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요거트 활용법
인도의 요거트 활용법
2016.03.30 11:00 by 이민희

음식 좀 하는 외국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들과 각국의 거창한 음식 얘기는 좀처럼 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칼을 손에 쥐는 방법, 몽골 사람들이 양배추를 다듬어 쓰는 요령에 더 눈길이 갑니다. 그런 차이를 발견할 때면 늘 이유를 묻고 답을 얻어내려 하는데요, 음식에 대한 가벼운 질문이 때때로 문화와 역사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별별음식’은 그렇게 사소하지만 달라서 재미있는 세계의 음식 문화를 다루고자 합니다.

할랄을 먹을 기회가 많다. 함께 일하는 파키스탄 호스트 사미나 지브란 씨가 무슬림이라서 그렇다. 그간 경험한 할랄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지난 해 가을 회사에 새로운 호스트가 찾아왔다. 이름은 카잘 샤르마, 인도 북부 펀자브 루디아나 출신으로, 한국에 오기 전까진 대학 교단에 섰고 얼마 전까지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을 운영했다. 몸이 고단해 하던 일을 접었지만 계속 즐겁게 음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회사 식구들과 함께 그녀가 만드는 대여섯 종의 커리를 경험하게 됐는데, 그녀의 커리는 시중의 인도 음식점에서 파는 것과 많이 달랐다. 훨씬 화끈하고 진한 맛이 났다. "맛의 비결은 한국에서 파는 베트남산 고춧가루"라는 말로 우리를 웃겼는데, 신기하게도 어디에도 한국과 베트남의 맛은 없었다.

그녀가 선보인 음식 가운데 치킨 커리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치킨 커리는 그녀의 집에서도 인기가 좋다. 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고, 그의 남편이 즐기는 안주 메뉴다. 일단 색깔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붉은 빛이 도는데, 탄두리 치킨에 쓰이는 토마토 파우더를 한두 꼬집 정도만 뿌리면 그런 색이 나온다. 그리고 닭가슴살이 쓰인다. 엄청 촉촉하고 부드럽다. 나중에 만드는 걸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요거트에 장시간 재워뒀기 때문에 그런 감촉이 나온다. 똑같은 방식으로 요거트를 쓰는 사람을 딱 한 명 알고 있다. 파키스탄 호스트 사미나 지브란도 그렇게 조리한다.

카잘은 이렇게 닭가슴살에 요거트를 붓고 향신료를 섞어 재워놓는다. (사진: 원파인디너)
그리고 토마토 파우더를 써서 붉은 빛의 커리를 만든다. (사진: 원파인디너)
다 그녀가 만들었다. 치킨 커리 말고도 그녀가 만들 수 있는 커리는 수없이 많다. (사진: 원파인디너)

요거트는 훌륭한 식재료다

나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요거트를 먹어왔지만 샐러드 드레싱 정도를 제외하면 요거트 활용법이라는 게 딱히 없다. 요거트는 그저 건강한 간식이거나 간단한 아침 식사에 머무를 뿐이고, 플레인 요거트와 달콤한 요거트, 집에서 만든 것과 마트에서 파는 것 정도로만 구분될 뿐이다. 인도 호스트 카잘이 그런 단조로운 요거트를 마리네이드 재료로 활용하는 걸 보자 궁금한 게 많아졌다. 우유에 고기를 재두는 건 봤지만 요거트를 쓰는 건 낯설었던 까닭에, 일단 유럽에서 음식을 공부한 친구에게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잡은 방식인가를 물어봤다. 아니라고 한다. 거긴 후추와 소금, 올리브유로 한다. 흔치 않은 방법이라는 것이 검증되자 요거트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안고 카잘을 찾아가기로 했다.

