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지향적 심리치료 삶에 도움 안돼"
"성과 지향적 심리치료 삶에 도움 안돼"
"성과 지향적 심리치료 삶에 도움 안돼"
2014.08.05 18:19 by 권보람
청소년자립




홍선미 청소년 안전관리연구소장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은 소년들이 그림 카드 몇 장을 손에 들었다. 서로의 것은 훔쳐보고 자기 것은 가리느라 소란스런 가운데 제일 까불거리던 정우(가명)에게 첫 번째 차례가 돌아왔다. “역겹다” 정우가 카드 하나를 골라 테이블 위로 엎어두자 아이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 중 역겹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장씩 내놨다. 일곱 장의 카드가 어지럽게 섞이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곤충, 촛불, 꽃, 비늘... 아이들은 저마다 정우의 카드로 짐작되는 것에 자신의 말을 올렸다. 맞힌 사람은 1점, 맞힌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정우가 3점을 얻는 게임이다. “난 알 것 같다. 정우가 평소에 했던 말을 잘 생각해 보면 맞힐 수 있어” “야 이거 아니냐?” “됐고 그냥 고르라고 좀”

홍 소장이 웃으며 힌트를 주는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몇 개의 카드를 두고 한참 고민하던 형진이가 “아 XX 모르겠다”며 카드를 내려놓자 재밌다는 듯 지켜보던 정우가 “욕은 왜하냐”며 슬쩍 눈치를 줬다. 홍 소장의 팔을 붙잡고 “죄송하다”며 애교를 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모두 모여, 시간이 날 때마다 개별적으로 전주 청소년 자립생활관(관장 이혜성) 아이들과 홍 소장이 만난 지도 벌써 3개월이 됐다. 2010년 전국 8개 생활관 중 7번째로 건립된 전주청소년 자립생활관에는 현재 18명의 보호소년과 위기 청소년이 기거하고 있다. 보호소년은 소년법 제32조 제1항 제7~10호 규정에 의해 법원 소년부로부터 소년원에 송치된 소년을 뜻한다.

전주 지역 의사들이 힘을 합친 ‘청소년의 안전을 생각하는 의사들의 모임(이하 청의)’에서 청소년 안전 교육과 마음치유 활동을 펼치던 홍 소장은 2년 전,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된 전주 생활관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 “심리 치료를 하며 어린 시절의 체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위기 청소년들에게 눈길이 가더군요. 실제로 만나보니 아이들이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결손 가정에서 ‘빨리 독립해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받거나 무책임한 부모에게 방임·학대되는 등 부정적 환경에 놓인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크레파스 한 번 같이 쥐어본 적 없는 거죠. 부족했던 정서적 경험을 채워 준다면 이 아이들이 좋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낙인 아닌 낙인이 찍혀 사회에서 도태된 아이들의 옆에 있어주고 싶었습니다. 가장 적은 손길이 미치는 곳이기에 더 적극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 것 같아요.”

홍선미 소장과 전주 청소년 자립생활관 아이들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전주청소년자립생활관 제공

 2011년부터 전주 생활관 아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도맡고 있는 이혜성 관장은 “아이들에게는 외부인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라며 위기 청소년에 대한 심리치료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홍 소장님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 “과장 조금 보태 우리나라의 심리치료, 상담 프로그램은 다 받아본 게 우리 애들입니다. 선생님 눈빛만 봐도 안다고 할 정도죠. ‘똑같은 것 계속 받아서 뭐하냐’ ‘지겹다’며 피하려 하기도 해요. 상처가 많고 예민한 아이들인 만큼 마음의 문턱이 높습니다. 겨우겨우 다섯 걸음 나가게 만들어도 어느 샌가 스무 걸음 뒤로 가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보듬어주고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더욱 필요합니다.” ​ 앞서 여러 기업과 시민단체가 위기 청소년에 대한 심리지원 의사를 밝혀왔지만 이 관장이 번번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치료 후 재범율이나 취업·진학율을 지표로 삼는 단기 성과 지향적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긴 인생에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들의 여자 친구 선물을 챙길 정도로 가까워진 홍 소장 역시 유대를 맺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 “처음에는 하루 종일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딱 두 마디만 들을 수 있었어요.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마주치면 음료수를 쥐어 주며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 아이들의 표정이 점차 변하더군요. ‘선생님 제 문신 무섭죠?’라며 저와 기 싸움 하려 들던 애가 지금은 ‘열심히 한 번 해보고 싶다’며 미래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거죠.”

