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한 티타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한 티타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한 티타임
2016.04.05 15:30 by 송나현

 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메밀 홍보의 일등공신이 된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매력덩어리 '메밀전병' 이야기

어릴 적 일요일 아침은 늦잠 불가였다. TV에서 방영되던 디즈니 만화동산을 봐야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만화와는 다른 매력의 디즈니 주인공들은 나를 사로잡았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한 만화는 앨리스였다. 금발머리에 파란 원피스를 입고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소녀. 앨리스가 버섯을 먹고 커지는 모습이나 그리핀이나 가짜거북과 이야기 하는 장면 등은 아직까지 눈 감고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훤하다. 그러나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장면은 화려한 옷을 입은 모자장수와 집쥐, 3월(march)의 토끼(march)와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이었다.

(사진: indira's work/shutterstock.com)

어린 나에게 차란 다소 뻔한 것이었다. 기껏해야 녹차나 우롱차, 둥글레차가 전부였다. 그것도 엄마가 끓여주는 물에 들어가 있는 티백 뿐이었다.

앨리스가 먹던 홍차를 처음 접한건, 호주로 향하는 기내 안에서였다. 당시 승무원은 홍차와 함께 조그만 캡슐에 담긴 우유를 주었다. 난 그 우유의 용도를 몰라, 캡슐 포장을 뜯어 그냥 마셔 버렸다. 농축된 우유는 지방 함유량이 높았고, 난 속으로 '호주 사람들은 이렇게 느끼한 우유를 먹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운 에피소드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호주 여자아이는 '저 동양인이 우유를 왜 그냥 마시나'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 작은 캡슐에 담긴 우유는 밀크티를 타먹으라며 준 것이었다. 호주에 도착해 밀크티라는 것을 처음 알고는 얼마나 놀랐던지.

앨리스가 먹었던 티는 그냥 홍차가 아니라, 밀크티였을 것이다. 7살 6개월 여자아이가 그 쓰디쓴 홍차를 그냥 마시긴 어려웠을테니 말이다. 

차를 내려주신 신에게 감사드린다. 차가 없는 세상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차가 발견되기 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기뻐한다.-시드니 스미스(사진: somchaij/shutterstock.com)

차를 사랑한 영국인들

차는 일찍이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한자 문화권인 한국과 일본, 베트남에도 전파되어 품격 있는 음료수로 인정받았다. 현재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차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문헌으로는 8세기 당나라 시인 육우( 陸羽)가 쓴 <다경(茶經)>에 처음으로 차의 기원이 언급돼 있다. 

서양인으로서 차를 처음 맛 본 사람은 포루투갈인이었다. 1556년 명나라를 방문한 포르투갈 수도사 가스파르 다 크루즈는 중국에 관한 연구를 집필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홍자를 소개했다. 유럽에는 동양과의 무역을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들 중 하나인 네덜란드에 의해 전래됐다. 차는 특히 영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보급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국에는 어떻게 처음 들어왔을까?

네덜란드 상인이나 비단과 향신료를 싣고 영국에 온 선원이 최초의 중개자일거란 추측이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영국에서는 1657년 런던의 커피하우스 '개러웨이스'에서 처음으로 차를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662년 포르투갈의 공주 캐서린이 영국의 찰스 2세에게 시집을 오며 혼수품으로 차와 설탕을 가지고 왔는데, 그녀가 적적한 궁정 생활을 달래기 위해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이내 유행하게 됐다는 설도 있다. 분명한 건 이때까진 차가 상류층의 기호 식품이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 하류층들에겐 일이 끝난 후 질펀히 마신 맥주를 가셔줄 음료가 필요했다. 홍차는 매우 훌륭한 대안이었다. 가정에도 맞벌이로 인해 저녁 준비 할 시간이 부족한 주부들로 인해 차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빵과 고기 한 조각, 홍차로 이루어진 식탁이 그 시절 하류층의 보통 저녁식사였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 하류층들에게 홍차는 매우 기능적인 음료였다.(사진: Nik Merkulov/shutterstock.com)

이 후 홍차는 영국인들의 삶이 되었다. 19세기, 토머스 쿡이 고안한 싼 기차값으로 단체 여행이 유행하게 됐는데, 그 때 절대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 바로 티(tea)였다. 영국인들은 여행할 때 자신이 즐기는 차와 차 도구를 모두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영국에서 다채로운 문화가 발전한 데에 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계화와 산업화를 주도했지만 그 뿌리와 토양은 보드라운 문화와 예술로 채워져 있는 나라다.