요거트는 인도에서 ‘다히’라 불린다. 다히로 시작되는 음식 이름이 꽤 될 만큼 활용의 폭이 넓은데,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인도 사람들의 식습관이 지속되는 한 꼭 필요한 존재로 느껴진다. 차갑고 상큼한 다히는 자극적인 음식과 함께 식탁에 동반으로 놓여 효과적으로 진정작용을 하는데, 일단 요거트로 대중적인 음료 라씨를 만든다. 오이나 고수 같은 푸른 야채와 마늘을 섞어 만드는 싱그러운 소스 ‘라이타(raita)’에도 요거트가 주재료로 들어간다. 크림처럼 가볍게 커리에 얹어 먹는 방법도 있고, 나아가 렌틸을 갈아 만든 콩가루, 강황, 그리고 요거트를 섞어 되직한 커리를 만들기도 한다. 난이나 로띠에 요거트를 찍어먹을 때도 있다. 카잘의 딸 야시카는 입맛이 없을 때면 요거트에 밥을 비벼 먹는다며 내게 권했다. 인도에서 그렇게 다채롭게 쓰이는 것이 요거트이니 고기요리에 붙어도 이상할 일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인도 사람들은 요거트로 버터도 만든다. 블렌더를 써서 요거트를 고속으로 오래 휘저으면 원심분리에 의해 나중에 라씨로 먹게 될 하얀 부분이 생기고, 노릇하고 투명한 액체 상태로 변한 지방층도 같이 생긴다. 그게 버터다. 그렇게 액화 상태로 정제된 버터는 ‘기(ghee)’라 불리는데, 식용유보다 훨씬 비싸지만 비싼 만큼 풍미를 보장하기에 커리부터 로띠까지 인도의 수많은 음식에 고루 쓰인다. 기는 우유의 함량을 높이거나 다른 첨가물을 더한 공산품 형태로 많이 나와 있지만, 카잘의 설명에 따르면 여전히 시골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요거트에서 기를 추출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변질되면 치즈를 만든다.

가운데 있는 것이 공산품으로 나온 기 버터다. 그림이 말해주는 것처럼 액체 상태다. (사진: 원파인디너)

요거트를 얻으려면

한국 생활에 적응한지 오래라 이제는 실수가 없지만, 카잘은 처음 한국에 와서 몇 시간을 기다려도 우유가 굳지 않아 잠깐 당황했다 말한다. 기후가 다르니 조리 시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인도 사람들 대부분이 집에서 요거트를 만든다. 날이 대체로 더우니 굳이 열이 필요한 조건을 만들지 않아도 우유에 약간의 요거트를 더해 상온에 몇 시간 두면 자연스럽게 굳어진다. 다들 그렇게 먹는 일에 길들여져 있어 갑작스럽게 손님이 집에 찾아와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만 수퍼마켓에 가서 요거트를 산다는 것이 카잘의 설명이다.

며칠 전 카잘의 집에 찾아간 날, 그녀는 식사를 다 마친 뒤 꿀과 함께 요거트를 내왔다. 초코우유와 콜라를 더 좋아하는 그녀의 두 아이는 요거트에 눈길도 안 준다. 아이들의 식성을 물었을 때 카잘이 돌려준 대답이 생각났다. “둘 다 커리 잘 안 먹어요. 만들어놔도 치킨만 골라 먹어요.” 올해 중3이 된 그녀의 딸 야시카가 보여준 꼬마 시절의 사진도 생각났다. “예전엔 날씬했죠? 인도에 살았을 땐 채식만 했으니까요. 여기 와서 삼겹살이랑 치킨 먹다가 이렇게 됐어요.” 그런 야시카에게 홍대 한 번 놀러가자 제안하면서 먹고 싶은 것을 물었더니 전형적인 중학생의 답이 돌아왔다. 뷔페다.

하긴 내가 야시카 나이라면 요거트 같은 것에 과연 마음이 기울까. 도시생활하는 여느 성인과 마찬가지로 외식이 잦으니 건강하고 믿음직한 먹거리로 관심사가 이동하고 있고, 세계 음식을 소개하는 회사 업무가 시작된 뒤로는 요리는 물론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까지 덩달아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더 많이 먹고 접하며 조사할수록 거창한 음식보다 사소한 대상에 이끌린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색 음식을 만드는 동료들에게 묻고 싶은 것들도 점점 좁혀지고 있다. 그래서 요거트에 대한 질문을 한 아름 안고 카잘을 찾아갔다. 그리고 요거트 이상의 답을 얻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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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다리로 알게 된 것들