위기 청소년에 대한 전문적 심리지원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인성 교육이나 계도 목적의 형식적 심리상담 치료가 아닌 전문가에 의한 장기 심리치료는 청소년 심리 연구 및 명확한 범죄 동기 파악과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나가서는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지난해 경찰청이 발표한 ‘2012 미성년 범죄자 통계’의 범행 동기 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우발성’으로 전체 미성년 범죄의 25%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생활비·유흥비·도박비 등 물질적 동기를 모두 합한 비율(18.5%)보다 높으며, 특정 동기로 구분되지 않는 ‘기타(27.7%)’ 분류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홍 소장은 “우발적 행동의 원인을 보아야 한다”며 통계의 맹점을 짚었다. ​
홍 소장의 미술심리 치료 시간에 위기 청소년들이 만든 작품들


홍 소장의 미술심리 치료 시간에 위기 청소년들이 만든 작품들

“아이들은 홧김에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계획에 없던 일을 하고 후회가 되니 ‘왜 그랬냐’고 물으면 ‘우발적이었다’고 답하는 거죠. 충분한 보호와 관심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충동과 분노를 바르게 풀어낼 힘이 있는 반면 늘 위험에 노출되고 억눌려있던 아이들은 이를 해소할 곳이 없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자기 생활을 가지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되고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죠. 지금은 한 명에 대한 지원이지만 나가서는 이 아이들의 가족, 친구, 동료가 될 이들을 포함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 실제로 청소년 범죄에 있어 경제·심리적 불안은 대표적인 공통 배경으로 꼽힌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미성년 범죄자의 생활 정도를 상·중·하 세 단계로 분류했을 때, 50% 이상이 하류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돼 보호·위기 청소년의 대부분이 경제적 불안정 상태에 놓인 것이 확인됐다. 또 혼인자를 제외한 부모관계를 살펴본 결과 실제 양부모가 모두 있는 경우가 약 77%로 나타나 보호자의 유무보다는 정서적 안정이 이들에게 더욱 중요한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홍 소장은 “전주소년원에서 미술치료를 할 때 공포에 대한 그림을 그리자고 했더니 여섯 명 중 여섯 명 모두 아버지의 손에 몽둥이가 들린 모습을 그렸다”면서 “이 아이들은 다른 의미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 법무부의 ‘소년보호통계’를 보면 보호소년 및 위탁소년의 연도별 신수용인원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감소세를 타다 2007년부터 다시 증가세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통계적 추세에 학교폭력 심화, 소년범의 저연령화, 경제불황에 따른 가족기능 약화 등 사회적 요인이 더해져 소년보호기관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청소년 자립생활관 등 보호시설이 단순한 진로, 학업지도에 그치지 않고 심리치료와 같은 선진 시스템을 적극 도입·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의 본질에 다가서는 심리지원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학교 교과 방식으로 입원 청소년을 지도하고 있는 소년원은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심리치료를 진행하고 있으며 교육 시간은 처분에 따라 결정된다. 보호소년에 대한 심리치료가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아닌 교화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년원을 비롯한 청소년 보호기관의 심리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홍 소장은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사회적 이슈에 편승한 심리치료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치료, 상담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질려버렸대요. 그때그때 화제에 따라 치료를 진행하다보니 자살의 여지가 없는 아이가 자살 예방 교육 받고, 건강한 성관념을 가진 아이가 성폭력 방지를 위한 치료를 받는 사례도 생기고 있어요. 보호기관들이 진학이나 취업을 우선순위로 하다 보니 심리치료의 진정한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치료 목표는 하나에요. ‘아이들의 인생에 한 번이라도 따뜻한 기억을 남겨 주는 것’. 아이들이 자기 존중감을 갖고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심리치료, 마음치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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