수)
다슈르의 전경, 다슈르에서 이 두 피라미드를 한 앵글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진: 곽민수)

다슈르는 몇 가지 점에서 이집트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불릴 만 합니다. 우선, 여러분은 이곳 다슈르에서 역사상 세워진 모든 피라미드들 가운데 가장 독특한 모양의 피라미드를 만나게 됩니다. 그 이름은 '굴절 피라미드(Bent Pyramid)'. 피라미드의 경사면이 중간에서 꺾인 피라미드를 상상해 보신적 있으신지요? 수십 개의 피라미드가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는 피라미드의 왕국 이집트에서도 유일무이한 '경사면이 꺾인' 피라미드가 바로 이곳 다슈르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이 다슈르를 찾는 바로 그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슈르를 찾은 유일한 여행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슈르를 찾는 여행자들은 그 숫자가 무척이나 적을뿐더러, 그나마도 대부분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택시를 대절하여 다슈르를 방문합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이 필요한 분들이라면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슈르에 가셔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 다슈르는 기자나 사카라와 같이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아주 여유롭게 피라미드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슈르에서는 발이 푹푹 빠지는 천연의 사막 위를 걸어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가 사막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이집트에서도 자연 그대로의 사막을 걷는 것은 사막투어에 참가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막에 있는 유적지들도 대부분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포장된 도보가 여행자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다슈르의 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다슈르에는 아직 관광지로 가꾸어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유적지가 남겨져 있습니다. 그 천연의 유적지 바로 옆에는 천연의 사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집트 전역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던 2011년 이전에도 이곳 다슈르에서 만큼은 한국인 여행자들을 거의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 대부분은 서양인들이었으며, 동양인들 가운데는 일본인들이 눈에 띌 뿐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 이곳을 일본인 여행자들이 찾는 것을 보면 어쩌면 고대 이집트에 대한 양국 사람들의 관심의 정도에는 꽤 큰 차이가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집트학의 저변이 상당히 넓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집트학과 관련된 훌륭한 책들이 저서가 일본어로 번역되거나 일본어로 쓰여지며, 20명 가까운 일본인 이집트학자가 세계 이집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또한 도쿄의 와세다 대학교에는 이집트학 연구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자국인들로만 발굴팀을 구성하여 이집트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발굴 조사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제 2의 태양의 배 조사 같은 역사적인 조사도 있었으며, 최근에는 룩소르의 투탕카멘 무덤과 우리가 찾을 다슈르를 비롯한 여러 피라미드 유적지에서 첨단 과학조사기법을 사용한 연구에 다수의 일본인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로만 구성된 와세다 대학 조사팀의 10차 다슈르 북부 조사보고 논문의 표지

일본인들이 전문적으로 이집트학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대중적으로도 이집트학이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끄는 것은 모두 한국에도 두어권의 번역서로 소개된, 제가 롤 모델로 삼고 있기도 한 일본 이집트학의 선구자, 요시무라 사쿠지 교수의 노력으로 인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이집트학의 불모지인 한국에 이집트학의 싹을 틔우기 위한 제 첫 번째 발걸음이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바로 이 글입니다.

스네페루(Sneferu)와 그의 피라미드들

다슈르에서는 비교적 온전한 3기의 피라미드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2기가 이번 여정의 주요한 목표입니다. 이 2 기의 피라미드는 모두 스네페루(Sneferu, 재위 기원전 2613-2589년 경)라는 파라오가 세운 것인데, 스네페루는 우리가 다음 목적지 기자(Giza)에서 만나게 될 대 피라미드(Great Pyramid)의 주인공 파라오 쿠프(Khufu)의 아버지입니다. 이 스네페루라는 인물은 약 24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리비아와 누비아에 원정대를 파견하고, 해외무역을 통하여 레바논의 삼나무와 시나이 반도의 터키석, 그리고 현재의 예멘이나 소말리아 어딘가로 여겨지는 푼트(Punt)라는 곳에서 향료 등을 수입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밖에도 스네페루는 나일강 하류에서 시나이 반도를 거쳐 서아시아로 향하는 곳곳에 성채와 급수지를 건설하여 교역 및 원정 경로를 확고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치적들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역시나 한 기도 짓기 어려운 거대규모의 피라미드를 무려 세 기나 건설한 것입니다. 스네페루가 건설한 모든 피라미드들의 용적을 다 합하면 이집트에서 가장 큰 쿠프 왕의 대 피라미드의 용적보다도 더 클 정도로 스네페루의 피라미드 건설은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였습니다.