영국에는 3만 개에 이르는 스토리텔링 클럽이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 홍차 산업이 발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영국인들에게는 쓴 커피보다 몇 잔이고 마셔도 과함이 없는 홍차가 제격이다.

그래서일까? 새뮤얼 존슨, 조지 오웰, 헬렌 켈러, 제인 오스틴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들 역시 모두 홍차 광이었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사업가 헬렌켈러 여사는 홍차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다.(사진: RadlovskYaroslav/shutterstock.com)

홍차와 함께 즐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진면모

앨리스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이 책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차를 마시는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모자 장수와, 3월의 토끼, 산쥐가 티타임을 가지는 테이블에 앨리스가 착석하는 장면이다.

옥스퍼드 수학교수이자, 수수께끼와 말장난을 좋아하는 원작자 루이스 캐럴의 진면모는 이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앨리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난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걸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적어도…… 적어도 나는 내가 말하는 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깐 결국 똑같은 거에요. 그렇죠?”
모자장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도 똑같지 않아! 네 말은 ‘내가 먹는 것이 보인다’와 ‘내가 보는 것을 먹는다’가 똑같은 말인걸!”
3월의 토끼도 거들었다.
“네 말은 ‘내가 가진 것이 좋다’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졌다’가 똑같은 말인걸!”

이런 말장난이 나오는 장면은 수도 없이 많다. 가짜 거북과, 그리핀, 앨리스가 담화를 나누는 장면에도 등장한다.

“정규과정이 뭔데?”
앨리스가 물었다.
“당연히 비틀기(reeling–reading)와 몸부림치기(writhing–writing)부터 배웠지. 그런 다음 산수를 배웠어. 야망(ambition–addition), 혼빼놓기(distraction–subtraction), 추화(uglification–multiplication), 그리고 조롱(derision-division)을 말이야."

이런 농담들을 21세기 아이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루이스 캐럴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언어학자, 앨리스의 표상을 찾아 헤매는 심리학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인 앨리스 리들. 그녀를 위한 책이기 때문에 우리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지다.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에 획기적인 선을 그었다.(책의 저자가 앨리스의 실제 모델에게 청혼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끔찍한 일화와 경건한 도덕으로 가득 찬 그 시대 동화가 아닌, 풍자가 가득하고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지혜가 가득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앨리스도 그 전의 동화의 주인공과 매우 다르다.

그녀는 영특하고 예의범절을 준수하지만, 지적 자만심과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괴상하다 싶을 정도의 외모를 가진 등장인물들 (어린이를 무시하고 교육의 대상으로 보던 그 시대 어른들을 풍자)의 명령이나 지시를 받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항상 뽐내고 싶어한다.

어쩌면 이런 앨리스의 모습이야 말로 이 책을 진정한 ‘어린이 문학’의 반열에 올려주는 것 아닐까. 아직 사회 정체성이 뚜렷이 생기지 않고, 자만심과 겸손함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채 순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다니는 어린아이.

unsplash -차

하지만 톰소여의 모험이나 어린왕자, 걸리버 여행기 같이 이 책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동화이다. 밀크티가 아닌 씁쓸한 맛의 홍차를 즐길 줄 아는 어른이 티타임에 꺼내어 보는 그런 책 말이다.

 

                     김영자.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 한길사 (2014)

                     이윤섭. 「커피, 설탕, 차의 세계사」. 필맥 (2013)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최인자(역). 북폴리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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