요거트를 만들려면 우유가 필요한데, 우유 공급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도에서 신성시되는 황소(혹은 젖소)고, 다른 하나는 머슴 혹은 노예의 운명으로 태어나 농사를 비롯한 노동에 동원되는 물소다. 황소를 제외한 모든 소들이란 다 그렇게 비참하고 우습게 살아가는지, 언젠가 읽었던 어느 인도 소설에서 노래 못하는 아이를 두고 들소처럼 노래한다고 빈정거리던 대목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이 날씬하지 않은 몸을 두고 돼지 같다고 무례하게 말할 때, 인도에서는 결혼 뒤 체형이 변한 여성을 ‘마자’라고 놀린다. 마자는 힌디어로 버팔로를 뜻한다. 소고기를 불경하게 여기는 전반적인 문화와 달리 인도에는 버팔로 도축을 허용하는 지역이 많다.

한편 인도의 일과는 ‘두드왈라’와 함께 시작된다. 힌디어로 ‘두드’는 우유고, ‘왈라’는 일하는 사람이다. 즉 우유배달원이다. 그들은 이른 아침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가정집에 우유를 파는데, 집에서 용기를 가지고 나오면 원하는 만큼 덜어준다. 그렇게 아침부터 찾아온 우유는 곧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요거트로 변할 것이고,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버터나 치즈가 될지도 모른다. 물을 섞어 파는 몹쓸 두드왈라를 만나지만 않는다면 아침의 우유는 다양한 형태로 모양과 맛을 바꿔 인도인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고, 성장하는 아이에게 칼슘을 공급할 것이다.

여태까지 적은 내용은 스무 가지 이상의 커리를 만들 줄 아는 요리 고수 카잘을 붙잡고 네 시간동안 고작 요거트 타령만 한 뒤에 얻게 된 지식이다. 설명 중간중간에 그와 관련한 사진과 동영상이 이어졌고 문서가 나왔다. 사소한 질문이 민망할 정도로, 그야말로 힌두 신화 속 우유바다 같은 답이 쏟아졌다. 덕분에 설명한 것처럼 소한테도 종에 따른 카스트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딜 가나 사기꾼은 있기 마련이라 우유에 물을 섞어 파는 고약한 업자가 있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됐다. 아주 유쾌하고 유익한 대화였다. 당장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생생한 이야기 덕분에 잠깐 인도에 다녀온 것만 같았다.

인도의 아침은 '두드왈라'가 연다. (사진: https://youtu.be/BQkSuf_tPPs)

한식으로 바꿔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많아졌다. 과연 나는 한식과 식재료에 대한 외국인의 질문에 이렇게 구체적이고 풍성한 대답을 돌려줄 수 있을까. 한국의 상식과 문화를 연결할 만한 의미있고 재미있는 식재료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저 주어지는 대로 공기처럼 먹어온 까닭에 잠깐 아득했다가, 곧 습관처럼 거창한 한식 메뉴들을 헤아렸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만난 휴 잭맨이 생각났다. 그는 한식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와 있었고, 그날의 메뉴는 불고기였다.

그는 엄청 놀랐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천하의 울버린이 토끼눈을 하고는 “사이다를? 사이다를? 진짜?” 연발하고 있었다. 호스트 셰프가 불고기 양념을 만들면서 간장에 설탕과 사이다를 섞었기 때문이다. 온갖 형용사를 동원해 맛있다고 적극적으로 감탄하던 몸에 익은 매너보다 뜨악한 그의 표정이 더 오래 머리에 남았다. 요거트에 밥을 말아 먹어보라는 야시카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도 비슷한 표정을 돌려준 것 같다. 먹어보니 먹을 만하고 심지어 맛있는데, 경험과 이해가 없으니 약간 의심스러우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사이다는 때때로 김치 만들 때도 들어간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엄마는 냉면 육수를 만들 때 사이다를 썼다. 한국 사람이라면 삶은 계란을 먹을 때마다 사이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고, 곧이어 기차 여행에 대한 오래된 경험을 늘어놓을 것이다. 깊숙한 문화를 모르는 대상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더 많은 이야기를 유도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요거트나 사이다처럼 대단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유 노 김치”와 “두 유 노 불고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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