피라미드들 간의 용적 비교 (도면: 곽민수)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과연 피라미드는 정말 왕의 무덤인 것일까요?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라면 한 왕이 굳이 여러 개의 피라미드를 지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스네페루의 경우에는 말씀 드린 것처럼 세 기나 되는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왜 한 명의 파라오가 여러 기의 피라미드를 지어야 했을까요? 여전히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답변을 드리기가 무척이나 어렵지만, 일단 이 질문에도 정설은 있습니다. 물론 정설이라고 하여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 학자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논리정연하고 비교적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모두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럴싸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곧이곧대로 듣지 마시고 한번쯤은 비판정신을 발휘해서 의의를 제기해보시는 것을 권유합니다.

아무튼 그 정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스네페루가 세운 여러 기의 피라미드들 가운데에 가장 먼저 세워진 것은 다슈르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메이둠(Meidum)에 있는 '무너진 피라미드'입니다. 이 무너진 피라미드는 제 3왕조 최후의 왕 후니(Huni)가 짓기 시작했던 것을 스네페루가 이어받아 지은 것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스네페루가 지은 것으로 전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피라미드가 무너진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까닭은 이름 그대로, 피라미드의 외벽이 무너져 내린 채 중앙부만이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메이둠의 무너진 피라미드 (사진 : 곽민수)

이 피라미드는 외벽의 경사각이 너무 급했기 때문에 무너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붕괴는 많은 사상자를 냈을 것이 분명하지만 피라미드 설계자들과 건축가들에게는 꽤나 좋은 수업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메이둠 피라미드의 붕괴를 교훈 삼아, 다슈르에서 애초에는 54도의 경사각으로 외벽을 짓기 시작하여 절반쯤 지어진 피라미드의 상단부 경사각을 43도로 낮추게 됩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굴절 피라미드라고 부르는 특이한 모양의 피라미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굴절 피라미드가 완성된 이후에 건설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붉은 피라미드는 처음부터 43도의 경사각으로 지어졌습니다.

스네페루가 다수의 피라미드를 건축한 것은 “온전한 피라미드를 세우기 위한 피라미드 건설 교실”의 결과라는 주장이 바로 정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굴절 피라미드가 단순히 붕괴를 모면하기 위하여 경사각의 각도를 바꾼 결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굴절 피라미드의 내부구조를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입니다.

굴절 피라미드 (사진: 곽민수)

굴절 피라미드는 외부의 경사각만이 굴절되어 있지 않습니다. 경사각 이외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피라미드 입구와 피라미드 내부의 방이2개씩, 2중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입구 가운데 하나는 피라미드의 북쪽 면에 위치하고 있고 지하의 방으로 이어지며, 또 다른 입구는 서쪽에서 기단부의 방으로 향하는 입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구에서 들어가게 되는 이 두 개의 방은 내부에서 통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이중구조는 경사도로 구분되는 피라미드 외부의 이중구조와 연관되어 무엇인가를 나타내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북쪽 면 입구의 통로는 북극성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별 신앙과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서쪽 면에도 입구가 있는데 이 서쪽의 입구에는 그 설명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서쪽 면의 입구는 아마도 그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태양신앙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 구조를 지닌 굴절 피라미드는 두 가지 신앙의 형태가 결합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피라미드의 하부와 상부를 각각 서로 다른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발주하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피라미드 경사면이 꺾인 이유를 단순히 건축 기술면에서만 설명하는 것은 조금은 부족합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굴절 피라미드의 내부 (도면: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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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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